내가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그들도 누군가에겐 미치도록 가슴 떨리게 하는 사람들이겠지

by 이열매

사랑을 하는 데 있어 한 번도 노력해본 적이 없었다. 딱히 누군가를 먼저 좋아한 적도 없었고, 날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해본 적도 없었다. 너무나 사랑했던 첫사랑도 자연스레 찾아왔었고, 누군가와의 만남도 이별도 나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었었다.


이런 나에게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일이 생겼다. 첫눈에 반해버린 것이다.

그에게 첫눈에 반한 날은 내가 일이 있어 수업에 늦었던 날이었다. 서둘러 강의실에 가고 있는데 계단에서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주변에 모든 것이 사라지며 그의 주변을 환한 빛이 둘러쌌다. 그리고 찰나였던 그 순간이 나에게는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리게 느껴졌다. 이미 난 첫사랑도 겪어봤고 가슴 아픈 절절한 사랑도 해봤었는데 '아 첫눈에 반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하고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강한 전율 같은 게 느껴졌다.


신기한 것은 그는 내 연락처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대학교 축제 때, 전자공학과의 요청으로 우리 학과 여 학우들의 번호를 제공해줬고 전자공학과에서 팔리고 있던 내 번호를 술에 취한 친구가 사줬다고 연락했던 한 남자. 연락을 주고받았었지만 별 감흥 없이 연락이 끊어졌던 그가 이 사람이었다니.


토끼눈을 뜬 채 넋 놓고 바라보는 나를 그도 느꼈는지 발걸음을 멈추고 날 쳐다보았다. 지금의 나라면 멈춰 서서 그에게 말이라도 걸었을 텐데 어리고 유리구슬 같았던 나는 그저 수업에 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도 나를 알아봤고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본 채로 나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나는 전화도 받지 못했다.


내가 '유리구슬 같았다.'라고 표현한 것은 맑고 순수한 소녀 같았다는 말이 아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얼굴에 다 쓰여있는데도 금방이라도 깨져버릴 것처럼 약해서 용기는 없었고 그렇다고 표정을 숨길만큼 농익지도 못했다. 그렇게 모든 것에 어설펐던 난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 못한 채 6년을 짝사랑을 했다.


내 첫 짝사랑은 참패로 끝이 났다. 계속 그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면서도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 못했지만 나는 6년 동안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아무것에도 의욕이 없던 내가, 첫사랑을 못 잊어 몇 년 동안 매일 첫사랑의 이름을 떠올리던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그의 연락 한 통에 방방 뛰어다녔고 그와 같은 수업이 있는 날이면 평소보다 두 시간이나 일찍 일어나 가장 예쁜 옷을 골라 입고 정성 들여 화장을 했다.


보잘것없게 느껴지던 내 존재가 다시금 살아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그를 더욱더 원할수록 그는 더욱더 멀어져 가기만 했다. 애타는 마음으로 그의 연락을 기다리며 전철을 기다리고 있던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다들 평범해 보였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저렇게 평범해 보이는 사람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니. 순간 웃음이 나왔다.


그의 존재가 보잘것없게 느껴진 것이 아니라 그 순간 난 이 평범해 보이는 모든 사람들도 누군가에겐 미치도록 가슴 떨리게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에 세상이 밝아 보이는 웃음을 지었다. 그 순간만큼은 이 세상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이 모든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특별한 사람이듯 나도 누군가에겐 잊을 수 없이 빛나는 사람이었겠지.




6년을 짝사랑하다 가슴 아프게 끝났지만 칙칙했던 내 대학생활을 빛나게 해 주던 유일한 사람. 열렬히 사랑했던 기억 하나로 그 시절의 나도 빛나게 만들어 준 사람.


그렇게 그는 내 기억 속에서 존재만으로도 푸르른 빛을 내고 있었다.






당신이 지금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누군가에겐 미치도록 가슴 떨리게 하는 사람임을, 나도 누군가에게 충분히 그런 사람임을 잊지 말고 항상 아름다운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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