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마시는 일은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언제부터인가 그릇이나 찻잔에 눈이 가기 시작했다. 정성 들여 만든 요리가 질 좋은 그릇에 담겨 나오면 보기도 좋을 뿐만아니라 더 맛있게 느껴진다. 커피나 차도 잔에 따라 맛이나 분위기도 다르다.
대를 물려 쓰는 그릇
30여 년 전인 1990년대 초 오스트리아 빈에서 한 지인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아 간 적이 있었다. 그는 오스트리아 공무원이었다. 잠시 대화를 나누니 식사 시간이 되었다.
음식도 맛 있었지만 음식이 담겨 나온 그릇이 우아하면서 좋아 보였다. 좀 오래된 듯도 했다. 식사가 거의 끝나자 주인은 "이 그릇은 아우가르텐 Augarten으로 부모님이 아껴 쓰시던 것을 물려받아 쓰고 있다"라고 했다. 값이 비싸기 때문에 구하기 어려워 손님이 올 때만 사용한다고 했다. "아! 질 좋은 그릇은 이렇게 대를 물려 쓰는구나!"라고 처음 생각했다. 아우가르텐이 오스트리아가 자랑하는 도자기 명품임을 알았다.
도자기는 중국이 처음 제조했고 이후 한국을 도자기 거쳐 일본에 전수됐다. 그러나 오늘날 도자기는 유럽의 도자기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유럽의 대표적인 도자기는 독일의 마이센 Meissen이다. 아우가르텐(오스트리아), 웨지우드(영국) 등이 명품 도자기들이다.
유럽 최초의 도자기 제조에 성공한 작센
유럽 도자기의 역사는 17세기 네덜란드 상인들이 중국 도자기와 일본 도자기를 유럽에 판매하면서 시작됐다. 17∼18세기 유럽에서 중국과 일본 도자기는 갖고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권위와 부(富)의 상징으로 여길 정도로 귀했다. 유럽의 왕, 제후 등 귀족들은 중국이나 일본 도자기를 갖고 싶어 했다. 더 나아가 도자기를 제조하고자 했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도자기 제조에 성공한 나라는 독일이다. 도자기 제조는 18세기 초 프로이센 왕국의 연금술사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 Johann Friedrich Böttger로부터 시작했다. 뵈트거가 구리나 쇠붙이를 금으로 만들 수 있다며 연금술 능력을 자랑하자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1세(재위 : 1701∼1713)는 그의 능력을 시험해 보겠다고 했다. 그는 오랫동안 갇혀 지내게 될 것을 우려하여 이웃 작센 선제후 국으로 피신했다.
작센 선제후이며 폴란드 왕인 아우구스투스는 예술품 수집이 큰 취미였다. 아우구스투스는 광산 개발로 얻은 막대한 부(富)로 보석, 공예품, 중국과 일본 도자기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는 피신 온 연금술사 뵈트거를 보호해주며 중국과 일본 도자기와 같은 품질의 도자기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뵈트거는 광산 및 제련 기술자들과 함께 2년여의 실험 끝에 1708년 백자 제조에 성공했다. 유럽 최초의 도자기 제조였다.
1710년 1월 작센 선제후 국은 도자기 제조에 성공했음을 공표했다. 작센 선제후 국이 문화국가임을 알리고, 도자기를 판매하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제조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공장을 드레스덴에서 약 30km 떨어진 마이센 Meißen의 알브레히트 성으로 옮겼다.
마이센 도자기의 로고
왕실과 귀족 등 상류층이 도자기를 사용하면서 생산이 늘어나자 마이센임을 나타내는 로고가 필요했다. 1722년에 코발트블루색의 긴 칼을 교차한 형태로 바꾸어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다.
마이센 도자기 로고
아우구스투스는 도자기 제조비법을 극비로 유지하며 독점 생산하고자 했다. 그러나 비밀은 없는 법. 기술자가 오스트리아로 도망하여 제조 비법이 유출된 것이다. 1717년 오스트리아는 유럽에서 두 번째로 도자기 제조에 성공했다. 오늘날 아우가르텐 Augarten이라는 도자기를 생산하고 있다. 영국도 1759년에 도자기 제조에 성공하여 웨지우드 Wedgewood를 생산하고 있다.
도자기 도시 마이센
마이센은 인구 2만 8,000명의 조그만 도시이지만 세계적인 우수 도자기를 떠올릴 정도로 도자기 도시다. 마이센 도자기가 제조한 커피 잔, 찻잔, 각종 장식용품, 목걸이 등은 오늘날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커피 잔이라도 갖고 싶지만 너무 비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