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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역사 문화 (7) - 전혜린과 독일

독일을 알린 1세대 전혜린

전후 독일을 알린 1세대


전후 독일을 우리나라에 알린 1세대는 누구일까? 나는 전혜린(1934〜1965)이라고 생각한다. 50년대 독일에 유학했던 그녀는 유학 중 독일어 소설을 번역하고 글을 쓰며 알려지기 시작했다. 30대 초에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으며, 그녀가 떠난 후 나온 책으로 더 유명해졌다. 그녀가 번역한 작품과 쓴 글을 통해 독일도 알려졌다.    

 

전혜린은 1934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났다. 1952년에 아버지의 권유로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였으나 그녀는 독일 문학에 관심이 더 많았다. 결국 그녀는 독문과로 옮겼다. 재학 중이던 1955년에 독일 뮌헨으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 중에 결혼한 그녀의 남편은 나중에 저명한 헌법 학자가 되었다.  


전혜린

                 

전혜린의 삶


뮌헨 대학에 다녔던 그녀는 가까운 슈바빙 Schwabing에 살았다. 슈바빙은 뮌헨의 한 행정 구역이나 슈바빙하면 전혜린을 떠올릴 정도로 잘 알려졌다. 슈바빙은 뮌헨대 인근의 개선문에서 시작하는 레오폴드 슈트라세 Leopoldstrasse가 주요 도로이다. 슈바빙은 전혜린의 삶의 터전이자 글의 소재였다. 가까이에 그녀가 자주 산책했으며 글의 소재였던 영국 공원도 있다.    


전혜린은 유학중에 틈틈이 『안네 프랑크- 한 소녀의 걸어온 길』,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 등을 번역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잡지에도 글을 쓰며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학사 학위를 받고 1959년에 귀국한 그녀는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다. 또한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하인리히 뵐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독일어 소설들을 번역하여 소개했다. 독일 유학 중에 겪은 내용을 소재로 글도 썼다.  

     

그러던 전혜린에게 큰 변화가 왔다.  1964년에 이혼한 것이다. 이어 1965년에 목숨을 끊으며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제 겨우 31살이었다. 그녀가 생전에 발표했던 글을 모아 1966년에 출간된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어 1968년에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가 나왔다. 수필 형식의 이 두 책은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에 특히 여고생에서부터 20〜30대 여성 등 젊은 층에게 인기가 있었다.      


전혜린은 독일과 독일 문화를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다른 의견도 있다. 책의 내용이 너무 감상적이어서 독자들로 하여금  독일에 대해 환상을 갖도록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혜린의 책을 읽고 독일로 유학 왔다가 중도에 돌아간 이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 생활과 문화를 알기 어려운 때에 전혜린을 통해 많은 이들이 독일과 독일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나는 2019년 5월에 헨의 '개선문'과 '숄 남매 광장'을 답사한 적이 있었다. 가는 비가 간간이 내리고 있어 대학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몸을 따뜻하게 했다. 이어 영국 공원을 거닐면서 전혜린의 생애를 떠올렸다. 『도시로 떠난 독일 역사 문화 산책』에 독일을 알린 그녀에 관해서도 간단하게 담았다.  


전혜린이 뮌헨 유학 중에 자주 산책했던 영국 공원(사진 : Ⓒ 손선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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