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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llustrator 서희 May 14. 2021

그치.

21.03월의 어느 날.








 우리가 만나기로 하고 나서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새에, 너는 나와 헤어지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를 몇 번이고 했다. 다른 사람을 만날 일도, 관심이 가게 되는 일도 없을 거라고 했다. 항상 한결같이 있어줄 테니 어떤 모습으로든, 언제든 기대도 좋다고 했다. 


 처음엔 생각했다. 무얼 보고 그런 다짐을 하는 걸까. 연애 초반에 뱉은 다짐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상처 주지 않겠다는 뻔한 말을 하는 순간엔 누구나 한치의 거짓도 없을 테지만, 관계의 끝에선 온통 상처 받은 사람 둘만 남아있는 법인데. 


 너의 말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면 그게 언제든 덜 상처 받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하루는 툭 대답해버렸다. 너는 지금 모르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야. 그냥 지금은 좋을 때라 그런 거야. 


 꼭 뭘 겪어본 것처럼, 미래를 비관할 줄 아는 게 더 어른인양 말했던 것 같다. 조금 지나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 이후에도 너는 묵묵히 옆에 있어주겠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대신 그 앞에는 문장 하나가 더 붙었다. 언니가 믿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가 항상 좋을 수는 없겠지만, 오래오래 같이 있자.


 나중에 길게 차를 타고 돌아오던 밤에,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너보다 다른 관계들을 더 겪어봤다는 이유로, 너의 진심에 함부로 대답해서 미안하다고. 


 많이 좋아하게 된 사람에게 언제까지고 최선을 다하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다.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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