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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May 23. 2024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출근

나의 결혼생활. 4

있던 직원도 잘라내야 할 판이니, 신규 직원을 뽑는 곳은 드물었다.

오라는 곳은 없었지만, 인터넷에 올라오는 공고를 보고 두드릴만한 곳은 모두 두드렸다.

몇 군데 면접을 진행했지만, 가망이 없다는 것은 나도 알고, 그들도 알고 있었다.

자리는 부족하니, 경력이 넘치거나 충분한 사람들을 찾기에는 자리를 찾는 사람보다 사람을 찾는 회사가 우위에 있었다.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면접을 '또' 봤다.

면접을 마치고 나오는데 왠지 가능성이 느껴졌다. 그 회사를 나오기 전 직원에게 '제가 며칠 일때문에 연락이 안될 수 있는데, 혹시 다른 연락처를 드리고 가도 될까요?'라고 물어보고, 친구 연락처를 남겼다.


며칠 후 결혼식을 마치고, 불편한 마음을 안고 아내와 신혼 여행을 갔다. 

불편한 마음때문이었는지, 저렴한 패키지를 구했기 때문인지 여행 내내 불편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비행기에서도, 호텔에서도, 바닷가에서도, 관광지 기념품 판매숍에서도.

불편한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공항에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축하해, 너 출근할 수 있는 날짜 물어보길래 일주일 내로 가능하다고 했다. 너가 다시 전화해봐'


공항에서 아내와 끌어안고 그저 기뻐했다. 눈물이 날 거 같았다.

불편했던 신혼여행은 쉽게 잊혀졌다. 돈 벌어야지, 재밌게 살아야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본가와 처가를 오가며 인사를 하고, 혼인신고를 하고 신혼집에 돌아온 게 토요일인데, 월요일부터 출근을 시작했다. 뒤늦게 부모님께 얘기를 했더니, 며느리가 복덩이라며 좋아하셨다.


출근한 회사는 삼성동에 있었는데, 우리 팀은 모두 일곱 명이었고, 나와 같이 출근한 동료는 동갑이라 친하게 지냈다. 우리 둘의 공통점은 전 직장에서 기획일을 했다는 것이었다. 회사에서는 우리 팀 사람들이 모두 영업만 해온 사람들인데, 우리 팀에서 거래처를 위해 직접 기획을 해주면 영업에 도움이 될 거라며 충원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날부터 책상 앞에서 기획도 하고, 직접 발로 뛰는 영업도 하게 되었다.

차가 있냐고 물어봐 없다고 했더니, 차량유지비(주유와 보험)와 식대는 급여와 별도로 제공되니 일을 위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사라고 해, 선배 직원과 함께 점심시간에 사무실 근처에서 빨간색 마티즈를 계약했다. 그게 아내와 나의 첫차였고, 이 차는 둘째 돌이 될 때까지 탔다.

차를 샀지만 시내에서 운전을 해본 적은 없어서, 선배 직원에게 이틀간 운전 교육을 받았다. 이틀 째는 비가 왔는데 일부러 논현동 언덕길에 가서 연습을 했다. 이틀 간 한 시간씩 배웠는데, 이틀 째는 욕만 들은 거같다. 

-머리가 좋은 거같다고 들었는데, 이런 것도 못하냐

-우리 둘다 죽으려고 하냐

한 시간동안 온갖 말을 다 들었다.


한달도 안되어 혼자 영업을 나가기 시작했다. 

영업 미팅이 끝나면 사무실에 돌아와 미팅 내용을 정리하고, 거래처를 위해 기획안을 정리해서 보내는 일을 반복했다. 1년 다녔을때 서서히 IT 관련 붐이 불기 시작했다. 아직 바람은 아니지만, 인터넷 기업들이 생겨나고, 신문과 방송에 IT뉴스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인터넷 공모전에서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 최우수상을 탄 적이 있었고, 지인의 소개로 작은 회사의 홈페이지를 만들어 준 적도 있었는데, 다가올 IT벤처 붐에 비해 내가 했던건 그저 애들 코흘리개 수준이었던 셈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창업을 하고 싶단 생각이 든건 그때가 첫번째였는데, 그때 했던 생각이 인터넷 서점이었다. 이미 미국에서는 아마존이라는 인터넷 서점이 운영되고 있었고, 내가 한번 서비스를 이용해보니 괜찮았다. 우리나라에서도 곧 이런 사업이 가능해 질거라 생각했다. 그때는 여전히 천리안이라는 전화접속으로 하는 인터넷을 쓰던 시기였는데, 기술은 계속발달할 것이니 인터넷도 마찬가지로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

또, 책이야말로 규격화된 상품이니 인터넷으로 뭘 하기에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거같다. (책과 관련된 이런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나는 책 콘텐츠를 갖고 할 수 있는 서비스는 아직도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와 함께 홈페이지 작업을 했던 개발자를 만나 아이디어를 정리한 문서를 보여주며 같이 해 보자고 했더니 홈페이지는 만들 수 있을 거같다고 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떤 식으로 서비스를 연결하고 만들지 한참 고민하고 있는데 일주일쯤 지나서 개발자가 만나자고 해서 만났더니, 자기는 힘들 거 같다며 다른 사람을 찾아보라는 것이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받게 됐는데, 이걸 하기는 쉽지 않을 거 같다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뭔가를 시작하기에 나는 너무 초보였던 거 같다.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사업으로 진행할거면 자본금, 지분, 사업 진행방안 등에 대해 많은 걸 더 고민했어야 했는데, 그저 아이디어 정리한 것 하나갖고 한번 해볼까? 라고 했으니 별로 신뢰는 안갔을 거같다.

 

나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는데, 그때 이후 오랫동안 웹 사이트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배워야 하나 하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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