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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May 27. 2024

이사에 관한 기억 (1)

나의 결혼생활. 5

결혼 후에 꽤나 많이 이사를 다녔는데, 신도시에서 시작해 아직도 신도시에서 살고 있다.


결혼 후 2년동안 살던 첫번째 집은 신도시 전철역 옆이었는데, 그 역을 나선 전철이 지나는 고가철도가 옆에 있는 단지였다.

다행히 문을 닫으면 큰 소음은 나지 않아서 살만 했는데, 이때는 내가 일을 열심히 한다고 야근도 많이 하고 다닐 때였다. 거의 매일 회사에서 저녁먹고 일하다 퇴근을 했는데, 직장도 여의도라 시간이 오래걸렸다. 

아내는 이때 첫 아이를 임신중이었는데 몸도 마음도 힘들어서, 간혹 복도에 서서 전철 지나가는 걸 바라보며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사는거지?'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간혹 부부싸움을 하게 되면, 내가 했던 얘기는 '다 우리 가족때문에 이러는 건데, 왜 그러냐'라고 했다고 한다. 

저 말을 할 때, 아내는 이렇게 얘기하곤 했다.

당신은 우리 가족의 행복, 미래를 위해라고 하지만,
나는 지금도 중요하고, 지금이 너무 행복하지 않아.
 

결혼하면 뭐든 다 해줄 거처럼 하더니 술먹고 다니고, 일한다고 매일 늦게 다니고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금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 뿐이다.


두번째 이사한 집은 바로 옆 단지였다. 이 곳에서도 역시 2년을 살았다. 1년을 조금 넘게 살았을 때 은행인가 어딘가에서 우편물이 날라오기 시작하더니 결국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집주인이 대출금 이자를 연체하고, 대출 원금도 갚지 않으니 결국 경매로 넘어가게 된 것이었다.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때였고, 그저 이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 세들어 살고 있는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 쫓겨나는거 아닌가? 하는 걱정밖에 없었다.

주변에서 살고 있는 집을 그냥 사버리라는 조언을 해줬는데, 지금같으면 진지하게 고려하고 그걸 행동으로 옮길 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그저 '경매로 넘어가고, 마음도 편치 않은 이 집을 얼른 벗어나버리자'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경매가 진행되다보니, 전세 기간을 훌쩍 넘기게 되었다.

전세금이 들어오는 걸 확인하고, 준비해서 이사를 할 때는 딸 아이까지 네 식구가 이사를 했다.


세번째 이사한 집 역시 인근 신도시에 있었는데, 집주인은 해외로 유학가는 공무원이었다. 

계약을 하기 위해 부동산에 갔는데, 경제부처 공무원이라 그런지 나의 선입견이었는지 꽤나 깐깐해 보였다. 부동산 사장도 법규를 들이밀며 중개보수를 정리하는 집주인을 부담스러워하는 느낌이었다.

2년을 살고 결국 대출을 왕창 안고 집을 사게 되었는데, 그런 결정을 하게 된 데는 저 집주인의 영향이 컸다.


전세 계약 만료가 되기 3개월 전 국제 전화가 걸려왔다. 집주인인데, 몇달 후에 귀국할 예정이니, 계약이 만료되면 집을 비워달라는 것이었다. 갑작스런 전화라 알았다고 대답하고, 퇴근해서 아내와 상의하니 '이사 가야지 뭐'하고 큰 걱정없이 얘기하길래 그러마했다. 그러고서 집을 구하려면 계약을 위해 선급금이 좀 있어야 하는데, 집주인이 그 얘긴 안해? 라고 하길래, 다음 날 전화통화를 하기로 했다.


집주인이 전날 내게 전화를 했던 시간에 맞춰 국제전화를 했더니, 전화를 받았다.

'되도록이면 빨리 집을 구해 나가겠다. 그런데 집을 구해 이사하려면 계약을 위해 선급금이 필요한데, 언제쯤 주시겠냐?' 라고 했더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선급금을 왜 드립니까? 그게 법에 정해진 게 있습니까?'라고 답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어서, 몇마디 얘기를 주고 받다가 끊게 되었다.

전화를 끊고, 이사올 때 계약했던 부동산에 연락하니 '법에 정해진 건 없는데, 집주인이 보통 편의를 봐주죠. 관례상으로. 못준대요? 거 참...'이라고만 했다.


퇴근해서 아내한테 말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맘이 상하고, 스스로가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내 말을 들은 아내도 속상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주말부터 집을 보러다니다가, 살던 도시에서 중심지에 있는 맘에 든 동네를 찾았다. 

부동산에 들어가보니 같은 평수인데도 전세금이 수천만원이나 비쌌다.

그날 저녁 아내와 얘기하다가, 이런 식이면 전세금 맞춰주다가 볼 일 다보겠다고 대출을 내서 집을 사버리자고 했다. 그렇게 덜컥 마음의 결정을 해놓고, 알아보니 대출을 최대치로 받아도 돈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다시한번 스스로가 무능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어쩔 수 없이 부모님께 연락해, '집을 사려고 하는데, 돈이 1,500만원정도 부족하다. 빌려주시면 최대한 빨리 갚도록 하겠다'라고 손을 벌렸다.


그러고 3개월 정도 있다가 이사를 했다. 

그 집이 우리가 결혼하고 처음 장만한 '우리집'이었다.

아버지는 결혼 후 한번도 우리집에 오신 적이 없는데, 돌아가시기 몇 달전 암치료차 오셨다가 처음으로 집에 들르셨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방문이셨다.

아버지는 그때 거실 소파에 앉아, '집이 참 좋다'라고 한마디만 하셨을 뿐이다.


그 때가 우리집 장만하고 3년이 안된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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