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빼앗겼다는(?) B
그를 만날 때마다 저러다 병나지 싶어 걱정일 때가 많았다.
B는 직장생활을 하다가 30대 후반에 대학원 동기 네 명과 함께 창업했는데, 창업 이듬해에 동기들은 모두 포기하고 직장을 잡아 나갔다. 전열을 정비하고 사업 아이템을 손본 후 매출이 조금씩 발생하면서 직원을 뽑고 지인의 회사 인근으로 가 제휴도 하면서 매출을 늘리자 차츰 회사가 안정되기 시작했다.
성수동에 있던 회사를 판교로 옮긴 것은 투자사가 자신들의 건물로 들어오라고 해서였다. 기존에 하던 사업 관련 분야를 열심히 파다 보니 모바일 어플을 이용한 조금 특별한 서비스를 구상하게 되었고 이 서비스를 만들던 중 투자사를 소개받은 것이었다. 투자사는 개발 중인 모바일 어플을 좋게 봤고, 투자를 약속한 동시에 자신들이 운영 중인 벤처빌딩에 입주하기를 권했다. 좋은 조건이었다.
B는 투자사에서 투자를 받아 서비스를 완성했고, 서비스를 완성했을 땐 기존에 매출이 나오던 분야는 접고 신규 서비스에 올인한 상태였기에 추가 투자를 받아야 했다. 추가 투자는 첫 번째 투자를 받을 때 수준의 밸류였다. 다른 보통의 모바일 서비스처럼 B가 만든 서비스도 처음부터 매출이 나오진 않았다. 아주 미미하게 조금씩 서비스 이용자(기업과 개인)가 늘어났다. 생각보다 많이 느린 속도였다. B와 B의 회사에 투자했던 투자사 모두가 기대했던 것보다 저조한 성과 그리고 예측이 안 되는 향후 성과 등으로 인해 추가 자금이 필요한 B에게는 불리한 상황이 되었다.
B에게 화가 쌓이고, 스트레스가 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B에게 투자했던 투자사는 액면가 수준의 증자(투자)를 요구했고, 그즈음 B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한두 번의 추가 증자(투자)가 이루어지자 B의 지분은 있으나마 나한 수준이 되어 버렸다. B가 서비스를 키우겠다고, 키울 수 있다고 자신하며 열심히 영업하고 마케팅했지만 성과는 기대이하였다. 그런 와중에 B가 이 서비스를 해외에 소개하겠다고 싱가포르, 미국, 유럽으로 콘퍼런스 출장을 다녔으니 투자자 입장에서는 갸우뚱하면서 속 터지는 상황이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매출도 없고 돈도 많지 않은데 잘 안 보이는 미래 성과를 위해 돈을 쓰고 해외 출장을 자꾸 다닌다고 하니 말이다. 물론 해외 출장의 성과는 없었고, 국내 관련 업계에서 B의 인지도가 조금 올라갔다는 것이 성과라면 성과였을 것이다.
서비스를 만든 지 2년쯤 지나 B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 자금은 말랐고, 추가 투자는 어렵게 되었고, 유의미한 매출도 당장 나오지 않으니 투자자인 대주주가 B가 물러나기를 강하게 요구한 것이다. 창업자인 B가 회사를 떠나자 투자자에 불과했던 대주주는 유상증자를 통해 자본을 늘리고 투자사의 포트폴리오 안에 있던 다른 회사와 합병하는 등 사업구조를 재편했다. 몇 년이 지나자 적자이긴 하지만 유의미한 매출이 나오기 시작했다. 있으나마나한 수준이었던 B의 지분은 이제 없는 것과 마찬가지 수준이 되어버렸다. 만약 B가 회사를 못 나가겠다고 버텼다면 주주총회를 통해 B를 끌어내리든, 회사가 말라붙을 때까지 괴롭히거나 추가적인 지원을 하지 않았을 테니 B의 실책으로 회사가 문을 닫았다는 손가락질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B가 자진해 대표자리에서 물러나고 이후 대주주의 추가 투자과정을 통해 회사가 다시 일어나게 되었으니 적어도 회사 하나를 폐업까지 가게 만들었다는 소리는 안 듣게 된 것과 여러 가지 소문이 돌기전에 관련 업계의 협회로 자리를 옮긴 것이 B에겐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협회에서 일하던 B는 2년이 조금 지나 다시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자발적인 이직이었으나 협회의 정적인 업무 스타일 뒤에 숨은 내부 갈등을 참을 수 없었고, B의 내부에 쌓인 스트레스와 화 때문에 조그만 일에도 화가 났고, 사람들과 부딪히면 그걸 안으로 감추기만 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가끔 표출하곤 했는데 그런 것이 누적된 결과였다.
이후 옮긴 직장에서도 B는 힘들어했다. B가 보기에 자신을 스카우트해 간 회사 대표는 사기꾼 수준이었고, 회사 직원들은 대표의 사기행각을 지원하라고 동원된 사람들에 불과했다. 물론 동원된 사람들 모두 힘들어하는 것이 보였고, 하나둘 직원들이 떠날 때도 가족들을 생각해 버티던 B는 얼마 후 대표와 한바탕 하고 회사를 떠났다.
'저런 새끼도 이렇게 많이 투자를 받아서 돈을 펑펑 쓰면서 이 짓을 하고 있는데,
대체 내가 뭐가 부족하다고'
라는 생각이 B의 화를 계속 쌓이게 만들었다.
B가 자신이 만든 회사를 그만두고, 직장을 두 곳 옮기는 동안 B의 아내는 더 힘들어했다. B의 아내는 대학 졸업 후 했던 일이 아닌 다른 일로 가족의 생계를 돕고 있었고, 아이들도 돌봐야 했다. B는 쌓인 화로 집에 가면 말을 끊었고, 주말에 교회를 나가 기도를 하며 속에 쌓인 화를 풀어봤지만 그렇게 풀린 감정이 집안 분위기를 화목하게 하거나 부드럽게 만들지는 않았다. B의 아내는 힘들어했고, 아내가 이혼얘기를 꺼냈을 때 B는 비로소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행히 B와 B의 아내는 열심히 현재를 살아보기로 손을 잡았다고 한다.
보통 화병이라고 하면 착하고 유한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 참고 살다 보니 생기는 것이 일반적이라 들었는데, B의 경우는 그게 아니었다. B는 자신의 것을 부당하게 빼앗겼다는 생각을 오래 했고, 자신의 고생과 노력을 부정당했다고 생각했다. 또 가족의 고생과 남들에게 말 못 할 가족사까지 B의 화를 돋우었다. B는 되는 일이 없고, B의 옆에 믿을 사람도, 기댈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그게 B의 주변사람들 잘못은 아니었을 것이다. 상황을 그렇게 만든 건 B 스스로였다.
B는 자신이 애써 만든 서비스와 회사를 뺏겼다고 얘기했지만, 매출도 거의 없는 회사에 지속적으로 돈을 넣은 투자사의 목적이 뭐였겠는가. 또 회사가 매출도 보잘것없고 당장 해야 할 것도 태산이었을 텐데 해외 콘퍼런스를 다니면서-물론 회사의 서비스를 글로벌하게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하면서- 시간과 돈을 쓰는 대표를 어떤 투자자가 좋아하겠는가. B가 내실에 치중하고, 동분서주 노력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투자자와 B의 눈높이가 달랐을 것이다. B는 뺏겼다 혹은 강탈당한 거나 마찬가지다라고 얘기할 것이고, 투자자는 여태 넣은 돈을 다 날릴 거 같아서-결국은 다 날렸다- 직접 운영해보려고 한다고 얘기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B는 투자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논리나 근거, 주장이 없었고, 그걸 인정할 수 없었기에 화만 쌓였을 것이다.
만날 때마다 쌓인 화를 주체 못 해 욕을 하고, 세상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B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보다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는 내가 잘못인 걸까? 문제가 생기고 결과가 안 좋게 나오면 분노를 표출할 대상을 찾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밖에서 찾는 문제는 대부분 내가 통제할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것들이고, 안에서 찾은 문제들이라야 비로소 바꿀 수 있는 것들일 텐데. 이제는 화와 분노를 줄이면서 자신이 부족했던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사람 사는 일은 대부분 반복된다고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