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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보노야 Aug 27. 2024

P의 이면

리더가 구성원을 바라보는 시각

P는 종합일간지 기자 출신이다. 


기자로 일하는 동안 태스크포스팀에서 성공적으로 신규 매체를 기획, 론칭했고, 주변으로부터 사장까지 갈 거라는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기자생활 10년이 넘자, 과감하게 그만두고 자신의 회사를 창업했다. 재밌게도 인터넷 기업이었다. 몇 년의 사업 끝에 사업이 실패하자 기업으로 옮겨 현재까지 쭉 경영전략과 기획 업무를 하며 기업에서 일을 하고 있다. 흔히 기자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기업 쪽으로 넘어와 홍보나 대관업무를 많이 하는 편이니 P는 조금 다른 성향임에 분명하다


P는 한때 M&A를 앞둔 IT 기업에 부사장으로 일하게 되었는데, 냉철하면서 이성적인 판단을 잘하는 그의 면모를 보여주는 일이 있었다. 그가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대리 직원 한 명이 작은 실수를 한 적이 있다. P는 해당 대리를 그 자리에서 해고했다. 당시 그 대리는 경력직으로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업무를 익히고 있는 중이었는데 P가 그를 해고한 이유는 짧고 명확했다. '새로 익히는 업무도 아니고, 경력직이 당연히 알아야 할 업무인데 그걸 못하고 있으니 개선의 여지가 없으며, 업무 실수로 인해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라는 것이 P가 말한 이유였다. P가 대리를 해고한 시점이 대리가 회사에 들어온 지 3개월이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해고하는 것이 조금 수월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리의 퇴사와 동시에 뒷말 또한 돌았는데 그것은 이런 것이었다. 


'*대리가 지방대를 나왔잖아. 그리고 그 친구가 있었다는 곳 말이야. 워낙 작다 보니 P의 눈에 많이 안 찼을 걸~' 


나는 이들이 뒷얘기를 전해주며 특히 '지방대'라는 부분을 언급할 때 크게 수긍했다.


P는 얼마 후  후 창업자의 오더를 받아 과감하게 칼을 휘둘렀는데, 부서 간 업무 통폐합을 통해 인원을 줄였고, 실적이 나오지 않는 사업부의 아이템을 짧은 기간 안에 모두 종결시켰다. 또 과하다고 생각되는 복지비용을 과감히 조정했다. 몇 달간의 험난한 과정 후에 회사는 결국 동종의 다른 서비스 기업과 M&A에 성공했다. 창업자와 공동 창업자는 큰돈을 손에 쥐었고 일부 직원들은 직장을 잃었다. P는 M&A가 끝나 본격적인 두 회사의 물리적 합류작업이 시작되자 회사를 떠났다. 




P의 알려진 이력은 서울대학교를 나왔고, 종합 일간지 기자 생활 후 창업, 이후 여러 기업의 임원을 거쳤고,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그가 전략적인 사고 아래 합리적이고 냉철한 판단을 내린다는 평가와 달리 P와 함께 일했던, 나를 포함한, 사람들의 평가는 그저 그렇다. 반면 그가 쓰는 칼럼과 그가 내뱉는 세상을 향한 비평만 보는 사람들은 그의 날 선 비판에 환호한다. 내 생각에 그 차이가 생긴 건 단순한 이유다. P를 직접 보았는가 아니면 P가 만든 이미지만 보았는가. 


P는 사람들을 만날 때 그의 이력서 속에 든 학교와 경력 사항을 꼼꼼히 살핀다. 이력을 꼼꼼히 살피는 사람들의 첫째 이유는 자신과 당사자간에 있을 수 있는 교집합을 찾는 것이다. 다만 차이라면, P는 그 과정에서 그의 출신 학교와 출신 직장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소위 배운 것이 있는가를 판단하는데 어떤 학교와 어떤 직장을 다녔는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P 앞에서 비슷한 실수를 하더라도 어떤 학교, 어떤 직장을 다니다 왔느냐에 따라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지느냐 아니냐가 갈릴 있다.  


웹소설로 먼저 나왔고 웹툰으로도 연재 중인 '상남자'라는 작품이 있다. 주인공 한유현이 과거 대기업 사장까지 올랐다가 다시 신입사원으로 회귀한 내용을 다룬 판타지 회귀물인데, 한유현이 다시 태어난 현생의 회사에서 고군분투하는 이유와 회사 생활에서의 신념에 대해 창업자 회장에게 하는 말이 나온다. 


'저는 위기의 순간 회사를 일으켜 세우는 건 직원들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리더가 그런 직원들을 귀하게 여길 때, 회사가 더 크게 발전한다고 믿습니다'



웹툰 상남자 중 주인공 한유현



교과서 같은 얘기이고, 한결같은 진리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회사와 직원은 주고받는 계약관계이고 일방적인 신뢰는 다시 일방이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럼에도 공자님 말씀 같은 저 문장을 마음에 담은 리더가 많으면 좋겠다.


수년 전 P가 변화한 한국사회에 관해 썼다는 칼럼을 온라인에서 다시 보았다. P가 쓴 칼럼에는 합리적인 사회, 윈윈, 타협, 조정 이런 단어가 많이 보였다. 그를 조금 경험했던 나로서는 갸우뚱?? 할 뿐이다. 그의 눈높이에 부족한 역량이라는 이유로, 그의 기준에 모자란 학벌과 경력이라는 이유로 두 번의 기회도 부여하지 않고 사람들을 차갑게 내치던 그때에 비해 P가 많이 달라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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