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노보노야 Sep 24. 2024

K대표가 감춘 것들

누구든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

K대표는 음식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직영 매장이 9개가 되자 가맹점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맹점이 3개가 되어 전체 매장이 12개로 늘자 직영점과 가맹점 모두 출점을 멈추었다. 이유는 '아직은 버거워서'였다.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기 전 K는 두 개의 사업을 했었다. 하나는 관상용 생물을 키워 분양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중국 관광객의 한국 내 여행을 돕는 사업이었다. 하나는 투자가 많이 필요한 사업이었고, 또 하나는 중국인들이 한국에 많이 들어와야 돈이 되는 사업이었다. 코로나가 퍼지면서 투자를 해주겠다는 해외업체와 협의가 중단되면서 첫 번째 사업이 공중에 뜬 채로 진행여부가 불확실해졌다. 그리고 여행이 끊기면서 매출이 좀 나던 중국 관광객 관련 사업이 올스톱되었다. 당장 회사를 유지해야 해서 시작한 게 음식 관련 사업이었다. 운이 좋았던 건지 배달이 늘면서 회사를 유지할 수 있었다. 


K의 입장에서 기존에 하던 사업이 깔끔하게 양복 입고 다니며 사람들 만나며 하던 사업이었다면 종업원이 20여 명이 넘는다고는 하지만 매일 대충 입고 다니며 가끔은 앞치마도 입어야 하는 생활이 짜증 났었나 보다. 코로나가 종료되고 중국 관련 사업이 다시 재개될 거 같다는 기대감을 가졌던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그런 좋은 징조를 포착한 건지 K는 이때부터 가끔 만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음식 관련 사업을 인수해 보는 것이 어떠냐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전체 인수가 부담스러우면 자금 일부를 넣고 대표를 맡으며 사업을 운영해 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도 했다.


내가 아는 J도 K로부터 같은 제안을 받았다. 전체 인수를 못할 거 같으면 얼마나 투입 가능한 지 알면 같이 얘기를 진행해 보자는 식의 꽤 전향적인 제안이었다. 얘기가 오가던 당시 J가 알고 있는 K의 음식 관련 사업 매출은 꽤 괜찮은 편이었고, K가 운영하고 있는 방식 또한 J가 보기에 동종의 다른 업체들에 비해 효율과 효과 두 가지 측면에서 괜찮은 구조였다. 


J는 K의 사업 부문에 대해 인수, 일부 자본 투입, 협업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고민하며 자금을 만들 방법을 모색했다. 실제로 주변에서 그리 크지는 않지만 약간의 자금을 융통해 주겠다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그러나 K와 J 두 사람 모두가 생각하기에 J가 만들 수 있는 자금은 '많이' 부족했다.


두 번의 미팅을 더 진행했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J와 K의 의견 차이를 좁힐 수는 없었고, 결국 J는 K의 사업을 인수하는 것에 대해 마음을 접어야 했다. 이후 K가 전해온 소식은 다른 식품업체와 합병을 고민 중이라는 얘기, 다른 요식업 업체의 부분 인수 및 협업 후 투자 유치 등을 진행 중이라는 것이었다.


1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J는 기존에 했던 업무와 다른 일로 K를 만났다. J가 눈치 없이 1년 전 진행되던 K의 사업 관련 투자, 인수, 합병 등에 대해 물었을 때 K는 그저 '서로 의견과 조건이 많이 달랐다'는 식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이전한 사무실에서도 여전히 K는 대충 입은듯한 헐렁한 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J가 K의 사업과 협업을 하기로 결정한 후, K가 운영 중이던 직영 매장을 K의 동의를 받아 혼자 방문한 후,  J는 1년 전 K가 제안했지만 자신이 꽤나 분주하게 방법을 찾았음에도 진행되지 못한 인수나 합병이 무산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J가 K의 직영 매장 몇 곳을 방문하며 해당 매장의 매니저들과 잠깐 얘기를 나눌 때 스쳐가듯 어처구니없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대략적인 얘기는 이런 것이었다.

-저희 작년에 너무 힘들었잖아요. 급여가 안 나올 뻔했어요. 

-직영 매장을 두 개 줄였는데, 한 지역은 아예 없애고, 다른 지역은 가맹점으로 대체했어요.

-작년에 매출이 너무 안 좋아져서, 매장 매니저들 잘릴까 봐 걱정이 많았어요. 올해 들어서 조금 나아지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인데 아직 매출이 그저 그래요.

K로부터는 듣지 못했던 얘기였다. '당연하게도'


누구든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


J가 대략 머릿속으로 시간을 계산해 보니, 매니저들이 얘기한 힘들었던 때, 급여도 못 받을뻔한 했다던 그때는 K가 J에게 사업 인수 제안을 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었다. 


사업에 투자하고 인수하거나 합병할 때 해당 사업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많은 조사를 한 후에 결정해야 하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작은 사업을 인수하거나 투자할 때 얼마나 많은 자료를 보거나 현황을 살피며 할 수 있을까? 그저 해당 사업체에서 제시하는 자료를 보면서 결정할 수 있을 뿐인데, 그건 이미 숫자로 확정된 과거의 것이고, 현재의 흐름과 미래의 조짐에 대해 밖의 사람이 얼마나 잘 알 수 있을까? 그러니 잘되는 사업이라고 해서 지난달 장부의 숫자와 어제 둘러본 매장의 분위기만 보고 결정을 하곤 하는데, 실제를 얼마나 잘 파악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결국, J가 그때 K의 말을 듣고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다 많은 지분을 인수하고 대표를 맡고 운영을 시작했다면,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굉장히 곤란을 겪었음이 분명했을 것이다. J가 주변에서 돈을 끌어오면서까지 K의 사업을 운영하려 했던 것은 K가 보여주고 말했던 사업의 내용이 자신이 하고 있던 사업과 결합해 시너지가 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또 J 스스로가 회사를 맡아 운영하며 매출을 키운다면 약속에 따라 나머지 지분도 인수할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J는 매출의 감소, 계약의 세부 내용 등에 대해서는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J는 좀 아찔했다.


(참고로, 만약 J가 주변에서 돈을 끌어다가 K의 지분을 일부 인수하고 회사에도 돈을 넣은 후 대표를 맡아 운영했다면 1) K는 자신의 개인 부채와 회사의 부채를 줄일 기회가 생긴 것이고  2) J가 대표를 맡아 운영하며 매출이 줄었다면 그로 인해 추가적인 자금을 필요로 하거나 회사의 규모를 줄일 상황이 되었다면 J의 지분은 다시 의미 없는 수준으로 줄거나 대표자리를 내놔야 했을 것이다. 결국 J는 돈만 날렸을 확률이 컸다)


술자리에서 J가 K에 대해 쌍욕을 했지만, 결국 사업의 내용을 세세하게 파악하지 못했던 잘못은 J에게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현실세계를 동화처럼 바라보면 모두가 친절하고, 합리적이고, 좋은 쪽으로만 말하고 행동해야겠지만, 실제는 그보다 훨씬 더 냉혹하다. 자기 이익이 최선이고, 내가 가진 짐을 누군가에게 넘길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문제 되는 것이 아니라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게 할 확률이 높다. 그러니 여전히 당사자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세상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판단하는 것이 '당연하게도' 필요하단 얘기다.


이전 29화 말의 성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