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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Aug 25. 2019

욕 한 마디에 하트 하나씩

아홉 번째 한 글자 주제, 욕 


회사 사람들과 욕을 텄다. 


욕을 트는 건 방귀를 트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일단 어느 정도 친밀한 관계가 전제되어야 하지만, 친밀하다고 해서 모두와 거리낌 없이 틀 수는 없다.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이 사람이 욕을(방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봐야 한다. '부부 사이라 해도 방귀는 틀 수 없어!'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게 뭐가 문제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욕도 마찬가지라서, 어떤 상황에서도 욕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친한 사람끼리는 욕도 좀 섞어 쓸 수 있지,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서로 슬쩍슬쩍 한두 마디씩 섞어가며 관찰한 결과 우리 팀은 대부분 후자였다. 그 외에도 한 두 가지 요소 정도가 우리 팀이 욕을 트는데 공헌을 했는데, 


1. 최근 들어 유난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없는 어이없는 일들이 회사 내에 많기도 했고

2. 우리가 인사팀이라서, 우리 팀이 아닌 다른 직원들과 속시원히 할 수 있는 말이 많지 않다는 거였다. 



하여간 우리는 자연스럽게 욕을 텄다. 쓰이는 욕의 종류도 다양했고 그 대상도 매번 바뀌었다.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는 타 부서 직원을 욕할 때도 있었고, 실수로 뭔가를 빼먹은 나 자신을 비하하기도 했고, 왠지 앞이 깜깜해 보이는 회사 얘기를 하며 영 마음에 안 드는 현실 상황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굳이 욕을 안 쓰고도 할 수 있는 이야기에도 우리는 꼭 한두 마디씩 욕을 섞어 썼다. 


많은 순간 욕은 우리가 이 정도로 끈끈하게, 서로의 상황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는 어떤 표지 같은 것으로 기능했다. 밖에서는 '인사팀 담당자'로서 웃으며 잘 응대하고 나서 우리 사무실로 들어와서는 '미친!' 하고 소리를 질러도 서로 그 답답함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고, 우리는 매번 욕을 쓰면서 우리 모두가 여전히 이 원 안에 들어있음을 끊임없이 확인했다. '저 사람 완전 개 XX에요' 했을 때 '아니 그래도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되지'하는 사람이 없고 '맞네, 진짜 미친 XX네'하는 답이 돌아온다는 것. 서로 좋은 말을 주고받는 것보다 오히려 서로에게만 털어놓을 수 있는 진짜 속마음을 얘기하는 것이 어떤 강한 본딩을 형성해주었달까. 


물론 센소리를 내뱉고 나면 순간적으로 감정이 확 분출되면서 어딘가 개운한 느낌이 드는 것도 있었다. 꾹꾹 눌러두었던 부정적인 감정을 한 단어로 터뜨릴 수 있다니 참 가성비 좋은 스트레스 해소법이기도 했고. 욕을 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하면 너무 과한 걸까 싶지만, 확실히 욕에는 다른 걸로는 대체할 수 없는 묘한 쾌감이 있었다. 실제로 욕을 하는 순간 사람의 뇌는 일반적인 말을 할 때와는 달라서, 언어를 사용할 때 활성화되는 대뇌피질이 아니라 감정을 관장하는 변연계가 활성화된다고 한다. 아주 깊은 곳의 감정을 끌어올려서 한 단어로 응축하여 밖으로 퉤 뱉는 것, 즐거운 일보다는 짜증 나는 일이 훨씬 많은 회사생활에 필수적일 밖에. 







문제는 이게 너무 쉽게 습관이 되어버린다는 데 있었다. 회사에서, 친한 사람들 앞에서, 필요한 순간에만 일부러 사용하던 것이 어느새 점점 입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내가 내 욕을 컨트롤하고 있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욕은 슬슬 제멋대로, 전혀 쓸 생각이 없던 순간에도 튀어나와서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아직 욕을 트지 않은 친구랑 얘기하다가도 툭 튀어나와 내가 흠칫 놀랄 때도 있었고, 나는 심지어 의식도 못하다가 친구가 흠칫 놀라는 것 같아 그제야 깨닫고 멋쩍게 무마한 적도 있었다. 내가 내 감정을 토해내려고 부러 시작한 일인데, 그것이 어느새 관성이 생겨선 내 통제를 벗어나 마구 날뛰는 게 영 무서웠다. 아무리 욕을 할 만한 상황이 많다고는 해도 기실 시도 때도 없이 욕을 내뱉는 게 점잖은 태도라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문득 경각심이 들어 사무실 한편 비어있는 화이트보드에 크게, 이른바 '욕 대시보드'를 만들었다. '하트 10개 적립 시 커피 쏘기!'라고 되어 있는 제목 아래 우리 팀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히. 욕을 한 번 할 때마다 이름 옆에 하트를 하나씩 그려주는 시스템이다. 이게 욕설을 카운트하고 있다는 걸 누가 알까 두려워 어디에도 '욕'이라는 글자는 없다. 그냥 욕 대신 사랑을 한 움큼 채워 넣자는 생각으로 서로 예쁘게 하트를 그려 넣어주고 있을 뿐.  


확실히 평소에 의식하고 있기만 해도 금방 다시 욕의 고삐를 틀어쥘 수 있다. 혼자 하기 어렵다면 우리 팀처럼 서로가 서로의 고삐를 쥐어도 좋고. 대시보드를 만들고 나니 다들 욕을 쓰는 일이 현저히 줄어 아직 하트 10개를 채운 사람은 없다. 물론 가끔은 '저 그냥 하트 하나 그려주세요, 이건 욕해야겠어요' 선전포고를 하고 어쩐지 울컥한 마음을 욕 한 마디로 토해내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커피 한 잔 얻어먹지 않아도 좋으니 우리 중 누구도 10개의 하트를 채우지 못했으면 좋겠다. 욕하고 싶은 상황이 조금 줄었으면 좋겠고, 그런 상황이 생기더라도 서로 찐한 눈빛을 보내며 너털웃음 한 번으로 털어버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다. 뭐, 지금껏 늘 그래 왔듯 어쩔 수 없이 하트를 그려 넣어야 하는 경우야 있겠지만은. 


딱 하트 열 개만큼의 여유, 우리에겐 지금 욕 한 마디보다 그런 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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