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번째 한 글자 주제, 설
우리 고스톱이나 한 판 칠까?
때는 정월 초하루 전날. 떡국이며 갈비찜이며 거하게 차려진 명절상을 셋이서 나누던 중에 엄마가 문득 물었다. 대답은 맹숭맹숭했지만 준비는 금방이라. 상이 치워지자마자 하나는 화투패를 찾아오고 하나는 군용 담요를 가져다 식탁에 착 깔았다.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가 아픈 요즘이라 감성은 좀 덜해도 바닥이 아니라 식탁에 담요를 까는 게 낫다. 익숙하게 깔았어도 기껏해야 명절에나 만져보는 화투 패라 추석 이후로 또 오랜만이다. 첫뻑은 얼마, 따닥은 있어 없어, 대강의 룰을 정하고 나서야 선을 잡은 엄마가 패를 섞었다. 착착 패 섞는 소리가 꽤나 노련하다. 아이고 우리 엄마 섞는 건 거의 타짜 같으세요, 눙을 쳤더니 그럼~ 내가 이걸 넘겨다 본 세월이 얼만데, 하고 엄마도 눈웃음을 친다. 그 말을 던지는 바람에 역으로 생각이 났는지, 다 섞인 패를 나눠주면서는 아주 거창하게 의미 부여도 하셨다.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걸 우리끼리 하고 있네.
우리 이거, 나름대로 아빠를 추모하는 거잖아?
고스톱 한 판 치면서 추모는 무슨. 어이없다는 듯 웃었지만 나름대로 일리가 있긴 했다. 아빠가 제일 좋아하던 게임인데, 패를 섞으며 웃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한데. 순간 머릿속을 스친 장면이 많아 코끝이 잠깐 -아주 아주 잠깐- 찡하기도 했고. 하여간 나름대로 추모한다 뜻을 붙였으니 고스톱 한 판의 의미가 크기도 커서 일단은 진지하게 추모 의식에 임했다. 진지하면 뭐해, 나는 늘 열정 없이 배우던 학생이었던지라 아빠의 가르침이 무색하게 아직 그림만 겨우 맞출 뿐이다. 양쪽의 훈수에 이리저리 흔들리다 금세 한 판이 돌고 동생이 났다. 몇 점인가 하여 하나씩 꼽아보는데 내가 다 넘겨다보기도 전에 동생이 먼저 6점, 하고 귀신같이 계산을 끝내더니 엄마 600원, 누나는 피박이니까 1200원 하며 바로 패를 섞었다. 숨 돌릴 시간 하나 안 주는 그 템포라니. 동시에 같은 장면을 떠올린 엄마랑 나는 킬킬 웃었다. 니가 아빠 피를 물려받긴 했구나- 하면서.
그렇다. 아빠는 (우리 집에서는 나름) 소문난 꾼이었다. 엄마는 아빠에게 화투 만지는 법을 배웠다. 다 까먹었지만 나 역시 아빠에게 처음 고스톱을 배웠고, 나보다 좀 더 관심이 많았던 동생은 더 많이 배웠다. 아무리 운칠기삼으로 하는 노름이라지만 그래도 나름 기술이라는 것이 필요한 법. 수에도 밝고 기억력도 좋은 아빠라 둘러앉아 치는 카드 게임에는 꽤나 강세였던 모양이다. '고스톱'에 '포커'는 기본이고 '섰다'에 '도리짓고땡'까지(나는 이게 뭔 게임 인지도 여전히 모르지만) 하여간에 카드 갖고 치는 게임은 다 칠 줄 알았다고. 아빠 친구들의 증언에 의하면 아빠가 매번 제일 신나서 달려드는 게 카드게임이었다고 했다. 가끔 만나서 아빠에 대한 추억을 나눌 때마다 이놈의 고스톱 얘기가 빠지질 않았다.
니 아빠는 성격도 급해서 판 느리게 돌아가는 것도 못 참았다니깐. 빨리도 섞어서 낙장도 없이 휙휙 돌렸어. 한 두어 번 돌면 내가 뭐 들었으니까 쟤는 뭐 들었고 이게 어디 깔렸고 훤히 판을 다 읽어. 지가 생각한 대로 빨리 게임 진행이 돼야 하니까 빨리 치라고 재촉하고- 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음 판 섞으면서 너는 이천 원 너는 사천 원 하고 계산도 혼자 다- 해줘. 그거 끝나기 전에 이미 계산이 다 끝난 거야. 누가 동전 없어서 지폐 뒤적이면 그것도 먼저 보고 지가 바꿔서 내주고 막 그랬어.
매번 들어서 레퍼토리를 외울 정도지만 나 역시 비슷한 장면 몇 개는 공유하고 있다. 딸을 앉혀놓고 겨우 고스톱을 가르쳐주며 괜히 싱글벙글하는 것 같던 아빠 얼굴이나, 착착 소리도 경쾌하게 패를 섞던 손(이건 신기해서 사진 찍어놓은 것도 두어 장 있고), 동전 가득 쌓아두고 은행 놀이를 하면서 훈수를 두던 말투도. 무엇보다 내가 멍하니 앉아 당하고 나면 니가 왜 이 판에서 질 수밖에 없었는지 신이 나서 설명해주던 아빠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처음부터 무슨 패가 어디서 나왔는지 다 기억하고선 게임을 한 번 싹 복기해주는데, 설명할 건 한참이고 빨리 다음 판은 진행을 해야 하고 또 이긴 것도 기쁘기 때문에 아빠는 웃는 얼굴로 침 튀기며 따다다다 설명을 뱉곤 했다. 말도 꽤 빨랐지만 항상 생각이 더 빨리 돌아가던 사람이라 흥분해서 뭘 떠들 때 보면 입가에 침방울이 고였는데, 평소엔 그렇게 얘기를 많이 하는 법이 별로 없지만 고스톱 판에서는 매번 그랬다. 느이 아빠 또 흥분해서 침 고인다, 하고 엄마가 혀를 츳츳 차며 웃으면 그제야 스읍 하고 다음 판으로 넘어가던 머쓱한 얼굴.
화투패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이것저것, 그러나 계속 아빠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지금 아빠를 추모하고 있다는 말이 꽤나 적절하기도 했다. 아빠는 다니지도 않던 성당에 가서 위령미사를 드린답시고 앉아 있을 때보다도 훨씬. 아마 아빠 것이었을 군용 담요를 두고 둘러앉아 아빠를 더 오래 생각하고 더 많이 그리워했다. 아빠가 있었으면 그거 이렇게 했을 텐데, 아빠였으면 너 지금 단번에 뺏겼을 텐데, 하고 암묵적으로 금기시되던 가정법을 겁도 없이 마구 들이밀기도 했고.
그러다 문득 궁금증이 일어 아빠는 언제부터 고스톱을 쳤냐고 엄마에게 묻기도 하고, 그리하여 몰랐던 스토리를 얻어내기도 했다. (나름 동네 유지셨던 할아버지라 큰 집 마당에서 아침저녁으로 동네 사람들 판이 벌어졌고 할머니도 심심하면 안방에서 친구들과 패를 돌리셔서, 어린 아빠는 옆에서 커피 심부름을 하며 절로 패 읽는 법을 읽혔다는- 뭐 거의 무림고수 성장 스토리를.) 다른 걸 다 떠나서 셋이 둘러앉아 아빠 얘기를 이렇게 오래, 그것도 웃으면서 나눠본 적이 있었던가. 제대로 된 추모는 남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필요할진대 이것만큼 건강한 추모도 없었다.
그 덕인지는 몰라도 하여간 나는 처음으로 고스톱을 진지하게 쳐봤다. 맨날 대충 그림이나 맞추다가 지겨워지면 홀랑 털고 일어나던 것을, '이게 몇 월이라고? 이걸 먼저 먹어야 된다고?'를 백 번 물어가면서 머릿속으로 하나하나 꼭꼭 씹어 넘겼다. 그렇게 한참 치다 보니 점점 손에 익어서 처음에는 내리 지던 것을 열 번에 한 번은 나고, 또 다섯 번에 한 번은 나고 그랬다. 확실히 아빠 닮아서 그런지 금방 따라온다 소리를 듣고는 또 한 번 킬킬 웃으면서. 점 백짜리 판에서도 벌써 만 원을 넘게 잃었지만 이제와서나마 아빠의 취미를 공유하고 아빠가 느꼈던 재미를 느낀다는 게 다른 의미에서 은근히 충만했다.
셋이 신나게 판을 벌였다는 소문을 들으셨는지 정월 초하룻날에는 (또 나름 집안의 꾼이신) 외할아버지가 화투패를 꺼내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얼떨결에 외갓집에서 또 고스톱을 한 판. 어제 앉아서는 내내 아빠의 얼굴을 상상하며 쳤다면 이번에는 내내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고스톱을 쳤다. 이렇게 할아버지와 마주 앉아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것도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명절이라고 해봐야 잠깐 와서 인사하고 밥 먹고, 꽁하니 앉아 있다 인사하고 돌아간 게 벌써 몇 번이니까. 아빠 생각을 하며 고스톱을 치지 않았다면 느끼지도 못했을 감정이다. 할아버지가 손주들과의 놀이를 진심으로 즐기시는 게 보여 애틋해질 때마다 나는 괜히 할아버지가 잘못 알려주셔서 다 잃었다고 투정도 부리고 혼자 다 따시면 어떡하냐고 애교도 부리고 했다. 뭐가 그리 재미지신지 이겨도 져도 할아버지는 껄껄 웃으셨다.
흘러나오는 뉴스에서는 가족끼리 고스톱을 쳐도 어떻게 하면 도박이고 아니고를 떠들어댔지만, 우리 중 누구도 이게 도박인지 노름인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삼대가 둘러앉아 몇 시간씩 웃으며 떠들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다는 걸 이제사 알았으니까. 다들 진즉부터 알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나는 이제사 알았다. 명절에 왜 다들 둘러앉아 고스톱을 치는지를.
고스톱의 판은 언제고 금방 끝나버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웃음은 길게 남는다. 그 남은 웃음을 기억하고 나누며 명절 내내 화투를 쳤다. 이번 설의 웃음도 언젠가 그리워할 날이 오겠지.
그래, 우리 설에는 고스톱을 치자. 떠날 이를 위해서든, 남을 이를 위해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