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드라이브 4기: 두 번째 키워드 - 안경
에세이 드라이브 4기: 첫 번째 키워드 - 간판
열한 살 때 갈월동 주민센터에서 수영을 배웠다. 수영도 재밌고 (끝나고 사 먹는) 떡꼬치도 맛있었지만 열두 살 때 관뒀다. 자유형 배영 끝내고 막 접영을 배우기 시작할 때 관둬서 아직도 접영을 못 한다. 문제는 수경이었다. 나는 여덟 살 때 안경을 쓰기 시작하여 열한 살쯤에는 이미 고도근시에 접어들고 있었다. 잘 때 빼고 안경을 그렇게 벗고 있는 건 수영할 때가 유일했다. 탈의실에 안경을 벗어놓고 도수 없는 수경만 든 채 걸어가는 길은 이미 희뿌옜다. 안 보이는 물웅덩이를 밟고 넘어지기라도 할까 봐 꼭 벽에 붙어서 고양이처럼 걸었다. 일 년을 꼬박 다녔지만 나는 아마 갈월동 주민센터 수영장과 후암동 주민센터 수영장을 구분하지 못할 테다. 한 번도 수영장을 제대로 본 적이 없으니까! 오히려 코앞에서 들여다본 타일 무늬나 하수구 구멍 같은 건 알아도, 한눈에 수영장을 담으면 퍼렇고 허연색만 일렁거릴 뿐이었다. 레인을 돌다가도 앞쪽 벽과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아 늘 한 박자 일찍 엉거주춤 손을 뻗었다. 같은 레인을 여러 명이 쓰기라도 하면 어디서 갑자기 사람이 튀어나올지 몰라 도망치듯 수영을 했다. 눈 질끈 감고 뛰는 거랑 비슷한 느낌으로다가.
도수 수경이 갖고 싶었다. 이건 생존의 문제였으니까. 뻔뻔하게 사달라고 했더니 엄마는 '비싸서 안 된다'라고 일축했다. 일주일 용돈이 오천 원이던 애한테 '비싸서 안 된다'는 건 우주 최강의 논리였다. '비싸다'는 것은 여러모로 상대적인 정의고, 어른이 보기에 비싸다는 걸 반박할 만한 논리나 세상에 대한 고도의 이해가 열한 살에게는 없었다. 반항해봐야 돈은 엄마 지갑에 있었으니 그걸 빼앗을 힘도 없었고. 내돈내산이 가능해진 지금 찾아보니 한 5만 원 정도 하는 것 같다. 아 난 또 몇십만 원은 했던 건 줄 알았는데. 이제라도 엄마에게 따지고 싶지만 거의 20년이 지난 일이니 묻어두기로 한다. 당시에는 기술이 덜 발달하여 지금보다 훨씬 비쌌을 수도, 혹은 얼마라도 비싸게 느껴질 만큼 아빠 월급이 쥐꼬리였을 수도, 혹은 매년 눈이 더 나빠져서 안경 바꿔주기도 빡센데 수경까지 바꿔줄 자신은 없었을 수도, 혹은 그러기도 전에 내가 변덕을 부려 수영을 관둘 거라고 의심했을 수도 있으니까. (엄마는 수영장 매점에서 파는 구슬 아이스크림도 '비싸다'고 자주 사주지 않았으므로 왠지 2번이 유력하다.) 하여간 그래서 나는 수영을 관뒀다.
거짓말이고 사실 수영은 아토피 때문에 관뒀다. 소독제를 푼 물이라 그런지 아토피가 너무 심해져서, 수영을 다녀온 날이면 피가 날 정도로 몸을 긁어댔기 때문이다. 의사의 조언을 들은 엄마가 그만 다니라고 했고 나도 동의했다. 그러나 내게 도수 수경이 있었다면? 엄마가 그만 다니라고 했을 때 나도 그렇게 맥없이 동의하진 않았을 거다. 그러니 뭐 수영을 관둔 데는 수경 탓도 있지 뭐. 고등학교 때는 도수 있는 선글라스를 두고서도 한바탕 논쟁이 있었으므로 내게는 질긴 트라우마다. 스무 살부턴 렌즈를 끼기 시작해서 더 이상 도수 있는 수경이나 선글라스는 필요 없어졌다. 렌즈를 끼고 끼면 되니까. 그러나 렌즈든 수경이든 안경이든 뭘 한 꺼풀 덮어씌워야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건 한 사람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으로 접영을 여전히 못 하는 것이 있겠고... 흠흠. 수영 얘기는 이쯤에서 그만하더라도.
안경이나 렌즈 없이 내 눈은 거의 기능하지 못하므로 (빛과 어둠의 존재와 희미한 색상 분포와 느낌적인 느낌만 구분 가능하므로) 내게는 안경이 곧 눈이다. 눈이 내 몸과 별개로 존재하며, 작은 실수에도 부러지거나 깨질 수 있고, 심지어 어디다 두고 오거나 잃어버릴 수도 있다! 간을 육지에 놓고 왔다던 토끼는 구라를 치는 거였지만 나는 실제로 종종 안경을 집에, 기숙사에, 호텔에, 혹은 한국에 두고 와 황망하곤 했다. 생애 첫 해외여행이었던 필리핀에서는 같이 간 친구네 아빠가 내 안경을 밟아서 안경이 기묘하게 삐뚤어졌고, 모든 사진에 나는 그 삐뚤어진 안경을 쓰고 애매하게 웃고 있다. 으. 다 불태울 수도 없고. 안경 대신 렌즈를 끼게 됐다고 공포가 줄진 않았다. 오히려 배가 됐다. 어딜 가든 렌즈는 렌즈대로 여분을 챙기고 안경도 빼먹으면 안 된다. 렌즈가 하수구로 쏙 빠지는 일이 일어날 수도, 억지로 끼다가 찢어질 수도 있고, 그러면 난 또 불태우고 싶은 여행 사진을 한가득 남기게 될 테니까. 안경을 빼먹었다간 여행 내내 렌즈를 자기 직전까지 끼고 눈 뜨자마자 더듬더듬 찾아 또 껴야 할 수도 있고. 으엑. 안경과 렌즈를 잃어버리는 주제로 꿈도 몇 번 꿨다.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아니 진짜로. 웬만한 귀신 꿈보다 더 무서운 꿈이었다.
키 큰 사람도 예쁜 사람도 유연한 사람도 부러워하며 살아왔지만 무엇보다 눈 좋은 사람이 부럽다. 부러워 죽겠다. 도수 수경을 사니 마니 하며 엄마랑 안 싸워도 돼서 부럽고, 라면 먹을 때 안경에 김 서릴 걱정 안 해도 돼서 부럽고, 렌즈가 찢어지거나 안경이 부러져 갑분 버드박스(!)가 될 걱정을 안 해도 돼서 부럽다. 라식이나 라섹 같은 수술이 흔해진 시대지만, 내게는 여전히 개안의 기쁨보다 작은 부작용이 가져올 불행이 더 생생하여(왜냐면 지금껏 비슷한 불행을 겪어왔으니까) 아직 시도하지 못했다. 들뜬 마음으로 여러 번 그 앞까지는 갔지만 매번 풀이 죽어 되돌아왔다. 이렇게 안경에 대한 애증을 낱낱이 적다 보니 또 라식 라섹이 하고 싶어진다. 뭐가 되었든 눈이 좋아지는 수술이 하고 싶다. 그러나 이번에도 각종 후기와 병원 정보와 부작용 같은 걸 샅샅이 검색하다 눈만 더 나빠지겠지. 그렇게 나는 비싼 돈을 주고 도수 높은 안경을 또 새로 맞추겠지. 아 정말 그냥 라섹할까. 전남친이 수술한 안과가 진짜 괜찮댔는데 병원 이름을 못 물어보고 헤어졌다. 역삼동 근처랬던가. 아, 나는 언제쯤 도수 수경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언제쯤 눈 두고 올 걱정 없이 훌쩍 바다 너머로 떠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