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은 어디로 갔을까

by 예미니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오싹하지만, 생생한 그날의 기억. 한 친구가 교탁 앞에서 벌을 받고 있다. 아니, 벌이라기보다는 구타에 가깝다. 이제 갓 서른 정도 됐을까. 젊은 남자 선생님이 한 여학생을 맨손으로 때리고 있다. 이유는 국어 시험 0점. 구체적인 대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구타의 이유는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정도였을 것이다. 그것은 사랑의 매가 아니었다. 그놈은.. 교사자격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자식은 미친놈이었다. 그렇지만 그때는 아무도 대항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이 고통과 침묵의 시간이 어서 끝나기만을 기다릴 뿐. 누구 한 명 일어나서 지금 뭐 하시는 거냐고 반항 한번 할 수 없었던 그런 시대.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거나 경찰에 신고할 수 있는 그런 시절이 아니었다. 엄마는 내 이야기를 다 듣고서도 믿지 않는 눈치였다. 과장이 심하다고 생각했을까. 딱히 그 선생님을 두둔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내 편을 들어주지도 않았다. 나의 부모님 세대에게 선생님이란 존재는 무한한 존경의 대상인 스승이었다. 그런 엄마 딸이 선생이 되었지만 내가 퇴임을 할 때까지 스승으로 대접받을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씨발.. 학교 그만 두면 될 거 아니야. 나 경찰에 신고할 거야. 의자를 집어던지고 난동을 부린다. 17년간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일 년에 꼭 한 두 번은 목격하게 되는 현장의 모습이다. 여기에 교사에게 직접 폭력까지 가할 때 사람들은 뉴스로 접하게 되고, 요즘 애들 무섭다.. 교권이 이렇게까지 추락하다니.. 하면서 혀를 차지만 시간이 지나면 금세 잊힌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자신의 화를 참지 못하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데 뭐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내가 직접 보고 들은 상황에서는 그렇다. 제출하기로 한 핸드폰을 내지 않고 몰래 사용하다가 들켜서, 수업시간에 자는 걸 깨웠다고, 이유 없이 조퇴하겠다고 떼쓰다가.. 본인이 원하는 걸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다 해달라는 대로, 교사는 그걸 해 줄 수 없는 역할이다.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에서 아이는 결국 욕하고 뭘 집어던지고 분노조절에 실패한다. 이런 학생들에게 이골이 났거나, 선천적으로 인내력이 강하거나, 영혼을 비우고 출근하는 훈련이 잘 되어 있다면 정신건강에 문제가 없겠지만 나처럼 예민하고 심장이 약한 사람들은 아무리 적응하려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광경이다. 이 상황의 끝은 학생이 사과하면 아무 일 없던 때로 돌아가는 것이고, 반성의 기미가 없으면 생활교육위원회라는 것을 열지만 퇴학과 같은 극단적 결론보다는 회유와 상담과 방과 후 청소 정도로 끝난다. 학부모도 더 이상 교사 편이 아니다. 아이의 말만 듣고 당장 학교로 달려오거나 전화로 따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교양 있게 말하든 막가파로 나가든 그들의 말속에는 ‘네가 뭔데 감히 내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하냐’는 공통분모가 깔려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러한 일들이 일상다반사가 아니라는 것. 악랄한 소수의 횡포에 정신적으로 무너져도 여전히 다수의 학생들은 평범하고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니까 그 힘으로 또 버티게 된다.


내가 학생이었을 때, 그리고 내가 교사가 되었을 때의 두 상황이 오버랩될 때면 늘 드는 생각이 중간은 어디로 갔을까..이다. 왜 교육의 현장은 극과 극의 상황으로 치닫는 것일까. 중간지대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교권도, 학생 인권도 다 중요한 것인데 왜 과거와 현재는 그저 한 방향으로만 달리는 것일까. 입시도 마찬가지 아닌가. 어떤 지역은 절대다수가 수능에 매달린다. 또 어떤 학교들은 대다수가 수능을 포기하고 수시전형에 올인한다. 한쪽에서는 정시를 확대해야 교육평등이 이루어진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수시전형을 사수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대체로 부모의 교육 수준이 높고 경제적 여유가 클수록 정시전형 확대를 외치는데 이유는 잘하는 아이들이 몰린 학교는 내신등급에서 불리해서 이를 수능으로 극복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어떤 학교에 기초학력 수준이 낮은 학생들이 많다면 상대적으로 내신점수를 잘 받을 가능성이 높으니 잘하는 아이들과 경쟁하는 수능보다는 수시전형이 더 유리하다. 쉽게 말해서 A학교에서 3등급을 받는 학생이 B학교에 오면 1등급도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면 B학교에 가면 되지 않냐고 하겠지만, 공부 못하는 학교는 또 싫다고 한다. 결국 본인들은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면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입시제도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여기에도 중간은 없다. 어느 한쪽을 찔끔찔끔 조정한다고 해도 양쪽 모두 불만을 품게 되는 상황은 계속될 것이다. 교권의 황금기에 나는 학생이었고, 학생인권이 최우선인 시대에 선생 노릇을 하고 있다. 입시를 처음 지도할 때는 수능이 전부였는데, 5년쯤 지나니 학종 전성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정시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중간을 찾고 싶다. 균형감을 갖고 싶다. 도대체 중간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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