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다섯 번째 학교인 특성화고등학교에 근무한다. 첫 학교는 농어촌 특별전형이 적용되는 시골 학교였고 두 번째는 도심지 여고, 다음 근무지는 과학중점고등학교였다. 그리고 혁신학교에서 5년을 보냈다. 공립학교 교사들은 평균 4-5년마다 한 번씩 학교를 옮기고, 10년마다 지역도 옮겨야 한다. 여기서 지역이라 함은 서울은 구 단위, 경기도는 시 단위이다. 이러한 순환 구조는 형평성에 근거한다. 소위 말하는 인기 지역, 인기 학교를 소수의 교사가 독점하지 않기 위함이다. 그런 이유로 신규 교사의 첫 발령은 대부분 의지와 상관없는 외지에 그야말로 꽂히게 된다. 다음부터는 희망지를 받아 고려한다고 하지만 나의 경우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다음 전보지가 어디일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발령지를 기다리는 교사들은 전보 신청서를 제출하는 12월부터 발표가 나는 2월까지 심란함과 기대감이 뒤섞이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경험한다. 참 신기한 것은 몇 번의 경험이 쌓이면 익숙해질 만도 한데 새로운 부임지를 기다리는 마음은 늘 새롭고 긴장된다는 것이다. 인맥이 넓고 정보력이 좋은 선생님들은 예상 가능한 학교들을 짚어가며 관리자 특성, 학부모 성향, 학생들 수준 등등 들으면 솔깃할 고급 정보들을 전해준다. 아무대로 향후 몇 년 간 내가 몸담게 될 일터이니 이 시기에 들려주는 사소한 이야기 하나도 허투루 듣지 않게 된다.
농어촌전형 학교는 지금은 보편화되었지만 내가 근무할 시기는 거의 초창기였다. 당시 고 3 담임이었던 나는 농어촌전형 입시에 대한 정보와 데이터가 너무도 부족하여 감으로 깡으로 부딪혀가며 학생들을 지도했던 기억이 난다. 농어촌 전형은 도서벽지 등 교육여건이 어려운 지역의 학생들에게 고등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대학에서 정원외 선발을 두는 제도이다. 특혜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정원외 선발 인원이 학과별로 한 두 명이거나 그나마도 선발하지 않는 학교나 학과들도 많기 때문에 교육 복지 차원에서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다만 초기 도서벽지 산간지역에만 국한되던 것이 이후에 많이 확대되어 애초의 취지가 무색해진 건 아닌가 싶다.
여자고등학교는 그야말로 여인 천하이다. 개인적으로 여고에 근무할 때 나는 좀 갑갑함을 느꼈던 것 같다. 관리자 이하 교직원의 90%가 여성이었고 학생도 물론 여성이었다. 이것은 흡사 남자들이 군대에 갔을 때 느끼는 중압감과 비슷한 느낌일 수 있다. 물론 여고를 선호하는 선생님들도 많다. 여학생들이 명랑하고 살갑고 따뜻한 면이 부각될 때는 그렇다. 그렇지만 여학생들 간의 미묘한 감정 대립이나 말싸움, 예민함 등 교사로서 해결하기 힘든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입시 지도를 하며 놀랐던 것은 4년제 지방 대학보다 가까운 전문대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했다는 것이다. 특히 학부모들의 요구가 더 강했다. 딸을 집에서 멀리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아주 공부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면 지방까지 보내는 교육투자는 안 하겠다는 의도가 읽혀서 씁쓸할 때도 있었다.
과학중점학교는 정말 180도 다른 환경이었다. 이 곳의 학생들은 이공계를 희망하는 학생들 중에서도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아이들이었다. 의대 진학을 원하는 학생들도 다수 있었고 대부분 학자나 연구원을 꿈꾸는 학생들이었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정말 신기했다.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집중 또 집중해서 공부하는 모습이란. 물론 개중에는 잠만 자는 녀석들도 있었는데 그 아이들은 남들 안보는 새벽에 공부하는 올빼미족이라고 했다. 집단의 힘이란 이런 거구나. 비슷한 성향이 모이면 내가 속한 이 세계가 전부라고 믿게 되는 그들만의 리그. 소위 말하는 공부 잘하고 똑똑한 모범생들은 자기 관리가 된다. 체면과 자존심이란 것이 발달하여 지적받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많은 학교는 생활지도 업무는 줄게 되지만 수업이든 학교 생활이든 개개인의 특성을 반영해 주지 않으면 민원이 발생하고, 매사에 조심하고 배려할 일이 많다. 교사가 정신적으로 피곤하고 예민해진다.
혁신학교는 정말 멘붕이었다. 당시 교육계에서 혁신학교가 한참 뜨는 이슈였기 때문에 어딜 가나 질문이 들어왔다. “혁신학교가 뭐죠?” 답은 정말 나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학생과 교사가 함께 성장하고 행복한 학교라고 하는데 그 아름다운 이상을 실천하는 프로세스가 혁신적이지 않다. 관리자의 마인드가 혁신적이지 않다. 교사들의 태도도 혁신적이지 않다. 학부모들은 혁신학교를 회피한다. 그런데도 혁신학교는 미래 교육의 발판이자 핵심인 듯이 홍보되고 있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 학교 현장에 손에 잡히지 않는 거창한 이상이 자리 잡고 있는 느낌이었다. 혁신학교로 성공한 사례들을 케이스 스터디하면서 뭔가 실체에 다가가는 것 같다가도 그래서 혁신학교가 뭔데?라고 하면 솔직히 잘 모르겠어.. 란 답이 돌아왔다. 그만큼 혁신이란 길은 결코 만만하지가 않은 것이다. 교육의 방향은 분명히 변하고 있다. 교육 복지를 강조하고 학생 중심을 외친다. 학생이 행복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러나 입시 제도 하나도 바꾸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여전히 견고한 이 학벌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얼마나 강한 혁신과 변화가 필요할지 가늠이 안 된다. 갈 길이 멀다.
특성화고등학교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이 가장 큰 곳이다. 우선 특성화 학교를 이해하려면 고등학교 입시를 알아야 한다. 중학교 3년간 학업성적을 포함한 학교 생활을 점수화하여 내신점수로 환산하고 이 점수를 토대로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고등학교에 지원하게 된다. 특성화고등학교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크게 두 부류이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갈 수 있지만 특성화학과를 희망해서 자진 선택한 학생과 인문계 고등학교에 갈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지원한 학생이다. 한마디로 극과 극인 학생 구성이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이 큰 이유는 직업교육 실천이 특성화고등학교의 존재 이유인데 현실적으로는 학생 구성원의 특성상 제대로 된 직업교육을 실천하기가 힘들다. 어쩔 수 없이 진학한 학생들에게 공동체의 규율과 규칙은 버겁고 학교라는 공간은 훈계와 잔소리, 계속되는 지적질로 자신을 괴롭히는 곳일 뿐이다. 직업 교육 이전에 생활 교육에 교사의 에너지가 쏠리고 있다.
다 똑같아 보여도 학교는 다 다르다. 나는 아직까지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멋진 학교를 만나지 못했다. 나에게 주어진 교직인생에서 학교. 과연 어디까지 근무해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