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소개팅은 1997년 3월이다. 고등학교 동창이 같은 과 동기를 적극 추천하여 소개팅을 주선하였고 우리는 대학로 어느 북적이는 카페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그때는 직진으로 다가오는 소개팅남이 왜 그리 싫고 부담스러웠는지 이중 삼중 벽을 치며 철벽녀 행세를 했었다. 세상에 남자는 많고, 기회도 많을 줄 알았던 그때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니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자괴감이 밀려온다. 그렇게 20년 이상 꾸준히 소개팅을 해왔는데, 무슨 일이든 10년 정도 하면 전문가가 된다더니 이건 오히려 길게 할수록 퇴보하는 느낌이다. 나에게는 한 번도 소개팅이 연애로 이어지는 행운이 없었다. 짧게는 한 번의 만남으로, 대게는 썸 타는 느낌으로 한 달여간의 탐색전이 이어지다가 흐지부지 되기를 무한 반복. 이쯤 되면 성격에 뭔가 문제가 있거나 매력을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든 사람이 아닌가 싶을 것이다. 잠시 자아비판과 성찰의 시간을 가져본다. 소개팅은 도대체 왜 나와 맞지 않는 것인가.
소개팅 달인 친구가 있었다. 한참 연애가 고프던 시절 그 친구의 높은 성공률을 보며 진지하게 비법이 무엇인지 물어본 적이 있다. 별다를 게 있겠냐 싶었는데 이 친구, 의외로 자신만의 매뉴얼이 있었다. 친구야, 내 말 잘 들어. 소개팅에서는 항상 여지를 남겨야 해. 애프터 신청에 남자가 선뜻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대화 중간중간에 자연스럽게 여지를 남겨두는 거야. 음식을 시킬 때도 다음번엔 이걸 먹어보면 좋을 것 같다던가, 어떤 영화가 언제 개봉하는데 엄청 기대하고 있다던가....
솔직히 10년도 더 된 이야기라 기억이 정확하진 않다. 그리고 행간 파악을 피곤해하는 요즘 스타일에는 안 먹힐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친구는 자신만의 스킬이 있었다. 이건 마치 시험 준비에 최적화된 족집게 강사의 스킬 전수 노하우와 비슷하다. 아무리 기초가 중요하다고 해도 역시 실전에선 스킬인 건가.
생각해보면 소개팅만큼 어색하고 불편한 만남도 없다. 처음 보는 남녀가 만나서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사생활에 대한 정보를 탐색한다. 계속되는 질문과 답변, 재미없는 농담과 어색한 침묵이 공기를 가를 때 가끔은 상대방에게 들키지 않게 시계를 들여다보고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자연스럽게 헤어질 타이밍을 계산하게 된다. 물론 첫 만남부터 느낌이 좋고 마음에 든다면야 시계를 들여다볼 일도, 핸드폰에 자꾸 손이 갈 일도 없다. 그렇지만 두 어시간 마주 앉아 대화를 통해 호감을 느끼고, 그래도 사람은 삼 세 번은 만나봐야 한다는 누가 만든 인생 규칙인지 모를 그 룰을 따라보겠다고 마음먹기까지,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남녀 모두에게 동시에 일어날 확률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지 않은가.
나의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 주의 성향에서 사람들은 소개팅 실패 이유를 찾는다. 누구나 자연스러운 만남을 원하지. 그게 생각처럼 잘 되면 굳이 소개팅을 왜 하냐고. 지금 너의 환경을 돌아봐. 어디서 자연스러운 만남을 찾을 건데? 이 문명사회에서 도대체 자연스러운 게 있기나 해? 너처럼 이상적인 로맨스만 기대하다간 소개팅은커녕 그냥 연애도 힘들어진다. 정신 차려 이 친구야.
맞다. 나는 여성이 90% 이상인 직장에 다니고 있다. 나이를 먹으니 몇 안되던 남사친들도 모두 가정을 꾸려 떠나가고 내 삶의 99%는 여성들과의 연대로 채워져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현실에선 1년에 한 번 찾아올까 말까 하는 귀하디 귀한 소개팅으로 내 나이를 실감한다. 아주 오래전 101번째 프러포즈라는 식상하고도 뻔한 로맨스 영화가 있었다. 99번의 선, 100번째 만남.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영화. 나는 지금 결말을 비워 둔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있다. 이렇게 긴 세월 그 많은 소개팅남들에게 잠깐 스쳐가는 인연 1,2,3으로 기억될 줄 1997년 3월의 나는 상상조차 못 했겠지. 영화 같은 결말을 만들어내든 흑역사의 한 페이지를 다시 한번 장식하든 언젠가 오늘의 나를 기억할 날은 또 올 것이다. 이번 생은 틀렸다고 한들 슬퍼하는 일은 없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