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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미니 Nov 19. 2020

불쾌한 걸 어떡해

아. 오늘 왜 이렇게 기분이 다운되고 우울하지. 날씨 탓인가. 옆자리 김 선생님이 기지개를 켜며 혼잣말을 내뱉는다. 어머 나도. 나도. 교무실에 앉아 있던 선생님들이 한 명씩 동조한다. 사실 예미니 이 선생에겐 우울하고 다운되는 기분이 오늘따라 느끼는 감정만은 아니다. 이번 달은 첫날부터 괜히 마음이 심란하더니 특유의 예민함이 절정에 이르고 있다. 누군가 왜냐고 묻는다면 '그냥.. 나도 몰라..' 하고 말 테지만 사실 이 '그냥'이라는 말속에는 미묘하고도 신경질적인, 뭐라 말로 설명하기 복잡한 그렇고 그런 이유들이 켜켜이 숨겨져 있다. 누군가에게 이해받기 위해 일일이 설명하기 귀찮은, 결국 '넌 너무 예민해. 가볍게 넘겨버릴 수 없니?'로 귀결될 그런 사사로운 일들을 열거하기 싫을 때 '그냥'이란 말은 참으로 유용하다. 

요 며칠 학교 안에서 마주치는 불특정 다수의 인간들이 이 선생의 신경을 건드린다. 때로는 무례함으로,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결정들로, 한숨이 나오는 답답한 상황들로. 누군가에겐 쉽게 털어버릴 수 있는 그런 일들이 예미니 이 선생에게는 하나같이 거슬리고 불편하다. 반지하 어디쯤 표류 중인 우울한 기분을 안고 유독 혼자 불쾌하고 혼자 마음 불편한 예민 보스 성격을 버리지 못하는 이 선생. 다시 태어나야 할까 보다. 세상 둔감한 인간으로.     

아이들을 지도할 때 이 선생의 예민함은 강력한 무기이다. 특히 거짓말에 직방이다. 영화 주연상 뺨치는 연기력에 모두를 속여도 예미니 이선생 앞에서는 다들 무너진다. 한참을 실랑이를 하다가도 결정적 순간에 허점을 짚어내면 그렇게 당당하던 아이들도 바로 고개를 숙인다. 잔머리 굴리는 얄미운 동료에게 가끔 허를 찌르는 한마디 던져주면 그때부터 슬슬 눈치를 본다. 그런데 말이야. 이렇게까지 할 일이야 이게? 벌도 독침을 쏘면 힘을 잃고 쓰러지는데 그렇게 매번 예민 침을 쏘아대면 너는 버틸 수 있겠니? 

가끔 재미로 타로점을 본다. 11월의 타로카드는 세 개의 검이었다. 관계의 불안, 상처, 헤어짐, 실패 등이 연상된다. 타로의 매력은 신기하게도 현재 마음가짐의 발로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인생에서 대단한 사건이나 큰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거나 두려워하지만 사실 우리의 상처는 대부분 일상의 소소한 일들과 관계 속에서 생겨난다. 별 일 아닌 듯 보이는 그런 일들에 누군가는 우주가 무너지고 세상이 끝나버린 것 같은 고통 체험을 반복한다. 

예미니 이선생도 조용히 11월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11월은 원래 그런 달이라고, 사람을 예민하고 짜증 나게 만드는 그런 달이라고,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암튼 그런 달이라고 그렇게 자기 체면을 건다. 다행인 것은 12월 카드가 희망적이라는 것이다. 행운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선생의 일상과 인간관계의 안정을 기대해본다. 무난한 하루. 적당치의 예민함이 발동하고 꼭 필요한 만큼만 예민하게 활동할 수 있는 그런 무난한 하루로 12월을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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