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꼰대입니까?
꼰대 : 권위적인 사고를 가진 어른이나 선생님을 비하하는 학생들의 은어
동료 선생님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은연중에 요즘 아이들이라는 말을 자주 쓰게 된다. 아이들 앞에 붙은 '요즘'이라는 단어 하나가 주는 어감은 확실하다. 분명 요즘 아이들은 과거의 학생들과는 또 다른 코드가 있다. 코로나와 메타버스로 대변되는 격동의 현대사를 몸소 겪고 있으니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순차적인 발전을 경험한 기성세대와는 뼛속부터 다른, 새로운 모드가 빌트인 된 세대다. 거기에 각종 매체와 전문가들이 이들을 분석하고 MZ세대라는 대표성을 부여함으로써 그 영향력과 당당함은 실로 막강해졌다. 그래서일까. 꼰대로 몰린 우리들은 머리와 가슴이 자꾸 따로 논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저런 말을 하지.. 저 버릇없는 놈을 진짜.... 아.. 무개념... 속에서는 부글부글하지만 어쨌든 머릿속에서는 이해 회로를 풀가동 해 본다. 성찰과 반성은 변화와 혁신을 두려워하는 꼰대의 몫이니까. 공동체 생활과 규칙 이행이 기본인 학교 생활에서 그 틀을 벗어난 아이들의 말과 행동은 갈등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MZ세대로 분류되는 이제 막 서른이 된 젊은 교사마저도 '제가 꼰대여서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요..'라는 말을 자주 한다. 탈권위, 인권존중의 교육은 당연한 것이지만 당당함과 자신감을 반항과 무례함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개성과 고유성 존중의 결과로 안하무인이 양성되고 있지는 않은지, 교사에게 강요되는 학생에 대한 헌신적 이해와 사랑이 영혼 없는 친절함으로 전락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을 좀 해보자.
나는 언제부터 꼰대였을까?
설레다 : 마음이 가라앉지 아니하고 들떠서 두근거리다
길라임 씨는 몇 살 때부터 그렇게 예뻤나? 현빈의 말 한마디에 전 국민이 설렜던 때가 있었다. 갑자기 이 대사가 떠오른 건 내가 언제부터 꼰대였을까를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썸을 타고 연애를 하는 그들만의 세상에서 유치함과 오글거림이 용납될 수 있는 건 바로 이 설렘 때문이다. 언제였던가. 내 몸 안에서 설렘 세포가 활동을 멈추었던 때가. 정확히 몇 살에, 어떤 계기로 꼰대가 되었는지 확신할 순 없지만 무엇을 해도 그다지 설레지 않는 그 시점부터 나의 꼰대 인생은 시작되었던 것 같다. 인쇄가 끝난 원안지의 오타를 발견하고 자책하며 잠 못 들던 일, 꼿꼿하게 대들던 학생 앞에서 벌게진 얼굴로 손이 떨리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힘주었던 일, 수시 원서 접수 후 서류제출 시기를 놓친 학생과 함께 넋 놓고 울었던 일.. 서툴렀지만 가슴이 요동치던 그런 날들이었다. 지켜주지 못했던 그때 그 시절 흑역사의 대가로 나는 더 노련해졌고 단단해졌다. 그간의 인생 경험과 훈련 덕분에 실수는 줄고 업무 능력은 향상되었다. 이제는 그것이 인간관계이든 업무이든 간에 적당한 선을 넘지 않으면서 불편한 것은 멀리하고 낯선 것은 경계하며 나만의 안전지대를 견고하게 쌓아 올리는 중이다. 덕분에 웬만한 일에는 크게 요동치지 않는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 적당히 만족하고 적당히 평화롭다. 대부분의 학교 일은 예측 가능하고, 골치 아픈 변수가 생기더라도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다 보면 핸들링 가능한 수준이 된다. 이를 지켜보는 신규나 저 경력 교사들은 선생님, 대단하세요..라는 말을 가끔 하는데 사실, 나 정도의 경력과 연차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이다. 문제는 익숙함에 물들어 모든 것을 예단하는 자신만만함이 발동될 때이다.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교직 사회에도 '내가 예전 학교에서 그 수업했었는데, 그 연수 들어봤는데, 그 사업 맡아서 해봤는데, 그런 애들 많이 만나봤는데, 그런 관리자 상대해봤는데...'로 시작하는 '라테는.. 타령' 중독자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경험치에 기반한 데이터와 통계를 바탕으로 확신에 찬 결론을 내리는데 대부분은 '그거 안돼'로 귀결된다. 이런 부류에 속하고 싶진 않다. 동료 교사뿐 아니라 학생들의 의욕마저도 꺾어놓는 노골적인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부단한 성찰과 반성은 필수이다.
꼰대에서 벗어나고 싶으세요?
애쓰다 : 마음과 힘을 다하여 무엇을 이루려고 힘쓰다
- 부장님, 방탈출 게임 정말 재미있어요. 친구분들과 함께 해보세요.
- 선생님, 내 친구들은 진짜 방을 탈출하고 싶어 해. 남편과 아이들 없는 세상을 꿈꾸는데..
- 저런.. 진짜 재미있는데.. 그럼 저랑 해보실래요?
어느 날 그렇게 J 교사는 나에게 신문물을 전파해주었다. MZ세대이자 방탈출 게임 덕후인 그녀는 고맙게도 나를 파트너로 선택해 주었다. 요즘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한다는 그 방탈출 게임을 경험해보기 위해 마지막 방문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젊음의 거리' 홍대에 갔다.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신세계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기대감도 잠시, 낯설고 어색한 가상의 공간 속에서 나는 무지했고 어리바리했고 쓸모없는 인간이었다. 승부욕 강한 그녀가 혼자 고군분투하는 동안 나는 힌트에 대한 감도 못 잡은 채로 고민만 하다가 한 시간이 지나갔다. 게임이 이렇게 즐겁지 않아도 되는 건가.
- 미안해. 내가 도움이 안 되네..
- 괜찮아요. 이번 게임 난이도가 높았어요. 처음엔 다 그래요..
처음엔 다 그렇다.. 이런 말을 얼마 만에 들어보는 걸까.. 최근 들어 나에게 처음인 일이 있었나.. 언제부턴가 익숙한 환경 속에서 익숙한 사람들만 만나며 익숙한 장소에 가고 익숙한 일들만 하고 있었다. 나의 당당함은 이런 익숙함에서 나왔던 거였구나. 그래서 능숙해 보였던 거구나.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익숙해서였던 거구나..
- 나 방탈출 게임하러 홍대 갔다 왔어.
친구는 왜 빵 터진 걸까. 그리고 이어진 한마디.
- 너.. 참.. 애쓴다.
애쓴다는 말.. 뭔가 좀 짠한 느낌이다. 이러려고 한 게 아닌데. 왜 나는 짠한 꼰대가 되었을까. 그래도 소득은 있다. 익숙함에 도취되지 않으려는 노력. 평탄한 완곡도 좋지만 변주를 가미한 색다른 곡으로 인생을 꾸며보는 일. 지금부터 꾸준히 고민해볼 생각이다. 지나온 삶만 되돌아보는 과거 회귀형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나의 인생은 열린 결말이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