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람이 모인 공동체가 한마음이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우리 학교에서 유독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최고라고 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급식시간'이다.
나도 아이들도 이 먹는 즐거움이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을 빠르게 해준다.
우리 반 아이들도
"우리 학교 급식은 정말 맛있지 않아요?"
"와~ 어떻게 이렇게 급식이 나올 수 있죠?"
아이들뿐이 아니다.
나도 교실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오늘의 메뉴이다.
'도대체 오늘의 메인 메뉴가 뭐지?'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모든 반찬이 메인이고
반찬용기가 부족할 정도로 다양하고 넘치게 채워주시는 영양 선생님과 급식실 선생님들의 사랑은 우리를 살찌운다.
그래서 학기가 시작되면 살이 빠져야 하는데 반대로 살이 찌고 있다.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걱정은 아침 등교 전까지만 유효할 뿐, 일단 점심시간이 되면 기억에서 사라진다.
모두가 좋아하는 이 급식은 나는 특히 사랑한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한글 수업에 활용하는데 이만한 교육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보통날의 급식이 이 정도다.
내가 그날 먹은 음식 이름을 아는 것, 즉 뭔지는 알고 먹는 것.
나는 그것도 나를 돌보는 일이고
음식점에 가서 다른 사람이 시켜주는 음식만 먹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표에서 보고 선택해서 먹는 것은 사람의 품위와 인격에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한글을 하나하나 배워 갈 때 신이 나는 것은 한 글자 한 글자 의미가 되어 나의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것을 읽는 기쁨을 읽는 나는 물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도 얼마나 흡족한지 잘 알고 있다.
한글 지도의 훌륭한 자료는 바로 나의 생활과 연관 있는 것, 관심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급식 메뉴는 아주 중요하다.
나는 그래서 아이들의 받아쓰기용 숙제나 질문 노트에 급식 메뉴를 활용한다.
매월 초, 식단 표를 출력하여 이 달에 학습할 낱말들을 뽑고, 그림 자료를 만든다.
그리고 그날 그날 메뉴를 받아쓰기 숙제를 내면 끝!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그림 자료 없이 글씨만 써서 집에서 써오라고 하면
집에 가면 그 글자가 어떤 낱말이었는지 생각나지 않아 따라 쓰기에서 끝나는 경우가 있다.
이 방법을 이용하니 내가 쓰고 있는 글자가 어떤 낱말인지는 알고 쓰게 된다.
다음 날은 어제의 숙제를 받아쓰기 한다.
아이는 이날 수박, 박수가 같은 글자로 이루어졌는데 뒤집으면 된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기뻐했다.
그런 아이에게 나도 박수를 보냈다.
아이들의 수준에 맞게,
받아쓰기용으로.
한글을 어느 정도 읽고 쓰는 아이는 일과를 떠올리며 하루 노트에 정리할 수 있도록 질문으로 남긴다.
이때도 그날 점심이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역시 그림 자료를 붙여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정성스레 준비해 주시는 귀한 만찬을 즐기기 위해서는
읽을 줄 알아야 통과가 된다.
배움의 기쁨을 체득한 어린이가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 나오는 날은 나는 더욱 힘주어 읽는다.
'된장 깻잎, 아욱 된장국.'
선생님이 깻잎을 좋아하니까 많이 달라고 이야기한다며
영양 선생님께 드릴 귀여운 쪽지를 쓴 아이들.
이렇게 우리는 한글 공부를 먹고사는 것이 곧 생명이니 목숨 걸었다고 말할 정도로 진심이다.
한글 어느 정도 읽게 되면 우리 모두 식당에 가서 메뉴판 보며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읽고 선택해서 먹어보자는
약속을 빠르게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 점심 메뉴는 아욱 된장국이다.
이 아욱 된장국을 선생님의 솔푸드라고 이야기했던 것을 기억하는 아이들이 이야기한다.
"아, 오늘은 선생님이 아욱 된장국 많이 달라고 이야기하겠네."
이 아이들 벌써 나를 파악했네?
먹는 것에 보이던 진심이, 서로를 향한 진심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