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화 May 25. 2024

천천히 걷기

교실 문이 힘겹게 열린다. 체구가 작은 타조가 열기에 교실 문이 꽤 무겁다. 그것을 알고 있지만 나는 열어 주지 않는다. 가끔 문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면 나는 교실 문 한쪽에 숨어 있는다. 타조가 힘들게 문을 열고 들어오면 “얏!” 하며 깜짝 놀라게 하기 위함이다. 

  왜소한 체구, 불분명한 발음과 학습격차로 통합학급에서는 친구들 틈 사이에서 따라가기 바빴을 타조에게 특수학급은 숨어있던 다정함을 보여주고 때로는 학습이 더 어려운 형과 누나에게 선생님도 되어 줄 수 있는 공간이다. 교실에 오면 늘 “선생님~ 내가 숙제를 해왔게요? 안 해왔게요?”이야기하는 능청함을 보이고, 점심을 먹기 위해 통합학급으로 가면서 다정한 인사도 잊지 않는다. “선생님~ 점심 골고루 먹어요. 깻잎만 많이 먹으면 안 돼요.” 급식에 나오는 오늘의 음식을 알려주면 선생님이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해 두었다가 이야기하는 타조의 섬세함이 묻어있다.     

 지난주 전교생이 진로 체험을 위해 분당의 ‘잡월드’로 체험학습을 다녀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체험이 가득한 곳에서 타조는 신나 보이지 않았다. 두려움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새로운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하며 타조의 눈빛은 새로움에 대한 설렘보다는 불안함이 가득이었다. 아이의 불안한 눈빛을 읽었음에도 나는 다른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아이들이 걱정되고 궁금하여 그 앞을 비우곤 했다. 아이들에게 인기 있던 ‘카페’ 직업 체험을 하며 평소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타조가 신나서 참여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돌아와서 보니 입이 삐죽 나와 있었다. 타조의 삐죽 나온 입이 마음에 가시처럼 걸렸다. 타조의 눈빛과 쭉 나온 입술이 아이들을 대신해 ‘조금 더 기다려 주세요.’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요플레 만들어 온 것을 보고는 점심을 먹고 어서 먹으라고 했다. 들고 다니다 애써 만든 것을 흘릴 수도 있고, 차에 쏟을까 걱정되었다. 날씨가 덥기에 정성스레 만든 요플레가 상할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타조는 “안 먹고 싶어요. 엄마 주고 싶어요.”라고 이야기한다. 얼마나 예쁜 마음인지 알면서도 재차 나는 타조에게 날씨를 걱정하며 먹을 것을 권했다. 어쩔 수 없이 타조는 자신이 만든 요플레를 점심 식사 이후 먹었다. “타조가 만들어서 더 맛있었지?”라고 묻는 나의 말에 고개만 몇 번 끄덕였다. 


 뒤늦게 후회했다. 그냥 엄마 드리라고 할 걸 그랬나? 차 안에도 에어컨이 시원해서 상하지는 않았을 텐데, 평소 조심성 있는 아이라서 내가 상상한 것처럼 길에 쏟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일어나지 않은 일을 내가 펼쳐놓은 상상에 맞춰 타조에게 강요한 것 같다. 

낯선 공간에서 겨우 흐름을 따라가며 그것을 만들 때 엄마를 줄 수 있다는 기쁨으로 두려운 시간을 이겨냈을 것이고, 그것을 받아 든 타조의 엄마도 무척 행복하셨을 텐데 말이다.      

 다음 날 묻어 두었던 서로의 감정을 꺼내보았다. 아이들은 새로운 곳이 신나고 설레긴 했지만 조금 걱정도 되었다고 했다. 타조는 요플레가 별로 맛이 없었단다. 당시의 기분이 요플레의 맛을 맛있게 이끌지는 못했을 것이다. 타조에게 사과했다. “선생님이, 타조의 기분을 잘 몰라줘서 미안해. 사실 타조가 속상한 것 눈치챘는데 하나라도 더 체험했으면 하는 선생님의 욕심이었어. 미안해.” 타조는 늘 그렇듯 “괜찮아요. 그래도 또 가고 싶어요.”라고 나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나는 몸도 마음도 늘 급하다. 더 많은 것을 담아주고 싶고, 더 많은 세상을 접하게 해 주고 싶다. 너희를 위한다는 마음의 포장으로 천천히 담고 싶은 타조와 나의 아이들을 버겁게 하는 것은 아닐까? 모든 아이가 새로운 환경을 접하는 방법이 다 같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공간에 빠르게 흡수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타조처럼 오랫동안 탐색해 보고 마음과의 거리를 좁혀야 하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나는 누구보다도 덜어내야 하는 사람이고, 같은 것을 다른 시선으로 봐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조금 더 기다려 달라고 아이들은 말한다. 목소리로 눈빛으로, 몸짓으로. 나 혼자 급해서 달리지 않고 마음의 소리를 듣고 속도에 맞춰주고자 다시 한번 다짐한다. 

이전 01화 그럼 , 이제 선생님을 누나라고 불러야겠네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