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는 나와 우리의 관계성에 초점을 맞춘다.
나.
너.
우리.
우리가 함께 이 교실에 있다.
그저 스쳐가는 인연일 수 있는데 참 ‘신비한 만남’이다.
하지만 우리를 알기에 거쳐가야 하는 과정이 있다.
바로 ‘니’와 ‘ 너’를 알아가는 것이다.
참 쉬운 관계이지만, 아직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아이들 특히 대부분이 경계선 지능인 우리 학급의 힘찬이들에게는 모호한 관계이다.
‘나’도 모르겠는데, ‘너’를 알고, ‘우리’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나이 마흔이 넘은 나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나는 늘 새 학기의 첫 주에 ‘나’에 대해서 많은 시간 공을 들인다. ‘내가 누구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이 전에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들 혹은 딸인지 이런 일차적인 존재성을 시작으로 나에 대해 인식해 본다.
그리고 이 수업을 할 때 자주 사용하는 그림책은
일본 작가인 ‘다나카와 슌타로‘의 그림책을 만난다.
특별히 다른 점이 있다면 나에서 말하는 어휘의 범위는 그해의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정도까지가 범위로 정한다.
올해도 이런 ‘나’를 쌓아가는 시간이 만들어졌다.
교실의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한다.
칠판에 친구의 본을 떠 그림을 그려준다.
그림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나에 대해 알아본다.
가족 간의 호칭도 배워보며 ‘나’는 변하지 않지만 상대방에 따라 변하는 나의 호칭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은 늘 유익하다.
이렇게 서로의 ‘나’가 만들어진다.
아이들이 가장 재미있어했던 것은
힘을 합쳐 선생님의 모습을 본떠 그리는 것이었다.
아직은 나보다 키가 한 참 작은 아이들이 의자를 옮겨서, 까치발을 하고 선생님을 그린다.
나는 그 모습이 재미있어서 내 발을 더 세운다.
그렇게 완성된 선생님 ‘나’
선생님은 ‘여자’, ‘엄마’, ‘딸’, ‘여동생’,’ 누나‘가 된다고 했다.
그림으로 그려보니 확실하게 이해되는 우리이다.
수업을 다시 정리해 보며 나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해 본다.
나의 힘찬이가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한다.
“아! 선생님은 여자, 엄마, 딸 그리고 누나. 그럼 이제 누나라고 해야겠네요?”
“뭐라고? 누나아~ 힘찬 아 아직 그건 이르다?!”
서로 다른 나와 네가 만나
우리가 되었다.
나 혼자였더라면,
너 만 있었더라면 완성되지 못할 ‘우리’다.
내일도 우리의 ‘우리’를 만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