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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Dec 19. 2024

아이들도 아는 걸, 나만 몰랐네

내신을 쓰는 시기이다.

지금 학교에서 만기 근무였기에 이 시기가 다가올 것이라는 예상 했기에 조금은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어쩌면 3월부터 차근차근 나 홀로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갑작스러운 이별이 아닌 기약된 헤어짐의 날을 알고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일지도 모른다.

뒤 돌아 섰을 때 아쉽지 않게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자 노력했었다.

매일 조금씩 더 눈을 마주치려 했고, 한 번이라도 더 귀 기울여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귀만이 아닌 마음도 향했다.

마치 우리 엄마가(선생님이) 학교 일 좀 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처럼

앞에서 나대는 저 선생님이 우리 선생님이라고,

내 새끼들(아이들) 어깨에 힘 좀 실어주려고 더 적극적으로 학교에서도 설치고 다녔을지 모른다.

교장선생님과 내신 이야기를 하다가 한번 울고 나서인지  이동을 위한 서류를 준비하는 마음은 담담하다.

아이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이별을 이야기한다. 다정한 마음은 어디로 가고 아쉬운 마음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잔소리가 대신한다.

연필 잡는 자세, 글씨를 쓸 때 한 손으로 공책을 누르는 것부터 시작해서

히터가 틀어진 실내에서는 두꺼운 점퍼와 모자는 벗고 있는 것부터 내가 생각해도 지나칠 정도다.

아이들은 알까? 남은 시간 조금이라도 더 주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을.


유독 아픈 손가락이 있다면 힘찬이다.

매해 농담처럼 힘찬이 한글 다 떼줘야 이동할 수 있다고 농담했는데 그 말을 지키지 못할 것 같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더 조급한 마음으로 닦달하며 이어가는 수업이 힘찬이에게도 부담일 것이다.

“힘찬아~ 선생님이 매일 여기에 있는 게 아니야. 선생님은 힘찬이가 졸업할 때까지 같이 있을 수가 없어. 선생님이랑 공부할 때 하나라도 더 배워야지. 말 좀 잘 들어봐~~~~”

“그럼 나는 누가 공부 가르쳐주고 돌봐줘요.”

당황하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힘찬이는 나와 4년을 함께했다.

1학년 입학 후 줄곧 함께 했으니, 어쩌면 힘찬이는 내가 없는 학교는 상상이 안 갈 것이다.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힘찬이였지만 선생님도 늘 이곳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우리도 언젠가는 이별을 하게 된다고 이야기하니

힘찬이의 그 말에 담담하던 마음이 또 한 번 무너졌다.


하지만 힘찬이는 역시 힘찬이다.

그 아이만의 표현 방법으로 나를 웃게 해 주고 다시 으쌰 으쌰 기운을 내게 하는 힘이 있는 아이다.


다음날 또 평소보다 과하게 한글 공부가 진행되니

“아… 한글 너무 어려워요.” 하고 언짢은 표정을 짓기에

“힘찬아, 선생님이 다른 학교 가기 전에 공부 더 해야지. 안 그래?” 했더니

힘찬이가 아주 심오한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그럼 누가 또 오겠지요.”


정답이다 정답.

내가 가고 난 뒤에 누군가는 이 자리에 온다.

내가 주는 사랑이 전부가 아니고, 내가 주고 싶은 배움이 전부가 아니다.

힘찬이 말대로 내가 조급해하지 않아도 불안해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이 자리에 와서

더 큰 사랑으로 채워 줄 것이다.

덕분에 마음이 편해졌다.

아쉬워하기보다는 또 다른 사랑으로 성장해 나갈 아이들을 그려보며 응원해주려 한다.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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