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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꽃이 속삭인 말

by 소화

누리결(가명)은 노란 꽃을 골랐다.
작고 고운 손으로 화분을 만지며, 아무렇지 않게, 그러나 어딘가 꼭 정해놓은 듯이 노란 꽃 앞에 멈춰 섰다.


“선생님, 저 이 꽃 고른 이유 있어요.”
쉬는 시간, 아이가 조용히 다가와 말했다.
“생일날 읽어주신 꽃도 노란색이었잖아요.”
“그게 예뻐서요.”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한 페이지를 넘기던 내 손끝이
누군가의 마음을 조용히 건드렸다는 걸,오늘에야 알았다.

3월은 누리결의 생일이 있었다. 나는 아이들의 생일에 『열두 달 나무 아이(최숙희작가)의 그림책을 읽어준다.
3월의 꽃은 영춘화. 겨울 끝자락, 얼어붙은 땅을 가장 먼저 밀어올리는 노란 꽃 한 송이.

나는 그저 책을 읽었을 뿐이었다. 아이에게 직접 설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속으로는 늘 바랐다. 이 책이 아이에게 말해주기를.

"너는 어떤 계절의 빛깔을 닮았는지, 세상에 어떻게 피어난 아이인지."그 말이 씨앗이 되어아이 마음 어딘가에 살며시 자리 잡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당겨있다.


교실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 오가는 말들이그저 지나가는 바람일 거라고.
습관처럼 이어진 일들이 언젠가는 특별한 흔적이 되리라는 걸 잊고 지낸다.

하지만 오늘,
노란 꽃을 바라보며 선생님 옆에 조용히 앉은 아이가 내게 다시 알려주었다.

작은 말 한 줄이 작은 눈길 하나가 한 아이의 마음에 뿌리 내리고, 꽃 피우고, 향기를 남긴다는 것을.

그 조용한 울림 앞에서 나는 다시 다짐한다.
아이들의 저마다의 계절에 더 조심히, 더 다정히 말을 건네야겠다고.그 말들이 비빌 언덕이 되도록.

누군가에게 꼭 기억되는 말 한마디,그 말이 자라는 걸 볼 수 있는 오늘 같은 날이

내가 다시 교사로 서는 나의 비빌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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