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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말들

오늘의 비빌거리: 말

by 소화


오늘은 아이들과 꽃을 심기로 했다. 지난주에 봄에 대해 알아보고 봄 꽃 식물도 살펴보았다.

‘작은 씨앗이 자라면’ 그림책을 읽고 씨앗이 자라 나무가 되는 과정도 살펴보며

햇빛, 흙, 물 외에도 우리의 관심이 나무를 자라게 해 준다는 것도 이야기 나누었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지. 지금 내 옆의 친구들도 나를 성장하게 하는 소중한 사람들인 것 같지 않니? “

“네~”


대답은 신이 나서 했지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은 싸우고 싸운다.

싸울거리는 사방에 널려있다. 내 지우개를 말없이 빌려 간 것, 내 말을 따라한 것, 나를 놀린 것,

심지어 쳐다본 것 까지도 모두가 싸울 거리다.

“싸우지 마.” 소리를 하루에 30번쯤 해야 하루가 가는 듯 하니, 아침 내 출근길 기도는 오늘은 아이들이 ‘덜‘ 싸우게 해 달라는 것이다.

‘안’하게 해 달라는 것은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일일 것 같고 (나란 사람은 지나치게 현실적인 것인지, 믿음이 약한 것인지.)

그저 조금만 덜 다투면 좋겠다.

작고 여린 아이들 마음에 왜 그토록 ‘화‘가 쌓여 있는 것일까?

아이들은 아주 작은 자극에도 소리 지르고 날카로운 말들을 쏟아낸다. 쏟는 이도 담는 이도 모두가 상처이다.


다툼이 잦고, 함께 보다는 혼자가 편한 아이들과 함께 실외 활동을 계획하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나의 지휘에 맞춰 졸졸졸 나를 따라오게 할 자신이 없다.

분명 보나 마나 아이들은 다시 싸움을 시작할 것이고, 금세 흩어져서 나는 아이들을 모으는데 모든 시간과 마음을 쏟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체 이게 뭐라고. 이작은 화분 하나 심는데도 용기가 필요한 거지? 특별한 걸 괜히 한다고 했나…‘

후회가 몰려오지만 아이들은 이미 아침부터 언제 꽃을 심을 수 있는지 기대가 가득한 눈빛이다.

활동을 수정해서 교실에 신문지를 깔고 심는 방법을 고민했지만,

지나치게 찬란하고 따뜻한 햇살에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당부에 당부를 거듭하며 나섰다.


곤충을 좋아하는 호돌이는 유독 신이 났다. 수업 시간에는 늘 괴로운데 지금은 발걸음이 무척 가벼워 보인다.

가벼워도 너무 가벼웠는지, 운동화로 갈아 신자마자 발에 모터를 달고 뛰더니 결국 미끄러졌다.

운동감각이 좋은 호돌이는 미끄러지는 것과 동시에 일어났지만, 또 분명 불같이 화를 내고 아이들은 웃고 싸움이 시작될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세상에, 그런데 아이들 입에서는 내 예상과 전혀 다른 노래들이 흐른다.

“괜찮아? 안 아파?” 모두가 호돌이를 걱정하며 모래가 묻은 무릎을 털어주기도 한다.

호돌이도 “응 괜찮아, 나 하나도 안 아파.” 하며 친구들이 나누는 마음을 그대로 받는다.


한 고비 넘기고, 계단을 오른다.

계단을 사뿐사뿐 오르던 아이가 “나는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걸어갈 거야. 이번에는 나비처럼 훨훨 가볼까?”라고 말한다.

지난 국어 시간에 비유적 표현을 알아보았다. 분명 하품만 하는 모습이었는데,

아이는 걸음을 걸으며 자신의 모습을 정확하게 비유적 표현으로 말하고 있다.


돋보기로 들꽃을 관찰하고 꽃을 심기로 했다.

돋보기로 보이는 세상은 또 다르다.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치던 꽃, 곤충들을 발견하고는 미안한 마음과 감탄이 솟는다.

“선생님~ 이것 보세요. 민들레는 이렇게 생겼어요.”

“무당벌레가 심심해 보이는데요?”

“선생님, 색이 너무 곱지요? 꼭 햇님을 안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너무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면 콩벌레가 놀랄지도 몰라요. 조용히 말해요.”


아이들의 목소리가 노래이고, 이야기가 시다.

또 날려 보내게 될까 싶어 오늘은 꽁꽁 싸두고 싶은 이야기들이 가득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쏟아내던 그 다정한 말들에 가슴이 저릿해졌다.

매일 작은 일로 다투고 투닥거리던 아이들이, 햇살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괜찮아”, “잘했어”라고 말하는 순간,

마치 마음속 얼음장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듯했다.

아이들의 손끝이 흙을 만지고, 그 흙 위에서 웃음이 피어날 때,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 아이들이 서 있는 이곳, 햇살이 머무는 마당, 바람이 스치는 나무 그늘, 그리고 함께 있는 이 시간이, 그 무엇보다 따뜻한 ‘비빌 언덕’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을.

교실 안 책상도, 차가운 말들도 잠시 내려놓고, 바깥의 세상이 아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다독여주는지를 눈으로, 마음으로 느꼈다.

나는 오늘, 그 따스함 안에서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맙고, 또 벅차게 감동스러웠다.

앞으로도 아이들이 마음껏 기대어 설 수 있는 언덕이 되어주고 싶다.

조용히, 따뜻하게, 그리고 변함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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