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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 못한 것을 함께 봐주는 마음

by 소화

토리는 오늘도 사부작거렸다.

손이 쉬면 발이 움직이고, 발이 쉬면 손이 바빠진다. 어딘가 가만히 있기엔, 이 아이는 너무도 살아 있고 움직이는 존재다.


수업 시간에도 의자는 늘 그를 오래 붙잡아두지 못한다. 수업 시간에도 앉아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

한 문제를 풀다 말고 연필을 내려놓고, 문득 뭔가가 궁금해져 돌아다니다가 다른 공간에 머무르곤 한다.


오늘은 다른 선생님의 교실에 들어가 함부로 물건을 만지고 나왔다.

다급하게 상황을 들은 나는 토리와 마주 앉아 이야기했다.


“토리야, 어떤 게 잘못된 걸까?”

“그 물건을 만졌을 때, 그 선생님 마음은 어땠을까?”

“우리, 잘못했다고 말씀드리자. 네가 직접 이야기하고 오면 좋겠어.”


토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 아이를 조용히 보내며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실수와 다짐이 이어지는 하루,

그 끝에 다시 실수가 기다리고 있는 날들이 반복된다.


조금씩 지친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기다리겠다는 다짐으로, 매일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지만

늘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것만 같을 때가 있다.


아이가 다녀간 선생님께서도 아이의 잘 못 보다는 앞으로의 기대를 담아 말씀해 주시고 아이를 돌려보내셨다.

내 아이 잘 못 가르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앞서는데 오히려 나에게 위로를 건네신다.

“그래도 토리, 많이 달라졌어요. 요즘엔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말하잖아요.”


그 순간, 멈칫했다.

나는 몰랐다. 아니, 보지 못했다.


매일 반복되는 실수 속에서도

토리는 조금씩, 정말 조금씩 달라지고 있을 것이다.


나는 단지

크게 바뀌지 않는 모습에만 시선을 두고 있었던 거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보지 못한 자람. 너무 익숙해서 놓쳐버린 변화들


그런 나에게,

토리의 변화를 대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곳이 학교였고,

그 사람들이 함께하는 교사들이었고,

그게 오늘,

내가 다시 설 수 있었던 비빌언덕이었다.


어쩌면 나는 토리보다도 내가 더 자라야 할 자리 앞에 서 있었던지도 모른다.


모든 자람은 크고 눈에 띄는 건 아니다.

어쩔 땐 실수 속에, 조용한 말투 속에, 작은 눈빛 속에 자라고 있다.


그리고 내가 놓치는 아이들의 그 자람을 함께 봐주는 이들이 있어서,

나도 토리도 혼자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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