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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와 미안함 사이에서

by 소화

주말 동안 나는 나의 가족들과 참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소란스럽지 않은 대화와,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시간이 지친 마음을 가만히 어루만져주었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도 분명 행복했다.

아이들의 맑은 웃음과, 서툴지만 진심 어린 손길이 내 하루를 빛나게 해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시간들은 내 마음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모든 아이에게 똑같은 손길을 내밀지 못하는 미안함, 아이들의 아픔 앞에서 무력해지는 순간들.

이번 주는 유난히 그런 감정의 파도가 거셌다.


출근길마다 스스로를 다잡고, 퇴근길마다 조용히 숨을 삼키며, 나는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그러다 집에 돌아오면, 나는 느낀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힘들었던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것을.

아무 말도 필요 없는 그 시간 안에서 나는 조용히 치유된다.


하지만, 이내 미안함이 밀려온다.

내 아이와 웃으며 보내는 이 평범한 순간이, 오늘도 가정 안에서 상처받고 있을 우리 반 아이들에게는 너무 먼 풍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교사로서, 부모로서, 나는 늘 감정의 중립을 지키려 애쓴다.

내 아이에게는 온 마음을 다해 웃어주고, 우리 반 아이들에게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다가가려 한다.


하지만 때로는, 내 아이가 해맑게 웃을 때, 교실 어딘가에서 울고 있을지도 모를 아이가 떠오른다.


나는 어디까지 다가갈 수 있을까. 나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이 질문 앞에서 나는 자주 작아진다.


최숙희 작가의 그림책 《엄마가 화났다》를 펼쳐본다.


책 속 아이는 엄마의 화난 얼굴에 상처받고,

도망치고 싶어하지만, 결국 다시 엄마를 그리워한다.

아무리 아프고 서운해도, 아이에게 엄마는 가장 따뜻한 세계였던 것이다.


마음이 가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해도, 때로는 상처받아도, 여전히 엄마를 기다리고, 엄마를 그리워한다.


나는 엄마가 아니다. 교사라는 이름은 엄마를 대신할 수 없다.


하지만, 아이들이 세상 어딘가에서

잠시 숨 고를 수 있도록 따뜻한 창 하나쯤은 열어줄 수 있을 것이다.


아이 하나하나의 존재를 귀히 바라보고, 존재 그 자체를 지지해주는 것.

아마 그것이, 내가 아이들 곁에서 해야 할 가장 작은, 그러나 가장 깊은 일일 것이다.


오늘도 나는 고맙고, 미안하고, 그래도 다시 고마운 마음으로,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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