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비가 와야 한다는 정언명령

by 소화


매달 첫날이면 나는 『정원가의 열두 달』을 꺼낸다.

이 책은 체코의 정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안의 계절 흐름은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 계절의 결은 내가 교실에서 마주하는 아이들의 표정, 움직임, 마음결과도 닮아 있다.

그래서일까. 나는 매달 이 책으로 마음을 연다.


7월이 새롭게 펼쳐지는 아침, 7월의 정원을 읽었다.

차페크는 7월의 정원에서 가장 큰 고민을 “물 주기”라고 말한다. (이 책의 120쪽)

“저녁에 세찬 물줄기를 맞은 꽃과 잎사귀에서 물방울이 반짝일 때의 기쁨을 아는가.”

나는 이 문장을 읽다가,

누군가의 따뜻한 관심과 정성을 받을 때,

그 빛을 스스로 발견하게 되는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정말 그렇다.

누군가의 눈빛이, 한마디 말이, 작게 건네는 칭찬 하나가

아이의 마음에 스며들어 반짝이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보는 나는, 물방울 사이로 햇살이 반짝이는 정원의 모습을 본다.

그건 교사로서 누리는 가장 찬란한 기쁨이다.


하지만 정원은 아무리 물을 벌컥벌컥 마셔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말라 있다.”(123쪽)

차페크는 그 사실을 담담하게 적는다.


아이들과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정성껏 건넨 말, 시간을 들여 쏟은 애정, 기다림,

그 모든 것이 닿지 않은 듯 허공으로 사라져버리는 순간이 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메말라 있는 관계를 바라보는 일.

때로는 그건 참 쓸쓸하고 속이 타는 일이다.


그럼에도 정원가는 물을 준다.

7월의 정원가는 철학자다.

독일철학에서는

“현실이란 그 자체로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며,

더 높은 도덕률은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123쪽)

그리고 정원가의 정언명령은 이렇다.

“비가 와야 된다.”


그래, 나의 교실도 마찬가지다.

돌봄은 종종 무심하게 증발되지만,

그래도 ‘비가 와야 한다.’

아이들이 자라기 위해선,

반짝이기 위해선,

서로가 서로에게 그런 비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물을 든다.

마땅히 그래야 하니까.

내가 정원가이기 때문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말 한마디가 자라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