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신형철의 느낌의 공동체를 읽을 때도 그랬다. 2011년에 쓰인 글인데, 12.3 내란 이후 탄핵 정국을 거치며 읽다 보니 마치 이 정권을 겨냥한 책처럼 다가왔다.
역사는 늘 현재형으로 말을 걸어왔고, 그 목소리는 낯설면서도 기시감으로 남았다.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캐시 박 홍의 마이너 필링스를 읽으며 또다시 같은 감정을 느낀다.
이 책은 2021년에 출간되었고, 당시 미국의 대통령은 지금의 대통령이기도 하다.
4년이 지났음에도 정권이 도래한 현실 속에서 읽으니, 두 책은 시공간을 초월해 같은 시대를 걷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왜 이렇게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는가. 기억을 잊어버려서일까, 아니면 불편한 감정을 끝내 마주하지 못해서일까.
느낌의 공동체가 묻는 질문,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가”라는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마이너 필링스 속에서 드러나는 소수자의 분노와 슬픔도, 단지 특정한 시대와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결국 역사는 단순히 사건의 재현이 아니라,
우리가 감정을 어떻게 다루고 기록하며 나누는가에 달려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지난 주 북토크에서 만났던 김지승 작가님의 말씀처럼 ‘예민함’을 보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불편한 감정에 눈 감지 않고, 작은 목소리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나와 다른 이들의 감정을 문학 속에서 받아들이는 것.
문학은 이런 예민함을 지켜내는 기술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읽어야 하고, 써야 하고, 나누어야 한다.
문학은 역사를 직접 바꾸지는 못한다.
하지만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힘은 있다.
지금 다시 두 책을 함께 떠올리며 나는 묻는다.
“우리는 이번에는 달라질 수 있을까?” 아마 이 질문을 잊지 않는 한, 역사는 조금씩이라도 다른 길을 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