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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의 힘, 결점없는 삶에 대하여

by 소화

문형배 재판관의 에세이 <<호의에 대하여>>를 읽고 있다.

오늘 아침 읽은 문장은,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몇 번을 눈으로 마음으로 향하게 한다.

“식물의 생산량은 식물에 최소량 존재하는 무기 성분에 의해 지배받는다. 정치, 사회, 문화 분야도 마찬가지다.
평균적인 것이 사회의 성장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부분이 나라의 성장 발전을 결정한다.” (호의에 대하여, 49쪽)



리비히의 최소율 법칙을 사회와 정치로 연결 지어 설명하는 이 대목에서,

나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약한 고리의 힘’을 다시 떠올렸다.

흔히 사회를 바라볼 때 우리는 평균을 보고 ‘그래도 괜찮다’고 말하기 쉽다.

하지만 그 평균이 가려버린 가장 낮은 곳, 가장 약한 부분이야말로 공동체 전체의 성장을 막기도, 열어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의 삶에서 가장 낮은 부분은 어디인가?

그 약한 고리를 어떻게 돌보고 있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제는 단골 카페 온도에 들렀다. 오픈 4주년을 맞아 특별히 준비한 원두 이야기를 사장님께 들을 수 있었다.

“이 원두는 어느 한 부분이 월등히 좋아서 귀한 게 아닙니다. 오히려 나쁜 결점이 하나도 없어서 귀한 원두예요.

마시고 나면 또 마시고 싶어지는 이유죠.”

그 설명이 묘하게 오늘 아침 문형배 재판관의 글과 겹쳐졌다.

사회든 원두든, 빛나는 장점 하나보다 결점 없는 평균이 오히려 더 귀하다는 사실.


사장님은 테이크아웃을 원했던 내게 종이컵에 든 커피를 맛보기 전, 유리잔에 조금 내려주셨다.

종이컵이 커피 맛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원두에 대한 자부심과 세심한 배려 속에서 나는, ‘결점 없음’이란

단순히 흠이 없다는 뜻을 넘어, 누군가를 존중하는 태도와도 맞닿아 있음을 느꼈다.


돌아오는 길에 내 삶을 떠올렸다.

나는 특별히 잘하는 것도, 눈에 띄게 빛나는 재능도 없는 사람이다.

때로는 더 갖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품지만, 그렇다고 삶을 불평하며 살지는 않는다.

그냥 ‘조금 평균을 살아가는 사람’이라 여겼던 내 삶이, 사실은 ‘큰 결점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귀한 삶’일 수 있다며 감사를 느낀다.


삶은 찬란한 장점이 아니라, 결점 없는 균형과 꾸준함으로 더 빛난다.

사회가 가장 약한 부분을 돌볼 때 성장하듯, 나 또한 내 삶의 작은 약한 고리를 살피며 하루를 살아내고 싶다.

그렇게 살아간다면, 내 삶도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다시 찾고 싶은 따뜻한 한 잔의 커피처럼 남을 수 있지 않을까.



그나저나, 온도 카페 사장님의 원두 추천은 정말 탁월하다.

분명 어제 그 커피를 내려주시며 다시 마시고 싶은 원두라고 하셨는데

한동안 아침에 커피 대신 차를 마시던 내가 이토록 어제 그 커피 한 모금이 생각나는 것을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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