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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제비를 따라온 가을 빛

by 소화

가을 볕이 따스하다. 기온은 성급히 내려갔다지만,

교실 창가로 스며드는 빛은 여전히 “지금은 가을이야” 하고 온 힘을 다해 말하는 듯하다.


“선생님, 이거 보세요. 비행기가 공중제비하고 있어요.”
“우와, 공중제비라는 표현 정말 멋지다.”
“이번에는 두 개를 함께 날려볼게요. 그럼 더 아름다워 보여요.”

쉬는 시간,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재잘재잘 이야기를 튀겨 올리는 아이를 본다.

공중을 낙법처럼 휘돌아 나르는 작은 종이 날개에 아이의 말이 겹쳐지며 반짝인다.

‘공중제비’라는 말 한 줌에도, 두 대가 나란히 나는 모습만으로도 ‘아름답다’를 발견하는 마음.

그 마음이 나는 그렇게나 기특하고, 감격스럽고, 아름답다.


한때 어른의 말로 감정을 빌려 쓰던 아이였다. 짜증이 많고 화가 앞섰던 아이였다.

그런데 어느새 아이의 말은 고운 빛깔로 물들었다.

봄, 갑작스레 가족과 떨어져야 했던 시간. 그리고 여름을 지나 가을에 와서야,

우리는 아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온몸으로 확인하고 있다.

우려는 멀리 밀려나고, 하루하루 빛깔을 달리하는 아이의 표정과 목소리에 모두가 놀란다.

꼭 부모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것을,

정말 좋은 어른 한 명—아니, 그런 어른들이 곁에 있다면

아이에게 든든한 안전망이 되어 줄 수 있다는 걸,

아이는 몸으로 증명해 보이는 중이다. 그 안에서 아이는 마음껏 펼쳐지고 있다.

집중하는 눈, 힘주어 뻗는 손, 말끝을 매만지는 입. 그 모든 것이 예쁘다.


부디, 지금처럼. 예쁘다, 예쁘다—사랑받는 소리를

양손으로 받아 담으며 자라나길 바란다.

아이가 편안히 노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이 계절에,

나는 종이비행기의 궤적을 따라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공중제비를 돈다.

그리고 조용히 다짐한다.

이 아이의 가을빛이 겨울을 건너 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오늘의 따스함을 내일의 습관으로 남기겠다고.

가을은 그렇게 창가에서 시작해 아이의 말끝에 앉았다가,

내 마음 한켠에 오래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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