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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걱대도 함께 가는 길

by 소화

올해 새 학교로 옮겨 와 봄을 보내고, 여름을 지나, 가을이 온 줄도 모르게 바쁘게 지내다 보니

어느새 겨울을 맞이하는 아침이 되었다.

교실로 올라가려 계단을 오르다,

저 멀리 창밖으로 운해처럼 부드럽게 깔린 구름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이 너무 멋져서,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큰소리로 외쳤다.

"와, 정말 멋지다다. 저기 좀 봐."

함께 멈추어선 이들이 사진으로 담고, 눈으로 담고, 마음을 나눈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잠깐이라도 멈춰서서 같이 바라보고,

“와, 저기 좀 봐요” 하고 감탄을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그 모습을 보며, 그 웃음을 들으며 학교는 단지 어린이와 교사만 오가는 공간이 아니라,

같은 풍경을 보며 비슷한 마음으로 하루를 견디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우리는 이제 자연의 변화에 감탄하고 감동하는 '중년'이다.

애써 다른 말을 붙이기엔, 무릎이 이미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

저 멀리 학교로 올라오는 계단 아래에서 익숙한 모습이 보이고 발소리가 들린다.

이제는 한 계단, 두 계단 오르며 슬쩍 무릎부터 살펴보게 되는,

역시 무릎이 안 좋은 중년 동료들이 하나둘 올라오고 있다.

내가 먼저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자, “어, 거기 있었어?” 하며 환하게 웃는 얼굴들이 계단참에 모였다.

잠깐이지만 우리는 그 자리에서 깔깔 웃었다.

몸은 공식 중년, 무릎도 중년인데

웃을 때만큼은 여전히 열두 살 어린이 같은 사람들.

그렇게 웃고 나서 교실로 돌아와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하며, 아침의 그 장면을 다시 떠올렸다.

학교는 아이들만 자라는 곳이 아니라,

선생님인 우리 어른들도 하루하루를 버티고, 나누고, 다시 살아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돌보는 교사이기 전에, 우리도 각자의 삶을 안고 여기까지 걸어 와 시작한다.

그래서 학교라는 공간이

아이들에게만 따뜻하고 안전해야 하는 곳이 아니라,

서로의 무릎이 아파졌다는 농담에도 같이 웃어 줄 수 있고,

“오늘 하늘 봤어요?”라는 한마디로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고,

“오늘은 이만큼 했으면 잘한 거예요.” 하고 서로의 등을 슬쩍 토닥여 줄 수 있는,

그런 어른들의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오늘 아침 창밖 운해처럼 부드럽게 번져 오던 그 풍경을 떠올린다.

아이들만 ‘성장’하는 학교가 아니라,

무릎이 살짝 먼저 소리 나는 우리 중년 선생님들도 함께 늙어가고, 단단해지고,

서로에게 작은 쉼이 되어 주는 삶의 집이면 좋겠다고.

그래서 오늘의 아침을, 이렇게 글로 한 번 더 쥐어 본다.

내가 머무는 이 학교를, ‘교사’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서 다시 사랑해 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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