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환대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배꼽시계만큼 정확한 것이 절기(節氣)
나 어릴 적, 엄마 아빠가 입춘이니, 우수니, 동지니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할아버지 할머니도 아니고 요즘 같은 때 무슨 절기로 계절을 이야기하나, 싶었는데
새벽 운동을 나서는 길
자연스럽게 긴 팔 운동복으로 손이 가는 걸 보면
이보다 정확학 수 없다.
지난주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 지나고 나니 바람이 또 다르다.
어제저녁을 먹고 필라테스를 하러 가는 나에게
"승후야, 엄마는 백 살까지 살 거야. 이렇게 운동을 열심히 하니까."
"난 백 살까지 안 살아도 되는데, 70살에 제일 허리가 꼿꼿한 할머니가 될 거야."
어제 9시 30분쯤 운동을 마치고 돌아왔고,
오늘 새벽 5시 30분에 다시 걷기 위해 나섰다.
정확히 8시간 후 다른 운동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선 것.
요즘은 맨발 걷기 (어싱)에 빠져있다.
'어싱'이 주는 건강에 대한 유익함때문이라고 하기보다는
걷고, 뛰는 것, 필라테스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매일 같은 길을 걷다 보면 지루해질 때가 있다.
그럼 뛴다.
뛰는 것도 지루해지고, 너무 지친다 싶으면 걷고,
그리고 또 이렇게 새로운 방법으로 걷는 맨발 걷기.
그저 긴팔로 바뀐 것으로 계절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어제와 또 다른 발바닥에 전해지는 차가운 기운이 계절이 정말 변하고 있음을, 땅이 변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일상이 지루해질 때쯤이면 변화를 주어 나의 삶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이다.
지난주 북토크에서 만났던 '정은귀 작가님'이 들려주신 시 심보선 님의 '슬픔이 없는 십오 초'를
나의 삶에 기쁨이 가득한 십오 초를 만드는 중인 것이다.
그 십오 초가 쌓여 15분, 15시간, 15일, 15년이 되리라.
오늘 아침 정은귀 작가님의 '다시 시작하는 경이로운 순간들'에서 만난 문장처럼
나의 하루를 환대하며
지긋지긋한 일터가 아닌
아이들과 함께 숨 쉬는 나의 생명터에 왔다.
서로의 삶이 만나는 이곳에서 오늘도 정성을 다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