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화 Feb 15. 2024

결국, 채워주던 힘.

아이를 앉혀 놓고 강의 연습을 했다. 

2주간의 포르투갈 여행을 준비하며 들떠 있던 어느 날 저녁,

낯선 번호로 걸려온 전화

도저히 거절을 할 수 없는 친절한 목소리와 안내 말씀에

나는 홀리듯, "네 해보겠습니다." 하고 이야기했다.


바로, 2024년 우리 교육청에 합격한 신규 선생님들 임용 전 자격 연수 강사 제안이 온 것.


전화를 끊고 '내가 지금 잘한 걸까?'라는 고민도 잠시

앞으로의 진행상황을 그려봤다.


나는 당장 내일모레 여행을 떠난다.

그럼 그 안에 2시간 강의 주제와 내용, 원고를 준비해야 하는데 괜찮은 걸까?

이 제안 받아들여도 괜찮았던 걸까?


여행 가방에는 자연스럽게, 관련 주제 책을 넣었다.

딱 두 권만 책을 넣기로 했는데 그중 한 권을 차지했고, 다른 한 권 역시 학습공동체 선생님들과 함께 읽기로 한 책이었다.


그렇게 함께 떠났다.

여행지에서 틈틈이 원고를 준비하고 정리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정말 사람이 최악은 면한다는 것이

돌아와서 바로 신랑과 함께 대만 여행을 가기로 했었는데 그 여행이 항공사의 이유로 어찌어찌 위약금 없이 취소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 사이 나는 연수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여보 미안해.)

또 한 번의 여행이 취소되어서 아쉽기보다는 이 또한 하느님의 도우심이라는 감사였다.


코로나 이후 직무 연수가 줌으로 진행이 된다고 한다.

이때가 아니면 신규 동기들끼리 대면할 일이 없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세상에 무엇이든 배워두면 다 쓸 곳이 있다고

그동안 '지구 하자' 전학공을 하며 배우고 익혀두었던 줌 사용법이 이렇게 또 쓰인다.

참 신기하다.


연수 주제도 그렇다.

최근 3년간 관심을 갖고 있던 교육과정 내용이었으니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동안 배운 것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부담스럽고 괴롭기보다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연수 당일이었던 오늘,

연수를 진행하는 부담보다 걱정이었던 것이 있다면 바로 아이.

2시간 동안 진행되는 강의에 아이가 얼굴을 보밀거나, 장난을 치거나,

나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거나 또는 시끄럽게 이야기를 계속하면 어째야 하는지...

평생에 한 번인 신규 직무 연수에 임하시는 선생님들께 무슨 실례일까.

나는 온전히 강의에 집중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앞섰다.


'아이를 친정에 좀 부탁해야겠다.' 마음먹었지만, 결국 고쳐먹고.

신신당부를 1절 2절 3절 4절. 그리고 또 돌림 노래로 다시 1절 2절 3절 4절.


강의 전날이었던 어제는 

아이를 앉혀 놓고 연습을 하며 엄마 목소리가 잘 들리는지, 또렷한지 확인을 해보며

나름 나의 도우미 역할을 해 내는 아이였다.


엄마가 그동안 얼마나 고민하며 준비했는지 알아서일까?


연수를 앞두고 30분, 20분, 10분 남은 시간을 알려주며 함께 긴장하던 아이.


시작- 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진행된 연수 2시간 동안

아이는 혼자 사부작 거리며 논다.

엄마 근처에는 오지도 않고,

모니터를 위해 준비해 놓은 패드 옆에 엄마 얼굴이 잘 나오는지 가끔 확인을 한다.


그렇게 2시간이 지났다.

강의하는 엄마 앞에서 무엇인가를 쓰더니  응원 문구도 앞에 놓았다.


강의를 끝내고 헤드폰을 벗고 제일 먼저 나온 말


"테오야. 엄마 좀 안아 줄래."

엄마에게 다가와 포옥 안기는 아이.


엄마의 긴장을 채워준 것은 강의를 마쳤다는 성취감이 아닌

아이가 안아주던 따뜻한 포옹이었다.


"정말 고마워. 엄마 잘 기다려줘서 고마워. 그 덕분에 엄마가 잘했던 거야."

"엄마, 고생끝에 낙이 왔네?"

"응? 무슨 말이야?"

"속담 있잖아. 고생 끝에 낙이 온다. 그동안 엄마가 여행 가서도 공부한다고 고생, 밤에도 카페 가서 공부한다고 고생, 오늘도 고생. 이제 끝났잖아 그러니까 낙이 왔지."

"하하하하하하. 그래 그러네 정말. 낙이 왔네. 고마워. 모두 네 덕이야."


너에게 공부하는 엄마, 그보다 그 과정을 즐기는 엄마로 보이고 싶었어.

네가 있어서 부담이 아니고, 준비가 어려웠던 것이 아니라

결국은 네 덕에 할 수 있었단다.


네가 다 채워주었어. 

매거진의 이전글 최고의 찬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