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표 깍두기를 보고 숟가락을 들었다.
출장이 있는 동안 아이를 봐줄 곳이 필요해 어제저녁 친정으로 왔다.
할머니를 좋아하는 아이는 신이 나다 못해 방방 뛰고
나도 엄마와 밤늦도록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어 좋다.
참. 신기하다.
보통의 아침이라면 일어나자마자 내가 먼저 주방에 들어가 아침을 준비할 텐데
엄마와 같이 있으면
엄마로 살아가던 나는 그냥 다시 딸의 모습만 하고 있다.
출근이라는 핑계라도 있는 날은 더욱 그러하다.
내 얼굴만 씻고, 엄마의 화장대에 앉아 머리를 묶고, 엄마의 화장품을 바른다.
문득 내 머리카락을 말리는 드라이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자
엄마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엄마는 지금 내 얼굴만 꾸미고 있는 내가 얄밉지 않을까? 엄마도 출근해야 하는데,
나는 내 몸만 쏙 빠져나가려고 하네.'
생각은 생각일 뿐 몸과 마음이 따로 논다.
매무새를 다시 한번 거울에 비춰보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엄마의 인기척에 일어난 아이는
"엄마, 가기 전에 나 좀 한 번 안아줘." 하며 나의 품에 졸린 눈을 비빈다.
마치 1주일 못 볼 사이인 듯 찐하게 인사를 나누는 우리에게
"따뜻하게 국이랑 먹고 가."
"아냐, 엄마 나 원래 아침 안 먹어."
"그래도 따뜻하게 먹어."
"아냐. 커피나 한 잔 마실게."
커피를 마시기 위해 주방으로 향하며 식탁에 눈길이 간다.
어머! 이 깍두기는 뭐야? 세상에 소꼬리 대파 국밥이네?
양념이 곱게 물든 깍두기를 보니 아침을 먹지 않는다는 오랜 생활 습관은 어디로 가고 걸음이 멈춘다.
뽀얀 국물에 아주 예쁜 연초록의 대파가 종종 썰어져 있다.
시간을 계산해 볼 필요도 없이 식탁 의자에 앉았다.
엄마가 며칠을 고은 소꼬리 국밥에 하얀 쌀밥을 말아 깍두기 한 접시를 뚝딱 먹었다.
출장 장소까지 1시간 30여분을 달리며 내내 생각했다.
'아, 오늘은 빨간 깍두기에 하얀 소꼬리 국밥을 아침 먹은 이야기를 써봐야지.'
남들에게는 매일의 아침식사일 수 있지만
'난 1년에 몇 번 먹을까 말까 한 아침이고, 특별히 엄마표 깍두기가 있는 아침이었으니 얼마나 특별해'
세상에, 이런 내 마음을 강사님이 읽으셨던가?
연수 도중 하필이면, 비유로 하시는 말씀이 '매일 먹는 아침을 먹은 건 특별한 일상이 아니니 굳이 글감은 아니다.' 인 것이다.
하루종일 아침에 먹은 메뉴와 그것을 먹은 이야기를 써보려고 생각했었는데 대체 이게 무슨 흐름이람?
순간 뚱했지만 괜찮아.
나 아침에 우리 엄마가 손수 담근 깍두기와 직접 며칠을 고은 소꼬리 국밥 먹은 사람이니까.
이 메뉴가 어떻게 특별한 아침 식사, 글감이 안 되겠어?
이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