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가 된다는 건
고등학교 2학년 때 수학 선생님은 여자 분이셨다.
키가 크고 뼈대가 굵었으며 두꺼운 안경을 쓰신 선생님은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남편이랑 유학을 갔는데 둘 다 공부하다간 죽겠더라고. 그래서 내가 포기했지. 그래도 나 수학 잘한다~? 그니까 모르는 거 다 물어봐!"
이런 말도 쿨하게 하시던 어느 날,
그 분은 마라톤을 시작하셨다.
"뛸 때에는 몸무게의 4배가 무릎에 실린대. 이 나이에 내가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하프 정도는 나가야 하지 않겠어?"
그 때 난 처음으로 내 주변에 '달리는 사람'을 갖게 되었다. 당시에는 운동은 선수들만 하는 것, 이라는 인식이 대부분이었는데 그저 평범한 사람이 경기에 나가기 위해 달린다는 게 낯설고 신기했다. 그러면서도 늘 곧은,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달리면 저렇게 건강해지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몇 년 전
나는 가수이자 작가인 '요조'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 하기 시작했다.
사실 내 관심사는 그녀의 책방이었지만 그녀의 피드에는 하루걸러 하루 달리기 이야기가 올라왔다. 뛰고 나서 먹는 차가운 하드 하나. 역시나 날씬하고도 그녀의 몸에 나는 '달리는 건 다이어트에 좋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다시 얼마 전
나는 '퍼블리'라는 온라인 매체를 구독했는데 그곳의 CEO인 '박소령'님의 인스타그램도 팔로우 하고 있다. 그리고 이 분 역시 거의 매일 달리신다. 그걸 보면서 나는 '엄청난 의사결정을 하는 데에도 운동은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학원에 가 있는 동안, 시간이 남았다.
대략 50분 쯤이라 집에 다녀오기도 애매했고 매일 같이 카페에 가자니 그것도 부담스러워서 나는 가까운 공원을 빙글빙글 돌기만했다. 그러다 우연히 '음, 뛰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톡,톡,톡,톡
내 몸이 이렇게 무거웠나.
내 엉덩이는 또 왜 이렇게 흔들리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이거구나' 하는 돌파심(?)이 차 올랐다.
몸을 움직인다는 건,
숨을 헐떡일만큼 심장이 거세게 뛴다는 건
이런 거구나.
그리고 지금 내 몸은 정말 쓰레기구나.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간헐적으로 달리기를 하고 있다.
달리지 못하는 날에는 집 가까운 산에 오르기도 하고
그마저도 어려우면 엘리베이터를 두고 집까지 걸어온다.
달리기에 있어서 가장 큰 고비는 바로 '여름'
달리기 뿐 아니라 바깥에서 하는 운동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심지어 걷기조차 쉽지 않으니까.
어영부영 여름을 보내고 게을러진 나는 다시 달리기 위해 주변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찾아낸 것이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
그의 달리기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실 너무 본격적인 달리기 이야기라서 나에겐 좀 부담스럽긴 하나, 그래도 다시 달리도록 해주기에는 부족함 없는 책이었다. 그 책 덕에 나는, 다시 무거운 몸이 흔들리도록 달린다. 심장이 정신을 차리도록 달린다.
아버지는 오래 당뇨를 앓으셨다.
어머니는 매일 기운없어 하신다.
두 사람의 딸로서 나는 조금 달리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방법을 모르고 있던 나에게 운동에 대해 알려주고 그 예시가 되어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나를 전혀 모르고, 자신의 달리기가 나에게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겠으나, 나는 그들의 도움을 받아 하루하루 건강해지고 있다.
사람이 사람과 함께 산다는 건 이런 것이다.
말 한 마디, 걸음 하나에서도 누군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것.
지금 당장은 콩나물 시루 아래로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아도, 결국 콩나물을 키워내고야 마는 물처럼.
그래서 나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두고 싶고, 나 역시 좋은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 좋은 책을 찾아 읽고 좋은 음악을 틀어두는 것도 다 같은 이유다. 내 선택은 오롯이 나만의 것은 아니다. 언제나 좋은 선택을 하도록 도와주신 분들이 내 인생 전체에 걸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