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정말이지 삼겹살 맛이라고 지금 봉구는 생각하고 있다. 꼭꼭 씹을 때마다 탄탄한 단백질과 쫄깃한 지방층이 사이좋게 힘과 맛을 주고 받는다. 고소한 기름에서는 아무 양념을 하지 않아도 풍미가 넘쳐 흐르고 계속, 계속 먹게 되는 맛. 이 식사가, 이 밤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게 되는 맛.
얼마 전 요리 유튜브 세계에 눈을 뜬 봉구는 그날 이후로 엄청나게 많은 고기 요리를 쏟아냈다. 불고기, 갈비찜, 제육볶음, 김치찜, 갈비탕, 수육, 아롱사태 찜 등등. 마치 그간 고기를 못 먹어서 한이 맺힌 사람처럼 봉구는 끝없이 고기 요리를 만들어냈다.
그 시작은 지난 번 현경과 학규, 지연과 같이 먹은 김치찜 이었다. 커다란 솥에 통 삼겹살 1kg를 넣고 그 위로 잘 익은 김치 반포기를 두 덩이 얹었다. 레시피에 따라 육수를 만들어 붓고 파와 양파, 마늘도 넣었다. 그랬더니...
“이 오빠 진짜 미쳤네. 갑자기 이 집 거실이 막 한옥 대청마루로 보여.”
“야, 봉구야, 나랑 이거 팔자. 이렇게 한 그릇 내면, 2인 분에 3만 5천원은 받을 수 있어.”
“이 오빠 이태리 요리만 해서 한식 시가를 모르네. 3만 5천원이 뭐야, 요새 이런 거 5만원 씩 해. 근데 또 고기는 요맨~큼 들어 있다? 심지어 비계 뿐이고.”
“구봉구. 요새 삼겹살 얼마나 하냐?”
“싼 건 2만 5천 원 정도. 이건 녹차 먹인 거라서 3만 5천원”
그러는 동안 지연은 말이 없다. 밥을 먹을 때 지연은 언제나 침묵으로 찬사를 보낸다. 봉구는 그 침묵을 매우 사랑하고 지연도 그걸 잘 알고 있다. 지금 봉구의 눈에는 지연의 콧등에 맺힌 땀이 보인다. 지연이 무언가를 먹는 모습, 그 소리, 그 몰입을 봉구는 사랑한다.
아무튼.
3만 5천원으로 어른 네 명이 배부르게 먹고 있다. 옆에 앉은 서린이도 만만치 않게 잘 먹는다. 물론 김치 값을 따로 매겨야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밖에서 먹는 것 보다는 훨씬 싸다.
“요새 인건비가 장난 아니니까.”
학규가 한 마디 거든다.
“그래서 나도 혼자 일하잖아. 한 달 내내 파스타 팔아서 임대료 내고 재료비 내고 나면 진짜 내 월급만 남아. 알바 쓰면 내가 가져갈 돈이 없는 거지.”
“맞아요. 요새 음식점들도 힘들겠더라고요.”
이제 좀 배가 찼는지 지연이 고개를 들고 맞장구를 쳤다.
“우리 회사 앞에 오래된 식당이 있는데 거기서 종종 점심을 먹거든요? 재료를 좋은 걸 쓰는지 맛도 자극적이지 않고 소화도 잘 되길래. 그런데 얼마 전부터 맛이 좀... 뾰족해졌달까? 너무 자극적인 거예요. 그래서 슬쩍 물어봤더니, 인건비도 너무 많이 오르고 식자재 값도 올라서 조미료 쓴다고 하더라고요. 전처럼 육수를 끓일 여유가 없대요.”
“맞아요. 언니, 그런 곳 많아졌어요. 나 지난 주말에 간 비빔밥 집은 계란 프라이가 차가운 거야. 맛도 좀 플라스틱 같고. 같이 간 친구가 그렇더라고. 이런 식당들 요새 계란 프라이도 공장에서 받아서 쓴다고. 공장에서 대량으로 계란 프라이를 만들어서 포장해서 식당에 납품 한 대요.”
이런 이야기가 한참을 오갔다. 그러는 동안 봉구는 이제껏 지연과 자신이 사 먹은 불고기에 대해서, 서린이에게 데워주었던 레토르트 소고기 미역국에 대해서, 늦은 밤 배달해 먹었던 보쌈 수육에 대해서 생각했다. 분명 몸은 편하고 맛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조금 돈이 아까웠다.
그때부터였다. 봉구가 고기 요리에 열과 성을 다하게 된 것은. 가늘게 채를 썬 파가 잔뜩 들어간, 국물이 자작한 서울식 불고기부터, 치마양지가 넉넉히 들어간 소고기 미역국, 묵은지를 곁들인 돼지고기 수육에, 지연도 처음 먹어보는 아롱사태 수육까지. 하루건너 하루는 푸짐한 고기 요리가 식탁에 올랐다.
“봉구 씨, 나 요새 살이 찌는 것 같은데. 그런데도 멈출 수가 없네.”
“아빠, 밥 더 주세요.”
봉구는 분홍색 앞치마를 하고서 지연의 앞 접시에 고기를 덜어주고 서린이에게 밥을 더 담아준다.
“근데 우리 서린이, 키 큰 것 같지 않아? 저기 좀 서 봐.”
지연의 말에 서린이가 얼른 일어나 방 문 앞에 선다. 거기에 서린이가 세 살 때부터 키를 표시해두었다. 마지막으로 표시한 게 3개월 전이었던가.
“어머 어머, 봉구 씨! 서린이 그새 4 센티가 컸어!!”
“진짜? 엄마 나 키 컸어?”
“어! 엄청 많이 컸네! 아빠 밥을 잘 먹어서 그런가?”
봉구도 다가가 지연이 표시해 둔 곳을 가만히 살폈다. 그러고보니 요새 서린이의 손을 잡을 때 조금 헐거워진 것도 같았다. 키가 작을 때는 서린이의 팔이 위로 바짝 올라와야 했는데 요새는 느슨해 진 것이다. 그만큼 서린이는 자랐다.
“나 요새 참 행복하다, 봉구 씨.”
지연이 마음을 툭, 하고 뱉어낸다.
“몇 달 전만 해도 하루 종일 발을 동동 구르는 것 같았거든. 눈 떠서부터 밤에 잠 들 때까지 늘 불안하고 쫓기는 것 같았어. 서린이는 유치원에 잘 있나, 오늘도 배가 아프면 어떻게 하지, 오늘 저녁은 또 뭘 먹어야 하나, 빨래도 밀렸는데, 뭐 그런 생각이 떠나질 않았어. 그런데 요새는....”
지연이 가만히 봉구를 바라보았다.
“마음이 편해. 든든하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지연의 동그란 눈이 예쁘게 휘어진다. 지연이 웃고 있다. 봉구의 마음이 뜨거워진다.
“이게 다 봉구 씨 덕분이라는 거 나 잘 알고 있어. 봉구 씨가 희생하고 있다는 것도. 봉구 씨도 나처럼 밖에 나가서 일 하고 싶고 커리어도 쌓고 싶고 자기 능력도 마음껏 발휘하고 싶을 텐데... 날 위해, 우리 서린이 위해 참고 있다는 거 알아.”
응? 봉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참고 있나? 내가 희생을 하고 있는 걸까?
“내가 평생 고마워할게, 봉구 씨. 그리고 언젠가 서린이 조금 더 크면 그 땐 봉구 씨 하고 싶은 거 다해. 내가 제대로 외조 해 줄게.”
내조가 아니라 외조다. 하긴, 지연에게 내조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지금 희생을 하고 있는 건가? 봉구는 그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지만,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밥을 먹다가 얹히거나 체하면, 그냥 놔둔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내려간다. 지들이 별 수 있나. 봉구는 다시 지연에게 고기를 얹어 주었다. 키가 커서 신이 난 서린이의 숟가락 위에는 작게 자른 김치를 얹어 주었다.
다음 날, 오전 일과(빨래와 청소와 정리와)를 마치고 믹스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현경에게 단톡이 왔다.
[현경: 이번 주말 강원도로 캠핑 가실? 선배 언니가 예약했는데 알고 보니 그 날이 시이모님 생신이시래. ㅋㅋㅋㅋㅋ 그래서 내가 양도 받았음. 근데 시이모님 생신에도 가야 하는 거임?]
[학규: 캠핑? 텐트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나 아무 것도 없어]
[현경: 내가 다 있어. 전전 남친한테 돈 빌려줬다가 못 받고 대신 캠핑 장비로 받았음. 몸만 오시오.]
[지연: 콜! 나 바빠서 톡 잘 못 봐요.]
[현경: 오케이! 그럼 자세한 건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
오케이라니. 봉구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딱히 서운한 건 아니었다. 그냥 현경이가 하는 짓이 살짝 얄미울 뿐. 그렇다. 봉구의 뒤 끝은 길다. 아직까지도 서린이를 유치원에 데리러 갈 때마다 동네 아줌마들 시선에 뒤통수가 따갑다. 하지만 서린이는 오늘도 해맑다. 행복한 얼굴로 뛰어나와 봉구에게 안긴다.
“아빠, 우리 캠핑 가?”
“응.”
“나 오늘 막 자랑했어. 우리도 고기 구워 먹고 라면 먹을 거야?”
“맞아요. 서린이 어린이. 캠핑은 뭐니 뭐니 해도 삼겹살과 라면이죠.”
옆에 있던 현경이 맞장구를 친다. 봉구는 이렇게 또 하나 배운다. 캠핑에는 삼겹살에 라면.
드디어 주말이 다가왔다. 서린이는 6시가 되기도 전에 일어나서 방방 뛰어다니며 캠핑 준비를 했다. 가장 아끼는 인형 냥냥이를 챙기고 모자를 챙기고 돗자리를 챙겼다. 그 소리에 봉구도 일어났다. 하지만 뭘 챙겨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현경이가 몸만 오라고 했는데...
“김치만 챙겨. 우리는 오늘 김치 담당이야.”
멍하니 서 있던 봉구의 마음을 읽은 듯 지연이 말했다. 그간 봉구에게 많이 얻어먹었으니 오늘은 현경과 학규가 준비하는 날이라고 한다.
하늘은 높고 단풍은 아름다웠다. 살짝 쌀쌀한 날씨였지만 짐을 옮기고 텐트를 치면서 움직이니 도리어 시원하게 느껴졌다.
“아빠! 이것 봐봐. 이거 메뚜기야?”
“어. 메뚜기. 오랜만이네.”
“이건? 이건 뭐야?”
“귀뚜라미.”
서울에서는 못 보던 곤충들이다. 서린이는 책에서만 본 곤충들이 진짜로 있다며 신기해하는 표정으로 사방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옆 텐트, 그 옆 텐트에 놀러온 아이들과 친해져 같이 놀이터로 뛰어갔다. 그 사이 학규와 현경이 텐트를 완성했다.
“와. 이거 좋은 거네. 돈 대신 받을 만 한데?”
“주현경, 너 남자한테 막 돈 빌려주고 그러면 안 돼. 정신 똑바로 차려라. 어?”
학규의 잔소리에 현경이의 입이 삐죽거린다.
“내가 그런 놈인 줄 알았나, 뭐? 결혼할 줄 알고 그랬지.”
“결혼? 얼마나 만난 놈인데?”
“... 두 달?”
“야!!!!!”
야, 야, 야.. 야....
학규의 외침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이것이 강원도의 힘인가.
“두 달 만나고 결혼을 한다고? 얘가 진짜 큰일 나겠네. 너나 나나 다 애정결핍이라 연애랑 결혼은 조심, 또 조심해야 된다고 내가 말 했어, 안 했어?”
“오빠들 만나기 전 얘기야. 이제 안 그러면 되잖아. 좀 앉아! 창피해!!”
학규가 씩씩 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현경 씨는 오빠가 둘이나 있어서 시집가기 어렵겠어요.”
지연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요. 서린이 고모한다고 했을 때는 귀여운 조카 하나 생기는 것만 생각했지, 이런 오빠들이 딸려올 줄은 몰랐어요. 안되겠다, 오빠 말고 언니로 해요. 언니, 언니가 내 언니 해주세요. 봉구 오빠는 형부하고, 학규 오빠는... 형부 친구로 하자.”
하하하하하, 웃던 지연이 갑자기 정색을 했다.
“그런데 현경아...”
심각한 표정으로 지연이 현경을 똑바로 바라본다.
“너 남자 만나면 이 언니한테 먼저 허락 받아라. 아무리 봐도 너 남자 보는 눈은 좀 별로야.”
“헐. 나 결혼 못하겠는데?”
“야 주현경, 너한테 돈 빌리는 남자 만날 것 같으면 결혼 안 하는 게 나아!”
학규가 또 다시 소리를 높였다.
“이 캠핑장이랑 텐트 내가 다 구해왔다고!! 그런데 계속 구박 할 거야, 언니 오빠들?”
현경의 말에 모두의 얼굴에 느낌표(!)가 떴다. 그랬지. 우리 놀러왔지. 그런데 어쩌다 명절에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처럼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거지. 깨달음이 가져다 준 민망함을 외면하기 위해 다들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학규는 불을 피우고 지연은 그릇을 닦으러 갔다. 입이 한참 나와 있던 현경도 상추와 깻잎을 들고 지연의 뒤를 따랐다.
아무 말 없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봉구는 그제야 비닐봉지를 열어보았다. 아까부터 너무 궁금했던 차였다. 저 안에는 뭐가 들어 있을까. 사실 알고 있었다. 그래도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삼겹살과 라면을. 잘했어, 주현경. 녹차 먹인 걸로 사 왔구만.
서서히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왔다. 울긋불긋하던 산은 까맣게 잠들었고 서린이도 배가 고픈지 고기를 굽는 학규 주변을 서성인다. 봉구는 그런 서린이를 살피면서 쌈장을 덜고 있다. 잠시 후 학규가 가져온 스테이크가 먼저 완성 되었다. 그릴 자국이 멋지게 난 스테이크였다.
“와 살살 녹는다.”
이 말을 시작으로 침묵이 이어졌다. 맛있었다. 하지만.
이어서 학규가 꼬치를 구워주었다. 언제 준비했는지 기다란 꼬챙이에 소시지와 고기, 양파와 파프리카가 예쁘게 꽂혀 있었다. 서린이는 그 옆으로 가서 역시나 학규가 준비해 온 마시멜로우를 굽고 있다. 소시지와 파프리카 그리고 양파도 역시나 맛있었지만.
드디어 삼겹살 순서다. 화르르르르, 기름이 떨어지자 불꽃이 솟아오른다. 봉구는 서린이를 꼭 안은 채 그 불꽃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지글지글 끓어오르던 삼겹살 기름이 툭, 하고 떨어질 때마다 불길이 더 치솟았다.
“오빠, 기억 나? 오빠들 보육원 떠나기 전 날, 원장 선생님이 삼겹살 파티 해줬었잖아. 그때도 이렇게 학규 오빠가 고기를 구워줬는데.”
맞다. 기억이 났다. 봉구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밖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은 날이었다. 10년이 훌쩍 넘어서야 이런 자리가 다시 만들어졌다.
“이리 오세요, 삼겹살은 그냥 이렇게 서서 먹어야 맛있어.”
학규의 말에 지연과 현경, 봉구와 서린이가 불 가까이 다가갔다. 젓가락으로 삼겹살을 하나 들어 호호 불어 식힌 봉구는, 얼른 서린이의 입에 쏙 넣어 주었다. 오물거리는 입과 불룩이는 볼이 예쁘다. 지연도 열심히 먹고 있다. 봉구도 큰 조각을 집어 입에 넣었다.
그래, 이거지.
봉구의 볼이 탄탄하게 솟는다. 자꾸 웃음이 난다.
그래, 이게 고기 맛이지. 이게 삼겹살의 맛이지.
그간 봉구가 해왔던 고기 요리들이 지금 이 순간, 삼겹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볶고 지지고 끓이고 고왔던 고기들. 간장과 설탕을 계량해 넣어도, 고추장과 고춧가루에 벌겋게 버무려도 활활 타오르는 불 위에서 춤추는 삼겹살을 이길 수는 없다. 후추와 생강과 양파를 넣고 끓인 고기 육수도 전부 패배다. 삼겹살은 언제나 이길 것이다. 당해낼 자 없다.
아주 오래 전 그날 밤이 떠오른다. 원장님이 삼겹살을 잔뜩 사 오셨던 날. 산 너머 지는 해를 다시 불러온 듯 마당에 피어오른 불길. 조잘대는 어린 동생들과 얼굴이 벌겋게 익도록 고기를 굽던 학규와 애꿎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현경과 담배를 태우시던 조리실 실장님. 그때 봉구는 뭘 하고 있었지? 지금처럼 학규 옆에 서서 삼겹살을 먹고 있었다. 아주 맛있는 삼겹살을. 때로는 학규의 입에 쌈을 넣어주면서. 그때 두 사람은 마주보고 웃었던 것도 같다. 그러자 현경도 폴짝이며 다가와 젓가락을 들었었던 것 같다.
그간 많은 고기 요리를 해왔지만 가장 쉬운 삼겹살 구이를 하지 않았던 건, 봉구에게 삼겹살은 바로 이 삼겹살이기 때문이다. 가스불 위에 얹은 프라이팬에 구운 건, 삼겹살이 아니다. 진짜 삼겹살은 불 옆에 둥글게 서서 조금은 뜨거운 불길을 느끼며 한 점, 한 점 집어 먹는 것. 기름이 끓고 살짝 딱딱해졌음에도, 때로는 까맣게 탄 줄도 모르고 먹는 것.
봉구는 상추를 하나 집어 삼겹살을 얹었다. 쌈장 대신 집에서 가져온 김치를 얹고 마늘도 하나 넣었다. 그러다 삼겹살을 하나 더 넣고는 꼼꼼하게 싸서 학규에게 내밀었다. 아무렇지 않게 입을 벌려 받아먹는다. 하지만 봉구는 알고 있다. 저 자식, 지금 웃고 있다. 그리고 그 날을 떠올리고 있다. 현경이 말없이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본다. 그러다 문득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봉구는 생각한다. 삶은 아무래도 삼겹살의 맛이라고. 화려하고 값비싼 다른 고기 요리들을 물리치고 제왕의 자리에 앉고야 마는 삼겹살. 삶도 마찬가지다. 그 어떤 시련과 고난이 와도 우리는 불 앞에 모여 앉아 삼겹살을 굽고, 이 사람들과 함께 봉구는 행복해질 것이다. 엄청나게 화려하고 극적인 삶은 아니지만, 계속 계속 살고 싶어지는 인생. 지연이 있고 서린이가 있으므로, 학규와 현경이가 있으므로. 삶은 삼겹살의 맛처럼 충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