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어도 곁에 있어주는 일
기분이 가라앉는 날이면 나는 그 이유부터 알아야만 마음이 놓였다. 어떤 말에 내 마음이 멈춰 섰고, 무슨 감정이 나를 흔들었는지, 정확한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편안해졌다.
남편은 나와 달랐다. 그는 "왜 그래?"라는 질문 대신 조용히 물 잔을 채워주거나, 내가 좋아할 만한 걸 먹으러 가자고 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상대의 곁에 머물렀다. 나는 이해라는 다리를 건너 가까워지려 했고, 그는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다고 했다.
나조차도 내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헤맬 때, 그는 어떻게 그렇게 태연할 수 있는지 궁금해 물었다. “오빠는 내가 다 이해가 돼? 나조차도 가끔 내가 이해가 안 되는데 오빤 왜 다 받아줘?” 남편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지. 근데 꼭 다 이해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냥 너니까 나는 상관없어.”
이해하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다는 건 내겐 낯설고 어려운 개념이었다. 나는 늘 이해받지 못하면 불안했고,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 고치려 애썼다. 이해받을 수 없는 모습이 내 안에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끊임없이 노력해서 그것들을 지우고, 바꾸고 싶어 했다. 상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있는 그대로의 나와 상대방보다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서로를 맞추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내가 말을 아끼며 숨죽일 때도, 스스로도 풀 수 없는 감정의 실타래에 갇혀 있을 때도, 묵묵히 같은 자리에서 기다렸다. 모르겠다고 해서 등을 돌리지 않았고, 다 알겠다고 자신하지도 않은 채. 그 모든 혼란과 막막함을 그대로 안고서 곁에 머물렀다.
“행복하자고 같이 있는 게 아니야.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같이 있자는 거지.”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에서 읽었던 문장이 떠올랐다. 예전엔 그냥 지나쳤던 문장이, 이번엔 내 안 깊숙한 어딘가를 조용히 흔들었다.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그 말은, 사랑을 말로 납득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뜻 같았다. 그저 곁에 있겠다는 단단한 약속. 모른다고 물러서지 않고, 다 안다고 억지로 우기지도 않는 마음. 그건 크게 울려 퍼지지는 않았지만, 아주 작고 정직한 진동으로 내 가장 깊은 곳을 건드렸다. 내가 기대했던 방식은 아니었지만, 더 오래 남을 무언가를 받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어느 순간부터 나 역시 남편을 이해할 수 없어도 괜찮아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면 불안했으면서도 그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그가 그이기 때문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마저도 자연스럽게 품고 있었다. 우리는 이미 이해라는 조건을 넘어선 곳에 닿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