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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현 Feb 08. 2022

완전하지 않은 어른이 된다는 것

비수면 위내시경

    작년 말 위내시경을 처음으로 받아보았습니다.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이 점차 심해진다는 느낌, 그리고 점점 잦아지는 위경련으로 불편을 겪다 보니 끝내 병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위내시경을 받은 뒤 오후에 또 일정이 있어서 비수면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수면으로 하면 그날 운전도 할 수 없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주변 사람들은 깜짝 놀랍니다. “비수면으로 했다고? 너 미쳤다. 완전 어른이다.” 정작 실제로는 얼마 걸리지도 않았고, 오히려 수면 내시경을 하면서 헛소리를 하며 흑역사를 남기는 것보다는 짧고 굵게! 끝내는 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결정한 것인데 ‘어른’ 소리를 듣다니요.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걸까 생각해봤습니다. 성인 인증을 쉽게 하는 것…. 청불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는 것, 그러고 보면 어렸을 때는 특별하게만 느껴졌던 그 금단의 것들이 어른이 되면서 어째서인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게 되었습니다.(오히려 어렸을 때보다 더 디즈니에 빠져서 영화관에서 디즈니 영화를 보는 일이 더 많습니다.) 저는 대출을 처음으로 받았던 때, 그리고 주식투자를 시작했을 때, 보험을 공부해서 가입했을 때, 스스로 돈을 관리하며 연금저축을 넣기 시작했을 때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이제는 제 미래와 운명이 사소한 것부터 거대한 것까지 오롯이 제 선택에 달려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 것입니다.


    그 기분을 설명하자면, 뭐라고 하면 좋을까… 설렘은 설렘인데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서 한 칸 한 칸 경사를 올라갈 때와 같은 설렘과 떨림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다채로운 미래가 제 선택들에 의해 변화된다는 벅찬 마음과 그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동시에 든 것입니다. 내가 과연 남들만큼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 말입니다.


    저는 꽤 오랫동안 완벽주의 성향으로 힘들었습니다. 무엇이든 시작하기가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완벽하게 해내거나, 아예 하지 않거나. 극단적인 흑백논리와 그에 따른 모순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왜냐하면 완벽하다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입니다. 완벽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방법은 ‘하지 않는 것’인데, 그건 또 불가능하니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시간을 다 갉아먹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두뇌를 풀가동하여 어떻게든 마무리는 지으나, 그것은 원래 원했던 완성도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일 때가 많았습니다. 그 뒤로 저는 해내기 위해 80만 하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업무를 할 때에도 100퍼센트 완성 짓는다는 생각이 아닌, 대충 구색만 맞춘다는 생각으로 시작하면 금세 마무리 지을 수 있었습니다. 비중이 낮은 업무를 오히려 완벽히 하려고 하다가 마감일자를 넘기는 것보다 훨씬 나았습니다. 생각보다 무언가를 ‘완결’ 짓는다는 것은 큰 성취감을 가져다주었고,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것을 마무리 지을 수 있다는 것은 크나 큰 자기조절감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이런 것을 조금 더 빨리 깨닫고 삶에 접목시켰다면 해낼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많았겠지요. 그러니 지금이라도 변모하게 된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한데 어른이 된다는 것은, 완벽주의 성향이고 나발이고 할 것 없이 어느 날 갑자기 고등학생에서 성인이 되며, 난데없이 그 책임을 떠안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 따위는 주지 않았습니다. 어른이 될 마음이 없었지만, 그래서 ‘응애’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냥 어른이 된 것입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행동에 자유를 얻는 대신 자신의 행동에 따른 책임을 지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술을 마음껏 마셔도 됩니다. 하지만 술을 먹고 부린 주사와 흑역사는 평생 제 몫입니다. 노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그에 따라오는 미래 역시 제 몫이고 제 책임입니다. 누구인들 돕지도, 대신 노력해주지도 않습니다. 이는 오히려 보호의 테두리 안에 있던, 책임의 무게가 작았던 학창 시절을 더 그리워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어른이 되어서의 장점은 제가 하는 것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는 것이고, 단점은 제가 하는 것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장점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저는 예전처럼 유약하게 다가오는 고통을 그저 수용하고 견디는 데에 힘을 쏟던 어린이가 아닙니다. 이제는 제 스스로 미래를 선택하고 바꾸어 나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제가 돈을 모으고 공부해서 투자하는 것에 따라 경제 수준을 바꿀 수 있고, 가족이 될 사람도 그리고 가족을 더 만들지 여부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이제는 제 뜻에 따라 작가가 되기 위한 꿈을 다시 꾸기 시작했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저 제가 살아가면 그게 제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작가가 되기로 선택하면 저는 작가 소현이 되는 것이고, 회사원으로 정년퇴직할 것을 선택하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우울에 빠지는 것을 선택하면 그대로일 것이고, 변하고자 한다면 나아질 것입니다. 방향을 정하는 대로 그곳을 향해 온 힘을 쏟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저에게 희망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불행을 견디는 상황에 안주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완전하지 않은 어른으로서 저는 이제부터 불행도 행복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모습의 어른이 존재하고, 저는 그중의 하나일 뿐이지 누구보다 낫고 못나고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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