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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현 Feb 10. 2022

편지를 쓰겠어요.

내용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편지를 쓰고 나면 그 내용을 기억하시나요? 저는 손편지를 자주 쓰는 편이지만 그 내용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워낙 의식의 흐름대로 쓰기도 하고, 그리고 진심을 진득하게 많이 담아 쓰는 편이라 얼굴을 보고 하기에는 오글거리거나 부끄러운 말도 잘 쓰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미안하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을 참 많이 합니다. 그것 말고도 헛소리를 참 많이 하기 때문에 저를 암살하고 싶으시다면 제가 쓴 편지를 사진으로 찍어 저에게 보내주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사인은 수치사입니다.


     편지를 쓴다는 것은 관계에 윤활을 해주는 것과 같습니다. 받는 사람에게도 의의가 있지만 쓰는 이에게 더 좋은 시간입니다. 편지를 받을 당신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 지 다시금 살펴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자신도 몰랐을 내가 좋아하는 그의 부분을 들려주는 것도 즐거운 일입니다. 그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를 제가 알려줄 수 있다는 게 내심 뿌듯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생각하면 그들을 곁에 둔 제가 얼마나 분에 넘치는 행복을 가진 사람인지 알게 됩니다. 결국 나로 시작해 그들을 돌아 다시 나에게 옵니다. 주는 이도, 받는 이도 행복해지는 편지를 씁니다.


    꼭 한 번은 편지를 읽다가 웃게 만들고 싶습니다. 그게 어이없이 터진 웃음이라도 좋습니다. 그냥 내가 그를, 그에게 특별한 오늘 한 번이라도 웃게 했다는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괜스레 우스개 소리를 적고 헛소리를 장황하게 늘어놓아 봅니다. 그럼 그 편지의 어딘 가에는 웃음이 묻어 있습니다. 그들은 그 편지를 언젠가 다시 집어 들게 되면 또 웃게 될 겁니다. 그게 좋습니다.


    행복하다는 게 정말 사소한 것에서 온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다 보니 불행에 늘 상 귀 기울이고 있다면 그 조용한 행복이 지나가는 것을 눈치챌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작고 사소한 것도 큰 것도 상관없이 선물을 하고 싶습니다. 받는 것은 그들인데 행복해지는 것은 저입니다. 선물을 받고 웃는 사랑스러운 모습은 제가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은 것이라도 꼭 특별한 날에는 선물을 하고 싶습니다. 그게 그에게도, 저에게도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도 편지를 썼습니다. 이곳 아랍에서의 파견근무를 마치고 국내로 복귀하는 언니에게 쓴 편지였습니다. 얼마나 언니를 좋아하는지, 그리고 준비한 선물의 역사와 그 이유를 장황하게 적었습니다. 공항으로 떠나는 버스에서 읽고 찔찔 짜겠다고 약속하는 언니에게 고마웠습니다. 어쩌면 저와 함께해 준 시간에 대한, 나누어준 온기와 애정에 대한 감사 표시였습니다. 더 오래 함께하지 못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과정에서 제가 얼마나 덕분에 행복했는지를 알려주는 일입니다. 곱씹어 볼수록 편지를 쓰는 시간이 더 귀해집니다.


    어렸을 때에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기를 바랐습니다. 그게 애정이라고 잘못 생각했습니다. 서툴었던 청소년기와 이십 대 초반, 내 마음을 몰라주는 친구와 연인에게 자주 서운함을 느꼈습니다. 어떻게 요구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제가 감히 요구할 수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한데 시간이 지나니 알게 되었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오해할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저도 못하는 것을 상대에게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너무도 늦게 알게 된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이제는 정확히 전달하려 합니다. 여전히 서운한 순간도 있지만 (특히나 연인에 대해서는 더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기대를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에 익숙해지려 합니다. 그게 관계에서 서로를 알아가고 익숙해져 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좋아한다는 것도, 미안한 것도, 고마운 것도 늦지 않게 분명히 표현해야 합니다. 표현이 서툴었던 과거에는 그 말을 하는 것이 참 쑥스러웠는데, 이제는 그 말을 제 때 하지 못하면 얼마나 오래도록 후회하게 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좋아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전달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 사람도, 저도 행복해지려면 반드시 늦지 않게 그래야만 합니다. 비록 저는 편지의 내용을 미처 다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 여운과 감정은 오래도록 남아서 앞으로의 시간을 돈독하게 해 줄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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