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고 버리기
무언가 버리고, 비우는 것이 즐거워졌습니다. 별것 아닌 것도 쓰레기봉투로 묶어서 내다 버리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것이 좋습니다. 공간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습니다. 한창 우울할 때에는 방 안이 쓰레기장 같았습니다. 무기력해서 누워있기 바빴고, 그러다 보니 주위는 지저분해지고 그렇게 또다시 우울해지는 것의 악순환이었습니다. 청결하고 간결하게 정돈된 공간을 보면 마음도 차분해지고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불안함이 가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위해 스스로 노력한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년에는 한국 휴가를 갈 때마다 본가에 있는 짐을 한바탕 털어 엎었습니다. 버릴 것, 기부할 것, 그리고 중고서점에 판매할 것으로 분류해서 10박스에 가까운 짐을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집 안의 공간도 넓어졌고 무엇보다 버리는 과정에서, 그 군더더기를 덜어내는 과정에서 마음이 정돈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불필요한 것들을 껴안고 살았던지 당황스러웠습니다. 보면 ‘이런 것까지 갖고 있었다고?’ 싶어서 어이없는 웃음이 나오는 물건들도 참 많았습니다. 그런 것에 방 한편을 모두 내준 채 좁은 공간에서 우울한 채 생활하고 있었던 게 미련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물건은 참 많은 것을 소비하게 만듭니다. 이를 구매할 때 돈을 소비하게 하고, 공간을 소비하게 하고, 에너지를 소비하게 합니다. 그다지 필요 없는 물건이 정말 많은데도 말입니다. 얼마 전 국내로 복귀하는 언니가 그런 말을 해 주었습니다. 짐이 정말 많았는데, 짐을 싸 놓고 며칠 생활하다 보니 그중에 진짜로 필요한 건 몇 없더라는 거였습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몸은 하나인데 옷은 수 십 벌이 있습니다. TPO에 맞추어야 한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과하다는 생각은 분명히 듭니다. 올 해는 옷을 한 벌도 사지 않아보려 합니다. 이미 옷은 충분히 많고, 더 이상 그곳에 소비하고 싶은 공간도 돈도 그리고 그럴 마음도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현재 있는 옷 중 입지 않는 옷을 깨끗하게 세탁하여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하려고 합니다. 쓸모없이 공간을 축내는 대신 연말에 소득공제라도 얼마 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새부터 절약을 실천하게 되며 극한의 효율충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꼭 물건이 아니어도 그렇습니다. 너무 많은 것에 마음을 두고 살고 있지는 않나 돌아보게 됩니다. 특히나 지나간 일이 그렇습니다. 이는 모두 소비입니다. 과거 읽었던 심리학 책에 그런 말이 있었습니다. 과거의 트라우마를 승객으로 태울지, 말 지는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늘 그 버거운 것들을 승객으로 태우다 못해 가슴 한편에 지고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과거의 불행이 물건이고, 마음이 방 안이라면 온통 어질러진 방 안에 발 디딜 곳도, 몸을 뉘일 곳도 없는 채로 평생을 살아온 것 같습니다. 요새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야 하나?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에 얽매여 고여 있을지, 내려놓을 건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앞을 향해 나아갈지는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정돈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과거를 곱씹지 않으려 합니다. 이미 바꿀 수 없게 되었고, 그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모두 배웠습니다. 더 배울 게 있다 해도,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이제는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지저분한 공간은 그리고 그런 마음 상태는 정말 소중한 것을 찾지 못하게 만듭니다. 필요한 것을 알아채지 못하게 합니다. 그런 상태로 삶을 유지할 필요가 더 이상은 없습니다. 아팠던 날들과 그로 인해 방황했던 날들은 모두 여기 있습니다. 이곳에 있기에 그리워지면, 그리고 필요해지면 다시 찾으러 오면 됩니다. 마음속에 항시 무겁게 들고 있을 필요가 더 이상 없어졌습니다.
삶이 조금 더 가벼워졌습니다. 이제 내일을 떠올리면 어떤 변화를 이룰 수 있을지 기대감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