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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현 Feb 03. 2022

약속의 무게

그보다 더 무거운 것이 있었다면,

    상실. 2021년을 마무리 지으며 가장 큰 범주로 꼽을 단어입니다. 2020년 7월에, 그리고 2020년 12월에 한 번 저는 친구들을 보냈습니다. 스물다섯이고, 스물여섯이었던 아이들이었습니다.


    아픔은 2020년을 관통해 여전히 곁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떠올리면 슬펐고 되짚으면 그리웠습니다. 사랑한 만큼 아팠습니다. 어느 7월 아침 눈을 뜬 저에게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가 와 있었습니다. 스물다섯 그 친구의 여동생이 보내온 메시지였습니다. 언니가 세상을 떠났으니, 장례식에 참석해주시면 감사하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게 거짓이길 바랐습니다. 주변 후배들에게 급히 연락을 해 물어보고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참담해 울었습니다. 열여덟, 열아홉 살 기숙사 생활을 함께하던 우리는 1년 선후배 사이였습니다. 그 아이가 오랜 우울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고등학교 때부터 알았습니다. 죽고 싶어 우는 그 아이를 다독였던 적이 있습니다. 그 방의 바닥 무늬조차 기억에 선명합니다. 이후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그 아이는 전례 없이 밝았고, 우리 함께 다음엔 오키나와를 가자,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지면 다시 모이자, 약속까지 한 채여서 방심했습니다. 약속은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끝내 우리는 함께 오키나와에 가지 못할 것이고, 진주에서도 통영에서도 곡성에서도 다시 모이지 못할 것입니다. 그 아이가 떠났기 때문입니다. 1월 그때 코로나가 처음 발발했을 때, 우리 마스크 꽁꽁 세 겹 쓰고 만날 걸 그랬다. 그때 용기 내서 너를 한 번이라도 더 볼 걸 그랬다. 이제는 후회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이미 저는 아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생 분 계좌로 조의금을 보내고, 헛헛한 마음을 달래지 못해 종종 일하다가 울었습니다. 다시 돌아갈 수 없구나 생각에 울다가, 그리워하며 울다가 시간이 흘러있었습니다. 나중에 찾아간 납골당에서 이제는 대답할 수 없는 그 아이에게 계속 그립다며 말을 건넸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제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그 뒤에 같은 후회를 다시금 하게 되었습니다. 결코 그 아이는 아닐 줄 알았고, 언제라도 그 자리에 있어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 현명하고 지혜롭던, 제 삶에서 가장 반짝거리던 아이였기에 저는 안일했고 또 영영 후회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스물여섯 살에 영원히 시간이 멈춰버린 그 아이는, 저와 만나기로 했던 12월 6일에 떠났습니다. “내일 봐, 재미난 얘기가 많아.”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긴 채였습니다. 사나웠던 꿈자리에 땀에 젖어 깨어난 저에게 그 아이가 아닌, 그 아이 아버님께서 연락을 주셨습니다. 작은 사고가 나서 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오늘 만나기로 했다며?라고 연락을 주신 것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무슨 일이야? 괜찮아지면 연락 줘요.”라고 카톡을 남겼습니다. 그 메시지의 읽지 않았다는 1 표시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 아이의 카카오톡 계정이 사라질 때까지도. 그날도 어김없이, 약속은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왜?라는 질문을 수만 번 던져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답은 그들이 가지고 떠났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저 여기에 남아 내내 그리워하고, 그리워하다가 그들을 만나러 갈 날을 고대할 뿐입니다. 한동안은 그들의 떠남이 저에게 ‘누군가 열고 나간 문’이라는 인상을 주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저에게 어느 상담사님께서는 ‘베르테르 효과’라는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동경했던 이들, 맞습니다. 저는 그들의 반짝거림과 용기를 동경했습니다. 지금은 그 문이 닫혔지만, 한동안은 너무 힘들어서 저 역시도 용기를 낸다면 그 문을 열고 나갈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짙게 했던 나날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다 지나간 이야기이지만 참으로 미련했구나, 하고 부끄럽습니다.


    참 오래 준비했다고 하는데, 오래 아파왔다고 하는데 참 오래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미안합니다. 미안하고 또 그립습니다. 도저히 원망할 수는 없습니다. 얼마나 아팠는지 저는 짐작도 하지 못하는 멍청이이니까요. 저는 그저 그리워하고, 그리워하다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바보라서 그들을 다시 만날 자격이 있는지도 사실은 잘 모르겠습니다. 꼭 가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을 터입니다. 그저 우리가 했던 그 작은 약속들이 그들 가는 길을 더 힘들게 한 것만은 아니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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