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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현 Jan 30. 2022

웃는 낯

에 침 탁 뱉기

    너무 잘 웃어서 가짜 리액션이라는 얘기도 종종 듣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그중 사실은 한 20% 정도 섞여 있으니. 저는 상대방이 민망해하는 모습을 절대로 못 보는 인프피(INFP) 이니까요! 예전에 그런 저를 무척 싫어하던 같은 파트 직원이 있었습니다. 대뜸 난데없이 저에게 소리를 지르고 질색해대서, 파트원 중 누가 봐도 ‘아, 쟤 소현이 싫어하는구나.’ 티를 풀풀 내던 사람이었습니다. 과거의 어린 저였다면 집에 가서 조용히 혼자 울고 같이 있는 공간에서 내내 혼자 몰래 스트레스받았겠지만, 그때의 저는 달랐습니다. 퇴근한 후 혼자 있는 그 주임님께 다가가서 대놓고 “주임님 제가 주임님한테 뭐 잘못한 거… 없죠?”라고 물은 겁니다. 그 주임님은 눈에 띄게 당황해 웃으며 “뭐 그런 걸 물어봐요! 없어요!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들어가요 빨리.”하면서 저를 집으로 들여보냈습니다. 방에 들어와 저는 깨달았습니다.  나 진짜 싫어하네, 쟤.


    누군가의 악의를 평온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것은 아마 법륜스님쯤의 경지에 올라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 역시도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이, 혹은 더 많이 저를 향한 미움에 영향을 받고, 신경을 쓰고, 스트레스에 잠 못 이룹니다. 과거에는 그 두려움과 생경함에 수동적이었지만, 지금은 좀 더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중입니다. 이제는 조금, 부딪힐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예전에 심리 상담을 받을 때, 제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옷장 속에 있는 괴물 같아요.” 상담사님께서는 나지막하게 하하 웃으시며, “그게 무슨 이야기예요?”하고 되물으셨습니다. 옷장 속 괴물은 어린 저에게 존재 여하에 관계없이 두려웠으며, 옷장 문 틈으로 보이는 어둠은 얼마나 깊은 지 가늠도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옷장을 열어보면 괴물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얕은 어둠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처럼 제 앞에 다가온 대부분의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입을 실제 타격이 10이라면, 선제적으로 느끼는 두려움은 20에서 크게는 100까지도 확장되는 것입니다. 문을 열어보면, 그런 건 사실 없는 경우가 많은데 말입니다. 경우에 따라 진짜 괴물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을 열지 않고 두려워만 한다고 해서 무언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언젠가는 문이 열리게 될 것이고, 마음의 준비를 한 채로 문을 열어 맞서느냐, 그저 두려움에 떨다가 열려버린 문에 얼렁뚱땅 당해버리느냐는 천지 차이입니다.


    그날 저녁, 그 주임님으로부터 카톡이 왔습니다. 얘기를 좀 할 수 있겠냐는 연락이었습니다. 오케이. 현피로구나. 겉옷을 주워 입고 대차게 나간 저는 예상대로 저를 싫어한다는 얘기와 싫어하는 이유(말하지 않으려 하셨지만 제가 고집스레 캐물어 말하게 만들었습니다.)까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예상에 가까운 이유도 있었고, 뜻 밖이었던, “아니, 이런 걸로 사람을 싫어하면 도대체가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는 거야?” 싶은 어이 털리는 이유들도 있었습니다.


    그는 제가 가식적인 게 싫었고… 이걸 적으면서도 웃음이 터집니다. 그런 이유로 저를 싫어하는 사람이(과거에도 있었겠지만 몰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있다는 것도 신기했고, 그걸 대놓고 말해주는 사람도 참 신선했습니다. 그리고 제 가짜 리액션도, 주변 나이 많은 직원분들께서 막내라고 부둥부둥해주는 것을 가만히 받고 앉아있는 것도 재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저로서는 그분들의 성의를 거절하기 어려웠던 것뿐인데, 그렇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이 또 생소했습니다. 하지만 뭐… 사람에 따라 시야도, 받아들이는 방식도 모두 다른 것이니까, 또 오케이! 하고 넘긴 뒤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임님께서는 제가 겸손하지 않아서 싫어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칭찬을 해주면 “아니에요~”라고 겸손을 떠는 것이 아니라, “네 고맙습니다.” 하는 것이 건방져서 싫다는 겁니다.


    이것도 참 재미있는 게, 저는 원래 “아니에요~”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칭찬해주는 상대의 말을 부정하는 맥락이라는 점과, 저의 자존감이 낮다는 방증인 것만 같아서 애써 고친 것이 “네, 고맙습니다.”였습니다. 그러나 이래도 절 싫어하고 저렇게 고쳐도 저를 싫어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결국 싫어할 사람은 어떤 이유를 가지고라도 결국 저를 싫어하고, 저를 좋아할 사람은 제가 어떤 행동을 하던 크게 다를 바 없이 좋아한다는 사실을, 생생히 겪게 된 경험이었습니다.


    결국 그 주임님과는 그 뒤로도 몇 번의 전쟁 같은 다툼과 파트 내에서의 신경전을 벌이며 싸우고 화해하고, 싸우고 화해하고를 반복하다가 끝내는 서로에게 ‘그래도 참 괜찮은 사람이었지.’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그 주임님께서 한국으로 복귀한 뒤, 동기에게 저에 대한 평판을 ‘나도 열심히 하는데, 나보다 더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더라.’라고 전해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알았습니다. 저 역시도 그분에 대해 질문받으면 자신의 일을 똑 부러지게 잘하는 사람이라고 칭찬을 전합니다. 인생 가장 강력한 혐오 관계에서 무난한 관계로 잘 마무리 지은 사례로 남게 되었습니다. 가까우면 함부로 대하고, 멀면 미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이라고도 합니다만, 저는 일명 ‘모닥불 인간’이라 부릅니다. 멀어지면 얼어 죽고, 가까이 다가가면 불이 붙어 다치고 마는 것입니다. 그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만이 정답인 모닥불 인간과의 관계는 외줄 타기처럼 아슬아슬한 맛이 있습니다.(좋다는 뜻은 아니고 무섭습니다.) 정작 제가 좋아하고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은 제가 노력하는 것마저 싫어할 수도 있고, 예상치 못했던 사람과 급격히 친해져서 “야, 우리 어쩌다 친해졌는지 기억 나…?” 같은 대화를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산다는 게 이렇게 재밌습니다. 예상치 못한 관계도, 예상치 못한 사건들도, 너무나 힘들어서 많이 고통받고 울었지만 지나고 보면 이렇게 우스운 게 참 신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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