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현 Jan 28. 2022

자기 연민이 꼭 나쁘기만 한가요?

20년 차 자기 연민 인간

    자기 연민이 참 나쁜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자기 연민에 빠져 오랜 기간을 살아왔습니다. 객관적으로도 저는 좀 불쌍한 구석이 있습니다. 누가 누가 더 불쌍하나 경연대회를 연다면 이길 자신도 우승할 자신도 없지만, 제일 불쌍한 것만이 불쌍한 것은 아니니 말입니다.


    엄마께서는 저를 낳고 싶지 않아 했다고 합니다. 낙태하려고 했던 것을 아빠께서 어르고 달래고 달래서 낳게 된 것이 저이고, 그래서인지 어째서인지 표준 체중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체중으로 태어났습니다. 1.8kg의 아기. 뱃속에서도 눈치를 봐 크지 못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듭니다.(이게 자기 연민 20년 차의 논리입니다.) 열 달을 거의 채우고 태어났기에 미숙아는 아니어서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엄마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습니다. 아마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러니까 지금의 제 우울증과 아빠께 들은 당시 엄마의 상태를 조합해 보면 엄마는 산후우울증을 지독하게 앓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엄마는 매일 누워있고, 점심이 되도록 잘 일어나지 못했고, 오빠와 제 끼니를 챙겨주지 못했습니다. 아빠는 그것을 탓했지만 저는 그게 산후 우울증이구나, 깨닫게 되고 나서는 엄마를 탓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 말씀을 상담사님께 드리자 또 남만 이해하려 하고 자신을 살피지 않는다며 꾸중 아닌 꾸중을 들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고작 세 살이었는데, 왜 또 엄마를 이해하려 드냐며 말입니다. 단지 보호받고 애정을 받았어야 하는 나이일 뿐이지, 엄마를 이해하고 배려할 나이는 아니었다고, 그 말씀이 마음을 따뜻하게 덮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세 살까지 엄마를 포함한 4인 가족으로 살았고, 그 뒤로는 이혼한 아빠, 오빠, 할머니 그리고 삼촌과 살았습니다. 지긋지긋한 삼촌입니다. 삼촌은 폭행하고 추행하고 학대했습니다. 그 누구도 대여섯 살에 학대당한 기억을 가지고 자라면, 그것이 어찌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저는 온통 영향을 받았고, 내성적이고 예민하게 자랐습니다. 사람과 눈을 마주칠 수 없었고 음식을 삼키지 못했습니다. 섭식 장애가 나아진 것은 그로 인해 맞았기 때문도, 훈육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8살의 어느 날 급히 점심을 먹고 특별수업을 가야 했던 나를 아빠가 다정한 말로 달래어주며 “옳지. 잘 먹네 우리 소현이.” 라며 밥을 입에 떠먹여 주었던, 그날 나았습니다. 그날 그 고작 물에 만 밥에 고추장 찍은 마른 멸치가 너무도 맛있었습니다. 그게 정신적인 문제였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다가 얼마 전에 연관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 끝없이 이어진 가난, 예민한 성격 탓에 겪어온 공황들. 이 모든 것에 상관관계가 없다고 말한다면 그래, 그렇다고 대답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게 제가 당한 학대 때문임을 알고 있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저 자체가 본래 이렇게 자라올 사람이었다는 뜻인데 그건 그 자체로 또 저에게 학대입니다. 그럼 저는 잔뜩 가시를 세우고 공격하고 싶어 집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제가 평생을 얽매여 살았기에, 상처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저는 이렇게 자기 연민에 빠져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로부터 지금까지, 상처받고 싶지 않아 바짝 가시를 세우고 다가오는 손길에 몸을 웅크렸습니다. 그런 것들을 완화하게 해 준 요소는 아무래도 소중한 친구들, 그리고 아빠의 애정 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정신과 치료와 심리상담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약을 먹는 것도 말입니다.


    자기 연민에 빠지면 성장할  없다고 합니다.  자리에 고여 썩어 가겠지요. 하지만  오랫동안 다친 구석을 들여다볼 겨를도 없이 자라야 했던 저는 제가 안쓰럽습니다. 사랑받지 못하고 학대당했던 어린 시절이 안쓰럽고, 그런 자신을 달래주거나 치유해줄 새도 없이 먹고살아야  걱정에 자신을 몰아붙였던 청소년기도 안쓰럽습니다.  중요했던 시기에 스스로 채찍질해 여기까지 오게  것은 너무도 고맙지만, 여태 고치지 못한 상처는 곪을 대로 곪아 결국 썩어 문드러져 고름이 터져 나옵니다. 자기 연민으로 제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았고, 자기 연민이 저를 정신과로 이끌었습니다.  스스로가 불쌍하지 않았다면  손으로 사내 정신건강 담당자에게 연락해 정신과 방문을 조언받고,  발로 정신과까지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럼 저는 여태 제가  아픈지 들여다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상처만이 상처인 줄 아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신적인 상해는 그저 의지가 약하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스물다섯이 되기 전의 문제는 부모 탓을 할 수 있지만 그 뒤의 문제는 스스로 고쳐내지 못한 것이니 자신의 탓이라고 하는 책도 있었습니다. 모두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실이 저를 고쳐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저에게는 애정이 필요했고, 그 무조건적인 애정이 저를 고쳐주었습니다. 너무도 드물었고 그래서 너무 소중했던. 저였기에 주었고, 저이기에 방심해주었던 그 애정이 저를 고쳐주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오늘도 제 편입니다. 저는 제가 불쌍하고, 그렇기에 저를 지켜주려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 누구보다 제가 슬픈 것, 제가 아픈 것은 저 자신이 가장 잘 알아챌 수 있으니까, 이제는 제가 나서서 보호하고 치유해주고자 합니다. 그럼 언젠가는 이 연민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겠지요.

이전 14화 낡고 스산한 날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