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현 Jan 14. 2022

약 이야기는 재미가 없습니다.

그리운 사람에 대하여

    약을 먹게 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다행인 점은 요새 워낙 미디어에서도 우울증을 많이 다루고 있고, ‘코로나 블루’로 우울증이 사회적으로 보편화된 느낌이 팽배해서 저도 이렇게 이야기를 꺼낼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고, 불행인 점은 보편화될 만큼 우울한 이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제 약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아침에 먹는 항우울제, 저녁에 먹는 항우울제와 기분조절제, 자기 전에 먹는 수면장애 약. 종종 불안이 심해질 때에는 자기 전에 먹는 약을 반으로 똑 잘라먹으라고 의사 선생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허나, 한 번 그렇게 먹었다가 점심시간에 자던 쪽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사무실에 늦게 돌아간 적이 있어 그 뒤로는 일과시간 중에는 잘 먹지 않습니다. 


    하나의 사건으로 덜컥 우울증이 온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울할 이유를 찾아봐도 수많고 행복할 이유를 찾아봐도 수많습니다. 슬픔이 조금 더 강세라 행복할 이유를 가렸기에 우울증에 걸린 듯합니다. 아무래도 첫째는 삼촌의 폭력. 이제 와 생각해보면 제가 8살까지 앓았던 섭식장애의 원인도 삼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음식을 잘 삼키지 못해서 초등학생이 된 후에도 체중이 17kg밖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한 끼를 먹는 데 3시간이 걸려서 아빠께도 많이 맞았습니다. 아마 삼촌이 아니었다면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고 키가 더 컸을 겁니다. 그럼 삼촌 머리를 책으로 때리기도 더 쉬웠겠지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점프를 해 때리도록 하겠습니다. 둘째는 아빠의 사고와 오래도록 이어진 가난으로 추측합니다. 중학생일 적부터 우울증 낌새가 있었지만 방치했습니다. 그때는 그게 우울증 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냥 우울하구나, 했습니다. 3년 내 우울했으면서.


    행복할 이유는, 사랑하는 가족 아빠와 조금 덜 사랑하지만 아무튼 가족인 오빠. 소중한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친구들.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사람들이 치유해주었습니다. 이유 없는 학대가 있었듯이 이유 없는 애정도 있었습니다. 그 사실이 저를 살게 했습니다. 상담사님께서 그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겪은 일들에 대해, 그 사건을 ‘당한’ 것이 아니라 그 사건으로부터 ‘살아남은’ 거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수동에서 능동으로, 무력한 사람이 아닌 주체적인 한 명의 사람으로 변모시켜주는 말이었습니다. 그게 그렇게 마음을 울렸습니다. 그럼에도 밤이 오면 그 소중한 이들은 곁에 없고 혼자만이 어두운 방 안에 남아 저를 훑고 지나간 불행을 다시 곱씹으며 우울해하는 것입니다.


    그 우울이 항상 곁에 상주하다가 펑 터지게 된 계기는 아마도 작년에 세상을 떠난 제 친구. 그에게 우울증이 있었는지도 아무것도 모르는 채였던 저에게 “재미난 얘기가 많아. 내일 보자.”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우리 만나기로 한 날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친구.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뒤로 1년이 넘도록 겪은 수많은 감정과 생각을 어떻게 몇 마디 말로 나열할 수가 있을까요. 그저, 참 오래도록 슬펐습니다. 묻고 싶었습니다. 왜 마지막에 나를 만나지 않고 떠났느냐고, 왜 아무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냐고, 그리고 참 보고 싶다고. 내가 너에게 묻지 않고는 아무것도 제대로 몰라서, 짐작하지도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2021년 그 애의 생일을 일주일 앞두고 처음으로 꿈을 꿨습니다. 떠난 뒤 한 번도 꿈에 나오지 않아 야속했던 그 애와 하얀 탁자 앞에 마주 앉았는데, 그 애가 보여서 대번에 꿈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칫하면 꿈에서 깨게 될까 떨리는 손으로 그 애 손을 조심스레 잡았습니다. 차가운 듯 미지근했던 온도, 그리고 손을 잡힌 채로 다 안다는 표정으로 미소 짓던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꿈에서 깼습니다. 한참을 펑펑 울었습니다. 너무 보고 싶은 사람을 다시 보게 된 게 기뻤고,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게 너무 사무쳐서 울었습니다. 아직도 그 애 흔적을 보면 다시금 웁니다. 저는 별 수 없이 울상인 사람이어서, 주위 사람들이 “네가 자꾸 울면 친구도 슬퍼할 거야.”라는 말을 들어도 정말로 별 수 없이 펑펑 웁니다. 아직 저는 친구를 보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건 평생이 지나도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슬픔은 흐려지고 좋았던 추억은 그대로 남아 꺼내어 볼 수 있게 되겠지요. 아직도 그 애 웃음소리가, 그 옥구슬 굴러가듯이 맑았던 웃음소리가 귀에 맴돕니다. 어떻게 잊을까요. 너무나 좋아했고 동경했던 그 아이를. 예쁘고 지혜로운 그 아이를. 제 삶에 와준 게 선물 같던 그 애를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요. 누가 뭐라고 하든, 저는 계속 그리워할 것 같습니다. 한껏 그리워하고 한껏 울고 나면 슬픔을 흘려보내고 언젠가 웃고 있는 그 애 기억만 남으면 좋겠습니다.


    남자친구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으면서 저는 끝내 납골당 앞에서 그 애 남자친구를 소개받았습니다. 그분도, 그 아이처럼 참 속 깊고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본인의 슬픔이 얼마나 클지 저는 채 짐작도 하지 못하는 얕은 사람인데, 그분은 친구가 생전에 저에 대해 한 얘기들을 조용히 전해주셨습니다. 꼭 알려주고 싶었다며, 그 애에게 제가 얼마나 소중한 친구였는지, 얼마나 좋아했는지, 그리고 꼭 소개해주고 싶어 했다는 이야기까지. 너무도 감사하다는 말을 다시금 전하고 싶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펑펑 웁니다. 저는 별 수 없습니다. 아직도 끝을 모르게 오래도록 슬퍼하게 되겠지요. 그 애가 남은 스물여섯에서 한 살 두 살 조금씩 멀어지다 보면 언젠가는 슬픔은 무뎌지고 우리가 나눴던 애정만이 남기를. 그때 제 손에는 어떤 약도 남아있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나는 조금 더 있다가 갈게. 우리 다시 만나면 그때는, 꿈에서 그랬듯이 손을 마주 잡자.

이전 07화 중동국가의 외국인 노동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