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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낡고 스산한 날들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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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소현 Jan 16. 2022

정이 든다는 것

사랑하는 고양이에게

최근 수영장을 다니며 만나게 된 고양이 친구가 있습니다. 애교가 많고, 항상 목이 쉬어있고, 처음에는 저를 경계했지만 밥을 준 이후로는 언제나 그 시간 그 자리에서 저를 기다려주는, 한 쪽 뒷다리가 무릎까지 밖에 없는, 다른 녀석들보다 조금 작은 고양이.(시간이 지나 알았는데 그냥 덜 자란 것 뿐이었습니다. 지금은 아주 튼실한 성묘로 자라고 있습니다.) 유독 마음이 쓰여 제 수영복 가방에는 항상 고양이 줄 사료가 봉지로 들어있습니다. 가는 길에 만나면 한 줌, 오는 길에 만나는 날에 한 줌. 이름은 앙큼이입니다. 하도 앙큼상큼하게 애교를 떨어 앙큼이입니다. 이제 그 고양이는 멀리서도 저와 눈이 마주치면 헐레벌떡 뛰어옵니다. 뛰어와서는 왜 이제야 왔냐는 듯 머리를 비비고 다리에 엉깁니다.

정이 든다는 것은 두렵습니다. 잃으면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모든 연에는 끝이 있고, 일정 부분의 이별에는 예고편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 속이 어떤 여러 칸으로 나뉘어 있다고 하면, 그러니까 한 칸은 견디는 힘, 한 칸은 사랑하는 힘, 한 칸은 열정, 이렇게 말입니다. 예고 없는 이별을 몇 번 겪고 나니 그 중 견디는 칸이 텅 비어진 느낌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이별이 올 것이 두렵고, 새로운 연도 두렵습니다. 그 이별을 받아들일, 그게 불가능하다면 헤쳐 지나가기라도 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아 그렇습니다. 작은 저의 햄스터들이 그랬고, 아픈 채로 찾아왔던 아기 고양이가 그랬고, 할머니가, 그리고 친구가 그랬습니다. 그 견디는 힘은 채워지는 시간보다 닳아가는 속도가 빨랐고, 텅 비고 나니 도통 차오르지가 않습니다.

그럼에도 고양이는 눈으로, 몸짓으로, 목소리로 계속 말을 겁니다. 기다렸어, 왜 이제 왔어, 보고싶었어, 고마워, 같이 있자, 그리고 가지 말라고 미야 미야 웁니다. 그 때면 마음이 에어져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도통 힘들어 수영을 가고 싶지 않은 날에도 그 밥을 주러 어떻게 해서든 수영복을 챙깁니다. 웃긴 게 이 바보고양이가 제 뒤로 차나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면 후다닥 제 뒤로 가서 섭니다. 조그만 녀석이 지켜주겠다는 듯이 말입니다. 오늘 그 모습을 보다가 울었습니다. 저는 울보이기 짝이 없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났습니다. 저를 지켜주고 싶어 하는 이가 있다는 게 고마워서, 저는 고작 밥을 챙겨주고 쓰다듬어준 게 다인데, 하루 고작 십 여분 함께하는 저를 그 작은 몸으로 막아서 준다는 게 너무 다정하고 소중해서… 이 작은 아이와 언젠가 이별할 날이 온다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에 마음이 너무도 슬펐습니다. 너는 나를 기다려줄 텐데, 기다려도 내가 가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나. 작은 고양이가 저를 하루 내 기다릴 것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울컥해집니다.(이럴 때는 알고 보니 동네 암컷 고양이들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나서 제가 올 때쯤 느긋하게 돌아와 기다리는 거라고 상상하면 조금 덜 슬퍼질 수 있습니다.)

이별이 두렵다 해서 정들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공간에도, 사람에도, 물건에도, 모든 것에 결국엔 정이 들고 익숙해집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 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을 너무 잘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국에 휴가를 가서 본가에서 2주쯤 지내다가 다시 돌아오면 아빠께서 그 자리가 너무 허전해서 며칠을 앓으시고는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너무 슬펐습니다. 어쩜 슬픈 이야기가 이토록 많을까요. 제 감정선은 대체로 슬픔에서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쌈바를 추고, 행복에서는 카약을 타는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노 젓는 것에 서툴기 때문입니다. 행복을 온전히 누리는 것에 서툴다는 점에서 둘은 일맥상통합니다.) 저 역시도 친구들이 하루, 이틀 머물고 가 혼자 남았을 때 그 적막과 공허가 가슴에 사무치듯 느껴져서 애써 소음을 찾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누가 들어온 자리는 티가 나지 않는데 누군가 떠나간 자리는 오래도록 마음을 적십니다. 신경이 쓰이고, 눈이 갑니다. 겪어도, 또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감정입니다.

떠나간 모든 이들, 모든 것들에게 알게 모르게 내어주던 마음 한 자리가 그들의 부재와 동시에 텅 비어버린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게 아니면 가슴이 이렇게 시릴 리가 없습니다. 어쩜 마음을 이렇게 잘 내주는지. 정이 많은 저는 결국 오지랖이 넓을 수밖에 없는 체질, 슬픔을 자주 겪을 수 밖에 없는 체질을 타고난 듯 싶습니다. 어쩔 도리 없는 그 ‘정’을 광대 체질에 접목하여 주변에 즐거움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보렵니다. 오늘도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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