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the basic!
수영장이 닫혔습니다. 오미크론 때문입니다. 코로나는 끝이 날 듯 끝나지 않는 변종 개발로 좀비처럼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곳 바라카에 올 무렵부터 시작된 코로나가 어느새 2년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2년 가까이 기다렸던 수영장 개장이 고작 3주 전이었습니다. 짧고도 찬란한 꿈이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개장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수영장에 달려가서 일주일은 행복하게 물속 시간을 마음껏 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떠나간 수영에 대한 그리움을 이제는 글로 풀어보고자 합니다.
제 머릿속은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과도하게 많습니다. 하루 종일 끊이지 않고 머릿속을 유영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끊어내는 방법을 저는 당최 알지 못했습니다. 명상을 시도해 봤지만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좀이 쑤셔서 금세 눈을 뜨거나 딴생각이 떠올라 버리고는 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친구가 수영을 같이 다니자고 몇 개월을 꼬셔주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덕분에 인생 운동을 찾게 되었고, 이토록 코로나 시국에 견우와 직녀처럼 물을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수영을 하는 동안에는 물속, 물 밖의 소리가 섞여 들려오고 손 끝으로 물을 가르는 느낌, 그리고 물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한 몸의 세밀한 움직임, 차오르는 호흡을 차분하게 가다듬는 일에 집중하다 보면 생각이 끊어집니다. 종종 물이 잘 타질 때면 딴생각이 나기도 하지만 그러다 보면 금세 자세가 흐트러지고 물에 막히는 느낌이 오기 때문에 다시금 자세와 호흡에 집중하게 됩니다. 생각을 끊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폐활량도 체력도, 그리고 근력도 늘어납니다. 살은 빠지지 않습니다. 왜 인지 물으신다면 말씀드리는 게 인지상정이나, 그냥 빠지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지낼 때 2년간 스포츠센터에서 수영을 배웠습니다.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 그리고 턴 하는 것과 다이빙까지 배우다 끝내 다 배우지 못하고 아랍에미리트에 파견근무를 왔습니다. 그리고 바로 코로나가 터지면서 수영장이 폐장되었습니다. 그렇게 나름 모든 영법을 배우다 보니 느낀 게 있습니다. 무엇이든 기초를 탄탄하게 잡아 놓지 않으면 그 위에 아무것도 제대로 쌓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기초를 배우는 데 오래 걸렸던 자유형은 수영의 기본이다 보니 들인 수업 시간도 길었고, 혼자 따로 시간을 내 연습하는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자유형으로 한 번에 1km 정도는 돌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한데 접영은, 슬프게도 기초를 배우던 기간에 지독한 감기에 걸려 2주를 넘게 쉬고 나니 저를 제외한 모두가 접영을 배워버린 것입니다. 고작 발차기만 익힌 채로 같은 반 사람들과 바로 접영을 같이 해야 했습니다. 엉망진창 물먹기 파티였다는 점은 언급하지 않아도 예상되실 겁니다. 그렇게 기초를 제대로 쌓지 못한 접영은 여전히 지지부진, 누구 앞에서 창피해서 할 수 없을 정도이며, 25m도 끝까지 가지 못할 정도로 못합니다. 골칫덩이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삶의 많은 부분이 비슷합니다. 공부도, 업무도 기초를 잘 깔고 축적해 나가면 그 위에 쌓아 올린 골자가 더욱이 짜임새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제 업무가 그렇게 중구난방이었나 봅니다. 접영처럼 배우고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 뒤로 꽤나 오래도록 스스로 부끄러울 만큼 일을 못했으며, 제 몫을 해내기 시작한 것은 고작 작년부터의 일입니다. 그 전에는 거의 6년의 기간 동안 어떤 식으로 일을 시작하고 마무리 지어야 하는지도 몰랐으며, 일은 지지부진 밀려가서 마감일을 넘기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다 보면 그 업무를 다시 꺼내어 볼 용기조차 내지 못해 결국 밀리고 밀리다가 상사에게 발견되어 혼나는 일도 부지기수.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어려운 업무도 아니었던 것을 생소하다는 이유로 착수하지도, 잘 해내지도 못했고, 시간이 지나니 연차가 쌓여 무지한 것이 더욱 수치스러워졌습니다. 이를 극복하게 된 것은 소속이 옮겨지면서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어 주위에 묻고, 주위를 따라 하는 것이 자연스레 보이는 환경에 오면서부터 입니다. 이번만큼은 부끄럽지 않게 제 몫을 해내고자 했고 적극성을 간신히 끌어 모아 마감 기한 전에 업무를 마무리했습니다.
수고했다는 말이 참 달았습니다. 그렇게 첫 성취 이후 쌓아온 성취의 데이터가 모여 새로운 방법을 도전할 수 있게 해 주고, 모르는 것을 묻는 것도 어느새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제가 모르는 것을 남들도 잘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저만 모르는 줄 알고 창피했습니다. 지금의 제가 보기엔 귀엽기 짝이 없지만 제가 제 상사였다면 답답해서 이미 진작에 돌아가셨을 겁니다. 그동안 저에게 화를 덜 내려 애써주신 십여 명의 상사분들께 사과와, 감사를 전합니다. 전해지지는 않겠지만요.
그러니 언젠가는 접영도 해낼 수 있지 않을까요? 다시 열정을 태워 수영 유튜브를 잔뜩 탐독해야 하겠습니다. 자유형 장거리 수영을 하고 싶어 애썼던 그 열정만큼 노력한다면 아마 지금보다는 분명 나아질 겁니다. 못하면 어때. 못하니까 연습하지. 그러려면 일단은 수영장이 다시 열려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코로나 제발 끝나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