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이에게 쓰는 돈
아버지 임플란트를 몇 개 해드렸습니다. 올 해로 60세, 만으로는 59세가 되신 아버지께서는 라미네이트를 한 것처럼 예쁘고 고른 이를 가지셨지만 몇 개의 이는 다치고 자리를 비웠습니다. 이는 참 신기하게도 윗니와 아랫니가 맞닿지 않으면 맞은편 이도 금세 썩고 밀려나와 뿌리가 약해져 버리고는 합니다. 결국 못 쓰게 되는 것입니다. 자리가 비면 그 틈을 메우려 다른 이들이 벌어집니다. 몸 속, 그리고 입 속에는 균형이 있고, 아버지의 입 속은 어느덧 균형이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임플란트를 몇 개 해드렸습니다. 몇 년 전 4개로 시작해서 얼마 전 윗니가 없는 곳의 이를 하나 더 해드렸습니다. 짝이 없으면 소중한 아랫니도 곧 아파지고 말 테니 말입니다.
썩어도 준치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임플란트 기술이 좋아졌다고 해도 기존의 이를 지킬 수 있는 한 지켜야 한다는 것이 거의 우리 집의 가훈입니다. 아빠의 입 속에는 저의 저축통장이 있습니다. 복리혜택은 아빠 몸의 영양 공급입니다. 아빠는 단단한 당근도 시원한 오이도 잘 씹어 드시고 갈비도 잘 뜯으십니다. 잘 씹으니 소화도 잘 되고 몸 곳곳이 잘 회복됩니다. 아빠가 더 건강하게 오래 살게 되셨습니다. 그게 복리 혜택입니다.
피해의식에 빠져 오랜 기간을 살았습니다. 집에 생활비를 보내야 하는 가계 사정에 나는 왜 주변 친구들과는 달리 이런 집에 태어나게 되어서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집에 돈을 부어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했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사실입니다. 저는 어렸으니까요. (물론 지금도 그다지 어른스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삶에는 중요한 것이 생각보다 많고,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 중에는 별 게 아닌 것들도 많다는 것을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소중한 사람들이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속도입니다. 특히나 속도 중에서도 ‘남의 속도’ 입니다. 그보다 더 제 인생에 중요치 않은 것이 더 없음을 몰랐습니다. 모두가 각자의 속력으로 걸어 나갑니다. 각자의 방향을 가지고 말입니다. 그런데 방향도 가는 길도 다른 이의 속력을 힐끔 보고 나는 왜 느릴까, 나는 왜 어깨가 무거울까, 투덜대는 것만 한 시간 낭비가 없다는 것을 느지막이 깨달은 것입니다. 이제는 압니다. 그저 소중한 나의 사람들과 함께 튼튼한 이로 갈비를 뜯는 삶만큼 멋진 것이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지금이 아니면 의미가 없는 일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빠의 준치를 지켜드리고 싶듯이, 지금 지키고 싶은 사람을 소중하게 대하는 것에 더 집중하고 싶어졌습니다.
소중한 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안락하고 편안했으면 좋겠습니다. 돈을 버는 것도 모두 그걸 위한 것임을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수단’과 ‘목표’를 혼동하지 말아야 함을 배웠습니다. ‘목표’는 행복이고, ‘수단’은 돈입니다. 돈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참 오래 헤맸습니다. 그래서 참 오래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분명히 거쳐 왔어야 하는 과정이었다고 여깁니다. 의미 없는 시간은 없었습니다. 삶 속의 모든 것들이 다 의미를 품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도 생각합니다. 그 과정을 모두 거쳐왔기에 제가 더 잘 알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앞으로 살아가는 날에도 이러한 의미를 삶에 잘 되새겨 늘 조금씩 나아지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아빠와 통화를 했습니다. 요새 글을 쓰고 있다는 제 말에 아빠는 기뻐하셨습니다. 곧 본을 떠서 이를 씌우신다고 합니다. 기념하고자 이번 휴가에는 한국에 가서 가족들과 함께 갈비를 먹어야 하겠습니다. 성능 테스트도 겸 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