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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현 Jan 24. 2022

버려질 것이라는 두려움

불안형 애착

    어제 악몽을 꿨습니다. 전 남자 친구의 친구들이 저에게 잔뜩 악플을 다는 꿈이었습니다. 전 남자 친구에게서 급한 전화가 와서는 “내 친구들이 원래 생각 없이 말하는 거 알지? 너무 신경 쓰지 마.”라고 해서 뭔데? 하고 유튜브를 들어갔는데 제가 출연한 영상에 악플이 무더기로 달려있었던 것입니다. 갑자기? 아무 연관도 없는데 그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꾼 악몽이었습니다. 최근에 떠올린 적도 없는데, 숨겨진 죄의식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현 남자 친구에게는 물론 말하지 못했습니다. 질투의 화신이기 때문입니다. 요새 유독 꿈을 많이 꾸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하루에 꿈을 세 개씩 꾸는 날도 부지기수입니다.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을 먹기 시작한 뒤로 유독 꿈이 많아졌습니다. 대체로는 오전이 지나기 전에 모두 기억에서 사라집니다. 가끔은 무섭고 끔찍한 꿈도 있으니 기억에서 사라져 주는 게 감사합니다.


    저는 불안형 애착 유형입니다. 심리상담센터에서 받은 검사였습니다. 애착과 관련된 검사에서 일반적인 답변과는 상당히 다른 답변을 했습니다. 폐쇄적인 성향이 강하며, 생애최초 애착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리고 실제 제 연애에서도 그 애착 성향은 분명히 나타납니다. 연애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 저는 버려짐을 두려워합니다. <달의 연인>이라는 드라마에 보면 그런 대사가 나옵니다. “사랑하다. 의 반대말은 미워하다가 아니었습니다. 버리다, 였습니다.”라는 대사입니다. 이 말이 제 애착 유형의 요약이 아닐까 싶습니다. 극단적인 흑백논리로 인해 내면은 편안할 때가 없습니다. 아마도 생애 최초 엄마와의 이별을 제가 ‘버림’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혹은 저를 낙태하고 싶어 했던 엄마의 마음이 태아도 아닌 고작 조그마한 세포였던 저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고 하던가 말입니다.


    그러다 상대방이 조금만 불편해하거나 언짢아하는 기색이 보이면 그때부터 제 속은 제 속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느라 신경은 온통 그리로 곤두서고, 머릿속으로는 수많은 데이터들을 모두 뒤져 상대방의 기분이 상한 이유를 찾고자 고군분투하고, 심장은 사정없이 죄어들어와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불안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냥 바쁘고 지쳐서 대답이 짧고 표정이 굳어진 것이었거나, 배고파서 그런 거였다거나,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 있었다거나 아무튼 저와는 관계없는 원인들이 대다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작은 확률로 존재하는 ‘내가 원인인 일’ 일까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로 인한 과민성 대장증후군과 위경련을 자주 달고 살았습니다. 사실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지금도 본가 전세방 구하는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잔뜩 받아 위경련이 왔습니다. 약을 먹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질투의 화신인 제 남자 친구와는 어쩌면 상극입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처음부터 서로가 상극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저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컸기에 관계를 이어온 것이지 매일매일 서로 맞춰 나가는 노력 없이는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남자 친구도 불안형 애착 유형이기 때문입니다. 불안과 불안. 불안이 진동이라면 서로의 불안이 맞아떨어진 날에는 공명이 일어나 그동안 쌓아왔던 신뢰가 와르르, 단숨에 금이 가버리는 것입니다. 쉽지 않은 관계입니다. 저보다 연상인 남자 친구는 이를 미리 예견했고, 애초에 헤어지려는 노력을 여럿 했습니다. 이래서 어른 말은 틀린 게 없다고 하나 봅니다. 물론 헤어지고 싶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다시 만날 만큼 서로가 사랑하고, 그만큼 힘들지만 그보다 더 사랑하니까요.


    제 남자 친구는 한국에 있습니다. 여기 바라카, 아랍에미리트에서 만났지만 집안 사정으로 인해 예정보다 조금 더 빨리, 갑자기 먼저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그 과정 역시 순탄치 못했습니다. 고충처리 절차에 따라 복귀를 신청한 남자 친구에게 귀국하기 고작 4일 전 귀국 날짜 확정 통보가 온 것입니다. 업무 인수인계와 계좌 닫기, 현지 휴대폰 번호 정리, 비자 취소 준비, 방을 빼기 위한 짐 정리와 저와 이별할 준비까지. 모든 준비를 3일 안에 마쳐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였다면 못한다고 일주일만 제발 미루어달라고 싹싹 빌었을 듯합니다. 해낸 것이 새삼 대단합니다. 역시 어른입니다. 아무튼 갑작스러운 이별에 또다시 저의 견디는 힘은 와르르, 겨우 쌓아온 힘을 죄다 써버리고 며칠간은 무기력의 연속이었습니다. 영원한 이별이 아님을 분명히 알지만, 그 물리적 거리라는 것과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다는 것, 힘들 때 서로의 곁에 있어줄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과격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럴 수밖에. 모두 공감하지 않나요?


    물론 그게 버려짐이 아님을 압니다. 멀어진 친구 관계는 그저 서로가 자석의 같은 극처럼 자연히 서로를 밀어냈기 때문이지 상대방이 나를 버렸기 때문이 아님을 알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머리로 안다고 당장에 해결되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저도 덜 먹고 운동하면 살이 빠지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안됩니다. 이처럼 제가 버림받지 않을 거라는 사실도 알지만, 마음이 그렇게 안됩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마치 날아오는 공에 눈을 질끈 감고 몸을 움츠리는 것처럼 너무나 반사적인 현상이라 잘 제어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마도 오십 줄 쯤 되었을 때에는 두려워하지 않으려나 싶습니다. 제 노력 나름이겠지요.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면 좋겠습니다. 이 불안감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결코 영원하지 않은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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