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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Nov 02. 2019

추억이란 이름으로

 차를 내놨다. 꽤 오랫동안 몰았던 차여서 정이 많이 들었는지, 진작에 팔았어야 했지만 그냥 뒀다. 마지막으로 세차를 해주었다. 기계식 세차장의 물줄기가 앞유리로 거세게 떨어진다. 서글프다. 그동안 이 차와 보냈던 시간들이 한꺼번에 눈앞에 쏟아지는 기분이었다. 처음 길들인다고 고속도로를 달리던 날, 지금과는 달리 세상 얌전하게 몰았었다. 발레 파킹할 때를 제외하고는 웬만하면 남에게 핸들을 맡기지 않았다. 한 번 사고를 내긴 했지만, 차만 좀 찌그러지고, 나는 괜찮았지. 그땐 미안했다, 차야. 날씨 좋은 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신나는 노래에 나도, 차도 신났었다. 붉게 물드는 노을을 바라보며 달릴 때는 괜히 센티해져서 눈물이 나기도 했다. 추억들이 많다.


 뭐 모든 물건들이 그렇지만, 살 때에 비하면 팔 때의 가격이란 참 형편없다. 이렇게 내게 소중했던 차인데, 오래된 물건이니 당연히 값이 떨어지는 게 맞지만, 내 추억까지 함께 가치가 떨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상한다. 이런 취급을 받을 애가 아니라고요! 이런 가격이면 팔지 말고 옆에 둘까도 생각해 본다. 그러기엔 덩치가 너무 크고 유지 비용도 만만치 않다. 결국 보내는 게 답이다.


 이번에 처분하게 된 차 말고도 버려야 할 것들은 여전히 많다. 큰 추억을 정리하게 됐으니, 작은 추억들도 어떻게 한 번 손을 대봐야 하나. 두 개여야 되는 차키 하나가 안 보여서 집안을 샅샅이 뒤질 때 발견한 것들이다. 이십 년도 더 된 생일 축하 카드부터 대학생 때 찍은 스티커 사진, 글씨가 써지는지 알 수 없는 펜들, 압정과 클립들, 회사 다닐 때 라디오 원고들(이건 분량이 어마어마하다)도 그대로. 옷장 안에 잘 접혀 있는 유행 지난 옷들과 신발장에 겹겹이 쌓인 굽이 닳은 신발들은 말할 것도 없다. 몇 년 사이 단 한 번도 손을 대지 않는, 아니 어디에 놨는지 기억도 안 나는, 아니 그런 게 있었는지 모르는 것들이 나와 늘 함께 숨 쉬고 있다. 며칠 전 콘서트에 다녀오면서 새로 생긴 추억들도 언젠가는 서랍 깊숙한 곳을 차지하겠지. 그래,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앞으로도 계속.

콘서트의 새로운 추억, 아미밤.

 추억이라는 단어를 자꾸 꺼낸다고 나이 들었다고 생각하지는 말기를. 곱씹을 추억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야기할 거리도 많다는 뜻이니,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반가운 일이다. 요즘 피아노를 연습하면서 옛날 생각도 많이 난다. 어릴 적 친구도 갑자기 보고 싶다. 지금은 뜸하게 연락하는 그녀에게 오랜만에 문자를 보냈다. “그때는 그렇게 안 한다고 생떼 부리더니, 이제야 피아노를 다시 치냐?” 고 답이 돌아온다. 피아노 시키려고 했는데, 얘가 안 하려고 한다고 우리 집에 놀러 온 친구에게 엄마가 여러 번 말했었기에 그녀도 기억하고 있나 보다. 그러게. 친구 말처럼 그때는 그렇게 ‘생떼’ 부리며 싫었던 피아노였는데, 지금은 이렇게 매일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 추억을 곱씹는 것처럼 피아노 건반을 누르고 있다.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 상황은 다르지만, 나도 피아노 앞에서 뭔가 뾰로통했던 때가 많았다. 사진 :마이 데일리

 사실 어린 시절 피아노에 대한 마지막 나의 기억은 그렇게 좋지 않다. 예중을 가려고 준비하고 있는 도중 엄마랑 대판 싸웠고, 한 번의 싸움으로 피아노와 간단히 이별했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랑 싸웠다고 자신의 꿈을 그렇게 단호하게 접을 일인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때는 뭔 심사가 그렇게 뒤틀렸는지, 연습이 그렇게 하기 싫었는지, 아니면 꿈에 대한 간절함이 부족했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지나간 일이고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이기에 그 길이 나의 길이 아니었을 거라고 믿어야지 어쩌겠나. 그때가 아니었더라도 중간에 그만뒀을 거라고, 어떤 이유든 그만둘 이유가 생겼을 거라고. 어쩌면 그전부터 그만둬야 했었는데 계기가 없었던 것뿐이라고.


 그렇다고 좋았던 추억까지 깡그리 사라진 것은 아니다. 체르니 100번과 하농을 넣고 다녔던 노란색 피아노 학원 가방과 친척들 모인 자리에서 우쭐해하며 쳤던 피아노, 삼촌 결혼식 때 쳤던 결혼 행진곡도 또렷하다. 풍금을 도맡아 쳤던, 그래서 특별히 좋았던 음악 시간과 교회 어린이 성가대 반주를 했던 기억도 여전히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 추억이, 어느 날 불쑥, 나를 자극해 다시 피아노와 만나게 됐으니까.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잘 숨겨둔,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미련도 분명 있었겠지. 마치 품고 있는지도 모르게 품고 있었던 나의 물건들처럼, 피아노의 추억은 지금까지의 나라는 사람과 함께 한 추억이었다.


 언젠가 지금 이 순간을 돌아보며 웃으며, 때로는 눈물지으며 추억하고 싶어서 나는 이렇게 피아노를 다시 시작하고 연주회를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내일을 위한 추억들을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시간이 한참 지나 누가 봐도 할머니가 됐을 때, 옛날을 기억하며 ‘그때는 그랬었지, 내가 왜 그랬지’ 이러면서 이야기하고 싶다. 또 글로도 남기고 싶다. 그렇게 추억을 추억하며 추억과 함께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니 요즘 피아노 연주회 준비로 조금 벅찬 유튜브(legatopark) 제작도 다 추억이고, 지금 이렇게 브런치에 남기는 글들도 다 추억이다. 내가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추억이라 생각하니 매 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정말 얼마 안 남았어요.

 요즘 연주회만큼이나 뒤늦게 나 자신에게 드는 질문이 있다. 나는 왜 연주회를 하는가. 얼마 전 SNS에 같은 질문을 하고, "연주회날 무대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라고 썼었다. 아직 가야 할 여정이 남아있어 답은 미루어 두었지만,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뭐, 사실 답이 무엇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남은 시간 과정을 충분히 누리며 묵묵히 걸어가 보겠다. 어딘가에 도착했다는 기쁨보다는 그곳을 향해 걸어가며 보고 느꼈던 수많은 감정들과 생각들이 더 귀한 것이었음을, 그리고 그것들이 진짜 추억으로 남게 되길 바라며, 그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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