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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May 24. 2019

4488, 다시 피아노에 도전하다

경단인

 다른 부서에 근무하던 옛 회사 동료가 회사를 그만두고 7년 만에 다시 일을 시작했다. 유독 하얗던 그녀의 얼굴은 장밋빛 생기가 돌았고, 차분하던 말투는 현장 소식을 전하는 생기발랄한 리포터처럼 들떠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별다른 걱정 없이 즐겁게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었나 보다. 그녀도 자기가 다시 일하게 된 것에 이렇게 들뜨게 될 줄은 몰랐다며 행복한 미소를 보였다. 그 미소가 나의 마음을 흔든 것일까. 영화 박하사탕의 배우 설경구가 처절하게 외쳤던 “나 돌아갈래!” 가 문득 떠오른다. 그래, 그럼 어디로?

영화 '박하사탕'중에서...  그러고 보니 다시 돌아가고, 다시 개봉하고... 사진 : 씨네 21

 경단녀는 사회 문제기도 하고, 경단녀가 될까 봐 잠깐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나와 연결시켜서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일단 경단녀는 결혼과 육아로 직장을 그만둬 경력이 단절된 여성으로 정의할 수 있는데,  나의 경우에는 결혼을 하고도 10년 가까이 더 다녔고, 아이가 없어 육아를 하지 않았으니, 결혼과 육아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그만둔 상황은 아니라 경단녀와 선을 그었던 것 같다. 그리고 '.. 녀'라는 말을 들는 것이, 그것이 좋은 의미를 지니고 있더라도 약간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더욱 그러했다. 퇴사를 하고 이제 3년 하고도 8개월, 거의 4년을 채워가는 시점에서 이제는 인정한다. 일을 다시 시작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과 더 늦어지면 안 되는데 하는 조바심 속에 살고 있음을 격렬하게 느끼는 나는, 경단녀이다.

로맨스는 별책부록이고 경단녀 이야기인데, 많이 부럽습니다. 사진:싱글 리스트

 뭐 이렇게까지, 그것도 뒤늦게 커밍아웃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사춘기를 조용히 지나갔던 사람에게는 질풍노도의 고뇌의 시간이 어떻게든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래저래 고민이 많은 요즘 드는 생각. 그때는 왜 그랬고, 지금은 왜 그럴까. 퇴사할 당시에는 퇴사의 이유조차도 똑 떨어지게 정리하지 못할 만큼 모든 게 흐릿했었다. 어쩌면 그 흐릿함이 내 미래를 갉아먹을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에 일단 뭐라도 끝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내 경력을 단절시키는 게 내 미래를 위한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셈이다. 그래야 깔끔하게 새 출발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나 보다. 그렇게 자발적 경단녀가 되고 보니, 세상은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나올 때는 내 마음대로 나왔지만, 다시 발을 들여놓기는 어려웠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는 이미 나 같은 사람, 아니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너무 많았다.

순발력과 개그감... 넘사벽인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전현무. 사진: 쿠키뉴스

 나는 물고기를 잡아보겠다고 손으로 덤벼드는 물가의 아이였다. 운이 좋으면 한 두 마리 정도 잡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런 도구 없이 손으로만 버티기엔 물고기도, 물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그런 아이처럼 물가에, 아니 세상에 나올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아나운서는 이미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 아나운서 출신이라는 것외에 나를 소개할 말이 없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주어진 기회가 있었고, 그 기회였던 몇 번의 강연을 하게 되면서 뾰족한 펜으로 콕콕 찔러대는 아픈 깨달음만 얻었다. 문화센터에 오는 어머님들에게 나는 아직 인생을 잘 모르는 젊은이였고, 학교의 강연장에서 만난 학생들에게 영감을 줄만한 인플루언서는 아니었다. 준비한 이야기를 시간 안에 잘 마쳤다고, 그저 몇 번 사람들을 웃겼다고, 끝나고 수강생들과 사진 찍는다고 강의가 제대로 된 것인가.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었다. 콘텐츠. 나하면 떠올릴 수 있는 그 무엇이 빠져 있었다.

어느 한 강연장에서... 학생들이 뭐라도 영감을 받아가는 부분이 있었길 바라며.

 아나운서라는 직업의 특성이자 여러 가지 분야에 대해 두루 관심을 갖는 나의 취향은 자발적 경단녀에게는 적합하지 않았다. 전문가 위에 전문가가 되지 않으면 버티기 쉽지 않은 현실을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버텨왔다. 지극히 게으르거나 지극히 낙천적이거나. 둘 다이거나. 게다가 아나운서였을 때부터 준비해야 했을 나의 콘텐츠는 어디에 뭐가 있는지 잘 몰라 필요할 때 찾다가 포기하는 파일들처럼 뒤죽박죽이었다. 과연 그중에 내가 계속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제대로 고민해본 시간이 있었을까.


 그리고 이제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 처음 보는 곡을 연주할 때 흔히 초견이 빠른 사람은 금방 감을 잡고 시작하고, 조금 더딘 사람은 시간이 필요하다. 초견이 빠르다고 결과가 더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 이후로 연습을 얼마나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성과가 나는 것이지, 초견의 차이는 금방 따라잡을 수 있으니까. 피아노에서 뿐만 아니라, 인생의 초견이 더딘 나는 마흔이 넘어서야 슬슬 깨닫기 시작한다. 늦게라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늦게라도 하고 싶은 일을 찾고, 늦게라도 뭔가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더 행복한 일이다. 육아로 경력 단절을 경험하고, 뒤늦게 꽃을 배우며 꽃집을 꿈꾸는 언니가 “너무 늦게 시작했나 봐. 더 빨리 시작했었어야 하는데...” 하고 말끝을 흐리는데,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이 제일 빠를 때라는 뻔한 말을 했다. 그 말은 나에게 보내는 응원이기도 하네.

"수국도 늦게 피지만, 오랫동안 피어 있잖아요. " 라고 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우리는 같이 꽃배우는 사이니까. 사진 : 글로벌이코노믹

 지금 연습하고 있는 슈베르트의 즉흥곡 op.90, 2번은 오른손으로 쉴 새 없이 연주되는 패시지의 선율이 봄날의 꿈처럼 가볍고 화사하게 펼쳐진다. 그러다 중간부는 박자를 쿵짝짝 잘 맞춰서 춰야 할 것 같은 춤곡 같은 분위기로 바뀐다. 악센트를 충분히 붙여 음 하나하나를 강조해서 연주하라는 ben marcato라는 악상기호가 붙어 있는데, 물 흐르듯 펼쳐지는 처음 악상과는 달리 단절감이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악상은 음과 음을 끊지 말고 연결시키며 부드럽게, 레가토로 연주해야 하니 단절감이 더 도드라진다고 할까. 처음에는 첫 부분에 끌려서 이 곡을 좋아하게 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중간부의 묘한 단절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한마디 한마디 끝날 때마다 뭔가 새롭게 시작하는 기운이 느껴진달까. 그다음 음이 뭔지 기대가 되기도 하고.

슈베르트 즉흥곡 op.90, 2번의 처음 제시부와 중간부를 올려보았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느낌이 다르지요?

  어쩌면 나의 인생은 슈베르트 즉흥곡의 중간부를 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상상해본다. 마디마디, 아니 하루하루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는 일상이지만, 끊어질 듯 이어지는 단절 속에서 어디론가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나에게 또 다른 의미로 경력 단절이었던 피아노가 내 인생의 경력을 다시 연결해주는 나의 콘텐츠로 자리잡길 바라본다.



p.s 경단인은 경력을 단련시키는 인간이 아닐까요...? 모든 경단인들 화이팅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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