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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Jan 31. 2020

박아나의 일상뉴스

포비아 시대의 CONNECT

 한산한 거리, 사람들은 많지 않다.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린 불안한 눈빛은 더욱 도드라진다. 나와 비슷한 얼굴의,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움츠려 든다. 요즘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포비아’라는 단어를 경험하는 순간이다.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알고 싶지 않다. 그저 그 나라말을 쓰는 것만으로도 공포의 대상이라니. 그렇게 인지하는 나 자신의 모습도 두렵다.


 요즘 집돌이, 집순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어떤 경로로 감염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몇 년 전 메르스 때가 생각난다. 그 당시 몸이 아팠던 나는 면역력이 무척 떨어져 있던 상태라 셀프 감금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TV를 시청하는 정도였는데, 메르스 확진 환자가 또 발생했다, 확진자가 사망했다는  뉴스들을 계속 보다 보니, 안전한 집에 있는데도 걱정이 더 늘 뿐이었다. 집이 감옥처럼 느껴져 결국 사흘 만에 뛰쳐나왔다. 그때 처음 마신 바깥공기가 얼마나 달콤했는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뭐가 됐든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해야 되는 일은 생각보다 고통스럽다. 감금포비아가 생기기 전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해결되길 바랄 뿐이다.


 모두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흡사 전쟁터라도 온 것 같이 CONNECT_BTS에 다녀왔다.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가져온 전 세계적인 ‘연결들’ 사이에서 오히려 더 빈번하게 사람, 국경, 커뮤티니 사이의 단절을 목격하는데, 서로 다른 가치와 다양성을 그대로 존중하며 새로운 연결을 모색하자는 취지로 열린 전시회다. 한국 전시 외에도 안토니 곰리 등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 세계 5개 도시에서 만날 수 있으니, 예술로 세상은 연결돼 있는 건가.

 

강이연 작가의 <beyond the scene> 중에서.

 영국 출신 작가 앤 베로니카 얀센스의 설치 작품 <그린, 옐로, 핑크>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옅은 녹색의 안개로 자욱하다. 안개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 곳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역시나 눈을 뜨고 있지만 잘 보이지 않았고, 손을 휘저으며 더듬더듬 걷는 게 전부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인지, 내 머릿속까지 안개가 들어온 것 같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것도 편치 않았지만, 언뜻언뜻 보이는 다른 사람들과 닿을까 봐 주춤하게 된다. 가장 겁이 났던 순간은 안개 연출용 드라이아이스가 좀 심하게 내뿜어져 나왔던 핑크 구간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정말 그때는 분홍빛 안개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 세상에 나 혼자 고립된 것 같았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소름이 끼쳤다. 이렇게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된 그 순간, 놀랍게도, 누군가가 낸 소리를 듣고 나서야 안도의 순간으로 바뀌었다. 소리가 내는 보이지 않는 끈을 잡으며 나는 답답한 공간을 빠져나왔다.

제가 안에서 찍은, 얀센스의 <그린, 옐로, 핑크> 진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순간이었어요.

 작가가 연출한 그린, 옐로, 핑크라는 안개는 시야를 가로막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스스로를 더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작품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묘하게 요즘의 상황과 겹친다고 할까. 안갯속으로 들어간 순간부터 그랬다. 뿌연 안개처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바이러스. 그 속에서 아무도 믿을 수 없기에 나를 단절시키지만, 실상은 서로가 함께이기에 버틸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나도, 불신의 존재면서 동시에 믿을 수밖에 없는 존재니까. 우린 그렇게 연결돼 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가져온 혁신은 우리를 예전보다 더 연결시키고 있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BTS도 그런 혁신 덕분에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 한정된 아티스트가 아니라, 전 세계 팬들과 소통하며 팬들의 응원을 받는다. 아미인 나는 국적도 나이도 다른, 얼굴도 모르는 그 누군가와 디지털 공간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한다. 초인종을 누르면 바로 문을 열어줄 수 있을 것처럼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다.


 우리는 이렇게 같은 이유로 연결되기도 하지만, 같은 이유로 단절되기도 한다. 일부 유럽 국가에서 시노(중국인) 포비아를  넘어서 아시안포비아로 커지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로마의 어느 음악학교는 아시아계 학생들에게 수업에 오지 말라는 통보를 보냈다고 하고, 유럽의 우리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중국인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태극기나 코리아가 적힌 옷이라도 입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웃지 못할 농담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새로운 인종차별의 행태가 아닌지, 공포 앞에서 나약한 인간의 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일까.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경계하는 마음은 이해가 되면서도, 뭔가 다른 이면이 있는 거라면 씁쓸하긴 하다.

아시아계 학생들의 수업 출석을 금지한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의 모습. 사진:국민일보

 당분간 우리는 섬처럼 고립될지도 모르겠다. 그 고립이 몸의 고립이지, 마음의 고립이 아니기를 바란다. 이 모든 단절이 하루빨리 끝나기를 기도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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